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등불의 비유(마 5:14~16) 본문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시면서 그 빛의 역할을 설명하기 위해서 오늘 저녁 우리가 함께 나눌 "등불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은 그 속성상 빛보다는 어둠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세상은 어두울수록 번영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어둠 가운데서 번영하는 세상 문화는 생명문화라기보다는 사망의 문화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 어두움의 문화에 빛을 비춰주는 것이 주님이 오신 이유이며 그리고 주님이 그의 제자들에게 위임하신 직책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도 위임된 일들이기도 합니다.
빛이 어두움에 비취면 어두움에 숨겨졌던 일들은 노출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사람들은 생각하고, 놀라고, 부끄러움과 수치를 느끼는 것입니다.
1. 등불은 애시당초 어두운 방이나 뜰을 밝히려고 등불을 켜는 것입니다.
어두운 곳을 밝히는 것, 그것이 등불의 첫번째 목적이며 역할이며 사명인 것입니다. 이것이 등불의 존재이유입니다.
등불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둡다면 등불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지금의 현광등이나 여타의 전등과는 다른 질그릇과 같은 것에 기름을 붓고 심지를 만들어 잠기게 한 후에 심지 끝에 불을 붙여 사용하는 그런 등잔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등잔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늘 기름준비를 해두어야 하고 기름을 채우고 심지를 돋우워주고 다 타버린 심지의 불똥은 잘라내주어야 불이 밝아집니다.
이러한 노력은 모두가 빛이 잘 드러나서 비취도록 하기 위한 노력인 것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등불을 관리하는 자를 성전에 세우고 그로 하여금 등불을 간검하는 엄한 규율을 지키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등불을 꺼트리지 않도록 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등불이라면 우리는 등불관리를 잘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등불을 꺼트리는 무능한 등불지기가 되서는 않될 것이며 무책임한 등불지기가 되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의 과학자들은 어두운 밤에 어떻게 하면 더 밝고 더 넓은 곳을 비췰 수 있을 까를 연구하여 왔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전등과 같은 것을 발명해 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인 과학자들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등불을 어떻게 하면 더 밝고 더 넓은 곳까지 신앙적인 빛을 비출까를 생각하고 연구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2. 등불은 작고 어두움은 많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낮에는 등불이 필요가 없습니다. 이 등불의 비유는 어두운 곳에서의 빛의 역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등불의 비유는 천국에서 이야기가 아닙니다. 믿는 사람은 적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이 세상에서 적용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좁은 길로 가는 사람들이 적고 넓은 길로 가는 사람이 많은 곳에서 그리고 십자가를 지는 사람은 적고 십자가를 구경하는 사람이 많은 곳에서 소수의 이러한 믿음의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며 어떤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세상에서 이방인과 나그네와 외국인 취급을 당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다수로 살아가는 것은 참 편합니다. 그러나 소수로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소수인 자리, 그리스도인이 소수인 자리에서 복음의 빛을 드러내고 믿음의 빛을 드러낼 수 있는 그런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오늘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이 등불인 이유인 것입니다.
3. 이 등불은 반드시 등경위에 두는 것입니다.
등불을 등경 위에 얹어 놓아야 함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래야 등불이 더 밝게 더 많은 곳을 밝혀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을 끌 때 됫박을 사용하는 것은 당대의 습관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등불을 됫박 아래 두거나 침상 밑에 둔다는 것은, 물론 그런 사람은 없겠지만, 좀 과장되고 지나친 표현입니다.
등불은 감추거나 꺼트려서는 않되는 것입니다. 등불을 숨겨두는 것은 그 속에 무엇인가 음모가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등불을 켜서 말아래나 평상아래 감추는 것은 갓 결혼한 남자가 여행을 하면서 옆자리에 앉아 있는 낮선 여자를 유혹하기 위해서 결혼반지를 슬그머니 빼서 바지주머니에 넣어 감추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복음은 감추어서는 않되며 예수 믿는 것을 감추어서는 않됩니다. 우리가 성도인 것을 감추어서는 않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인 것을 숨겨서는 안됩니다.
성도의 직분은 감추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등경위에 두고 비취라고 주신 거룩한 이름인 줄 믿습니다.
등불을 감추게 하는 것을 벗겨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등불처럼 산다는 것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그것에 답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세상의 빛으로, 등불로 산다는 것은 곧 "착한 행실"로 산다는 것을 말합니다.
16절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서 자주 듣는 말이 "내가 잘 아는 기독교인이 있는데 정말 재수없어"라든지 "기독교인 중에 행실이 나쁘고 교만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라는 말들입니다. '은혜'를 입고 '사랑'의 사명을 받은 기독교인들이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혹은 더 엉망으로 사는 것을 보면 복음을 받아들이고픈 생각이 안들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는 커녕 오히려 하나님을 조롱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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