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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실한 종과 신실하지 못한 종의 비유(마태복음 24:45-51) 본문

비유의 복음

신실한 종과 신실하지 못한 종의 비유(마태복음 24:45-51)

유앙겔리온 2010. 12. 3. 12:05

  오늘 밤에 주시는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은 "누가 신실한 종이며 누가 신실하지 못한 종인가"를 비유로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특별한 책임과 권위를 맡아가지고 있다가 갑자기 주인이 귀가 하였을 때에 신실한 종과 신실하지 못한 종이 어떻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실한 종은 주인이 언제 오시는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언제오시던지 하등 문제가 되지도 않습니다. 맡은 일을 충실히 할 뿐입니다. 때를 따라  그 집 사람들에게 양식을 나누어주고 봉사하고 섬기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실하지 아니한 종은 때를 따라 그 집 사람들에게 양식을 공급하고 봉사하고 섬기는 일 대신에 주인이 더디 오리라 생각하고 노비들을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여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주인이 갑작이 온 것입니다. 그래서 신실한 종에게는 그 주인이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겨주었으며 신실하지 못한 종에게는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을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한 것입니다.

  모든 일에는 이처럼 결산이 있고 결론이 있습니다.

 

  첫번째로 신실한 종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신실한 종은 종의식이 뚜렸했습니다. 종이란 아무리 큰 일을 맡아 하더라도 변함없이 종일뿐만 아니라, 주인이 있고 없고에 관계없이 종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종으로서의 자기 신분을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신분에 대하여 성실해야 합니다. 이는 요즈음 흔히 쓰는 말대로 자기 페이스(pace)를 분명히 지키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러나 저러나 나는 종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나는 종인고로 주인이 따로 있으며, 나의 일하는 바는 주인을 위한 것이라고 하는 그 목적 의식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가진 모든 소유는 다 주인의 것입니다. 가진 바 물건은 물론, 심지어는 나의 몸이나, 건강, 재능까지도 다 주인의 것으로, 주인을 위해서 쓰여질 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신분, 그 목적, 그 자기됨이 어떤 경우에도 변해서는 아니 됩니다.


  야사에 있는 대로 정승 태운 당나귀가 많은 사람들이 정승에게 절을 하자 당나귀인 자기보고 절을 하는 줄 알고 꾸벅 꾸벅 인사를 받더라는 것인데 그것은 잘못된 것이란 말입니다. 그저 어디까지나 당나귀는 당나귀일 뿐 정승을 태웠다하여 건방지게 정승 행세를 하거나 정승에게 하는 절을 받아서 대신 답례를 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종은 어느 순간이든지 주인 행세를 해서는 아니됩니다. 언제나 변함없이 꾸준하게 자기 위치, 자기 신분을 꼭 지킬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이 곧 충성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나타난 것으로 보면 주인은 지금 집을 떠나 멀리 여행 중에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인이 없는 동안에도 종은 종이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 주인이 없으니 종 중에서는 내가 고참이라 하고서는 주인 행세를 하고 돌아다닌다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신실하고 슬기로운 청지기는 지금 자기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라 내게 맡기신 분, 즉 하나님의 것임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내 것을 내 마음대로 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쓰는 사람입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의미는 사도 바울도 언급한 것처럼 눈가림으로(엡 6:6)하지 말고 주인이 있든 없든, 사람이 보든 안 보든 상관없이 성실해야합니다.

   충성된 사람, 신실한 사람은 때를 따라서 하는 사람입니다.
   신실한 종은 때를 따라 맡은 것을 나누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신실한 종은 맡은 일이 식량을 나누어주는 작은 일이었지만 충성스럽게 그 일을 감당했습니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했습니다.   


  만약의 짐승을 기르는 집에 종으로 들어갔는데 그 주인이 출타를 하면서 가축에게 줄 먹이를 맡기고 가면서 때를 따라 적당한 양을 주도록 했다고 합시다. 신실한 종은 꽤를 부르지 아니하고 때를 따라서 적당한 양을 짐승들에게 먹이므로 짐승들이 행복해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악한 종, 신실하지 못한 종은 주인이 간 순간부터 먹고 마시고 놀고 오히려 짐승들을 두들겨 패다고 먹을 것도 여러끼니를 주지 않다가 한꺼번에 쏟아부어주어버리는 그런 사람과 같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때를 따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사 치례도 때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끼니도 때를 따라서 먹는 것이 건강에 좋습니다. 때는 항상 미래에 있지 않고 오늘에 있고 현재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두번째로 살펴볼 이 악하고 신실하지 못한 종은 맡은 것을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주인이 내게 맡기신 것임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아예 원주인이 계심을 잊어버린 사람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 종은 때를 따라 나누는 일에 소홀하였습니다. 이 사람은 때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나름대로 때를 정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더디다고 생각하면 때가 더디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때를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때가 더디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정작 그 때는 오지 않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그 때가 항상 미래가 되는 것입니다.그러다보니 현재에 해야할 일 나누는 일을 하지 못하고 마는 것입니다.
  악한 종, 신실하지 못한 종은 "주인이 더디오리라"고 자기가 판단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달란트 비유에서도 보면 한달란트 받은 종이 주인을 "굳은 사람이라"고 판단하였음으로 밖에 나가 한 달란트를 감추어 놓은 실수를 범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주인을 판단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 때 그때 때를 따라서 열심히 살아가야 할 뿐입니다.
 
  자기가 때를 정하고 사는 사람이 지혜롭게 생각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보면 오히려 때를 따라 신실하게 나누는 삶을 살았던 사람을 지혜로운 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지혜롭다고 생각하면서 자기가 때를 정하고 더디오리라하고 생각했던 종은 오히려 미련한 종이었고 악한 종이였으며 교만한 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