송기현의 살림운동

두 건축자의 비유(마태복음 7:24-27) 본문

비유의 복음

두 건축자의 비유(마태복음 7:24-27)

유앙겔리온 2010. 11. 5. 22:08

  오늘 저녁에 우리가 함께 나눌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은 "두 건축자의 비유"입니다.
건축이라는 인간행위는 인류의 시작과 함께 지금까지 지속되어온 몇 안되는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리고 인류의 마지막 순간까지이 일은 계속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수님은 공생애 이전까지는 목수였습니다. 예수님시대의 목수란 곧 건축가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목수로서 건축에 많은 경험을 가지고 계셨을 것입니다.  주님은 이러한 인간과 가장 가까이 있는 것 그리고 자신과 가장 밀접한 것을 사용해서 교훈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지혜이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는 인생의 건축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이 시대에 우리를 건축자로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어떻든 인생을 건축해야 할 처지에 있는 것입니다. 이왕 인생의 건축자라면 좋은 건축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본문의 두 건축자의 비유의 중심은 무엇보다 행함에 있습니다. 아무리 많이 듣고, 알고 있어도 행하지 아니하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에서 행함을 제거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행함을 강조하신 분이시지 결코 행함이 소용이 없다고 가르치시지 않습니다.
  주님 스스로가 죄인을 찾으시는 분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그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도 찾으시는 주님의 모습을 닮기를 원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의 건축자가 된 것은 주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건축자가 될 것인가는 우리의 결단에 달려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되어야지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기를 속이는 자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무엇을 행하느냐하는 것입니다. 즉 무슨 원리로 행하느냐하는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기초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건축자나 어리석은 건축자나 똑같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차이가 무엇입니까?  지혜로운 건축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했습니다. 순종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따랐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건축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만 들었습니다.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말씀대로 따르지 않았습니다. 자기 생각대로, 자기 뜻대로, 자기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예수께서는 "나의 이 말" 혹은 "내 말" 즉 예수님의 말씀을 행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와 나의 복음"을 위하여 무엇이든지 버리면 이 세상에서도 백배로 받고 내세에서도 영생을 받지 못할 사람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장차 받을 심판도 다른 어떤 교훈으로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으로 심판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무엇을 행하는 것보다 어쩌면 그 행위의 기초가 무엇인가하는 문제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아무리 바새인들처럼 율법과 유전을 행하였다해도 그것은 이미 모래 위의 기초와 같은 것입니다. 세상의 인습적인 지혜와 방법으로 행하였더라도 그것은 주초없이 흙 위에 집을 짓는 사람과도 같은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아니더라도 착하게 살려고 힘쓰고 애쓰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타종교인들도 많은 고행과 배품과 선을 쌓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기초가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건축자는 어떻게 건축을 했기에 어리석은 건축자가 된 것입니까?
그 사람도 자기 나름데로 열심히 집을 지었을 것입니다. 잘 지으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이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짓지 않았습니다. 반석을 피해 모래 위에다 집을 지었습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이 반석 위에 지은 집보다 외관상으로는 더 좋아 보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기초를 닦는데 시간과 노력과 비용을 투자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더 빨리 더 크게 지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남은 돈으로도 얼마든지 외관에 더 많은 신경을 쓸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건축을 감리하시는 주님께서 모래 위에 지은 집을 인정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테스트하십니다.
창수가 있습니다. 창수는 좋은 건축인지 나쁜 건축인지를 구별하게 해 줍니다. 창수가 나면 반석위에 세우집은 무너지지 않지만 모래 위에 세운집은 무너짐이 심하게 됩니다.

 

  일본 동경 황궁 앞에 Imperial호텔-(제국호텔)- 유명한 호텔이 있습니다.
미국의 건축가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에 의해서 세워진 호텔입니다. 이 호텔을 짓는데 4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절반인 2년을 기초공사 하는데만 소모를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비난했습니다.
"왜 기초공사를 하는데 쓸데없이 그렇게 많은 시간과 돈을 들이느냐?"
그러나 그는 묵묵히 기초를 다지고 또 다졌습니다. 그렇게 해서 4년 만에 제국호텔이 완공되었습니다. 제국호텔은 돈과 시간을 무리하게 들여서 지은 건물이라고 좋지 않게 평가되었습니다. 그러나 몇 년 뒤에 저 무서운 도꾜 대지진이 발생했습니다. 그때 도꾜의 2/3정도가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수십 만 명이 목숨을 잃거나 다쳤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유독 제국호텔만큼은 끄떡하지 않았습니다. 불과 유리창 5개만 깨졌을 뿐입니다.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안전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기초를 그만큼 튼튼하게 다졌기 때문입니다.
그 후 라이트는 건축가로서 신화적이며 전설적인 인물로 남게 되었습니다.

 

  신앙은 기초가 중요합니다. 기본이 잘 되어야 합니다. 
어디 신앙 뿐이겠습니까? 무슨 일에나 기초공사가 부실하면 안됩니다.
공부도 기초가 잘 닦여야 됩니다.
운동도 기본기가 잘 닦여져 있어야 합니다.
사람도 기본적인 성품이 좋아야 합니다.
왕대밭에 왕대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문을 보고 부모가 누구인가 따져보기도 하는 것입니다.
 
  기초공사가 부실한 집은 언젠가는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신앙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DNA입니다.

  신앙의 기초를 마태복음 7:22에서 밝히고 있는 것과 같이 신앙의 기초를 "예언이나 귀신축출이나 많은 기적"에 두는 사람들도 있으나 이 사람들도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책망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신앙의 기초를 부활절 이후의 그리스도에 대한 단순한 믿음만을 의미하지도 않는 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단순히 주여 주여 하는 신앙고백만으로도 부족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모든 청중들에게 지금까지 삶의 기초를 두고 살아왔던 자기 중심적이고 율법 중심적이며 성전중심적이며 제사중심적이며 제의적인 그런 가치 위에 삶을 건축하려는 것을 포기하고 예수의 가르침 위에 삶을 건축하는 자가 되라는 말씀을 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기초를 두고 예수님의 말씀으로 믿음의 집을 지어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