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누룩비유(마 13:33) 본문
누룩비유는 누룩이 상징하고 있는 의미보다는 누룩의 효용성을 말하는 비유입니다.
다시말해서 누룩의 효용성, 누룩의 에너지가 무엇인가를 말씀해주시는 것입니다. 누룩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는 아주 적은 양으로도 많은 밀가루를 부풀게 하는 힘입니다. 그러므로 이 비유는 적은 양의 누룩으로도 많은 밀가루반죽을 변화또는 변질 시킬수 있다는 양적인 성장과 확장을 말하고 있는 비유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누룩처럼 처음 시작은 작지만 가루서말을 전부 부풀리는 것처럼 작게 시작된 하나님 나라는 동서남북으로부터 몰려들 정도로 크게 확대될 것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누룩운동을 열심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누룩은 아무리 작은 덩어리로 있어도 밀가루를 변화시킬 능력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사도같은 사람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복음은 믿는 사람에게 구원을 주는 능력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비유로 말씀하시면서 특별히 누룩비유에서는 몇가지 독특한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이러한 방법은 구약성경에서나 다른 선지자들에게서나 유대인들의 전통에는 없는 그런 예수님만의 방법이셨습니다. 이것을 "가치 전복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치를 뒤바꿔버리는 방법입니다.
1. 누룩은 악한 경향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누룩은 그렇게 좋은 의미로 사용되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경계해야 하고 버려야 하는 것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전통적인 누룩의 가치입니다.
마가복음 8:15에 "바래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삼가고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5:8절에도 보면 "우리는 묵은 누룩 곧 악과 음란의 누룩 있는 떡을 가지고 유월절을 지킬 것이 아니라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구약성경에서의 누룩은 사람을 정결케하지 못하며, 제물을 정결케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늘 본문 말씀에서 누룩을 가장 좋은 의미로 천국에 대한 비유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정결의 측면에서 따지고 생각한다면 예수님이 천국을 누룩에다 비유한 것만 가지고도 문제를 삼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례가 없는 것을 과감하게 사용하셨습니다. 그리고 누룩을 나쁜 것에서 좋은 것으로 가치를 전복시켜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누룩, 밀가루, 반죽, 빵, 이련 것들은 여자의 손으로 만들어지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오늘 비유의 말씀에서도 보면 여자가 직접 거론되고 있습니다. 이것도 사실 유대전통으로 보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여자의 손길을 통하여 온다는 생각하는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가루서말 속에 누룩을 집어 넣는 여인의 수고를 통하여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며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일구는데 있어서 여인의 수고를 인정해 주셨습니다.
도마복음서라른 것이 있는데 거기에도 누룩비유가 나옵니다. 그런데 도마복음서에는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아버지의 나라는 어떤 여인과 같다. 그 여인은 누룩을 조금 가지고 그것을 반죽에 넣어서 그 반죽으로 큰 빵을 만들었다.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는 작은 누룩으로 큰 떡덩이를 만드는 여인의 비유로 되어있습니다.
유대사회에서의 여성의 위치는 전체적으로 볼 때 가부장제도를 당연시하는 사회 안에서 남자에 비하여 차별대우를 받는 것이 당연시되던 사회였습니다. 여인은 결혼전에는 아버지에게 예속되어 있다가 결혼 후에는 남편에게 예속이 됩니다. 결혼 할 때에는 혈연관계와는 또 달리 타인에게 상품처럼 팔려가는 셈입니다.
여인은 부정하였으며, 여인의 가치는 적은 것이었습니다. 유대 랍비들은 여자를 제자를 둘 수없었으며, 자기 아내가 아닌 여인과 길에서 마주하는 것도 수치로 여길 정도 였습니다.
이와 같은 전통은 우리 나라에도 있습니다.
남자가 큰 시장에 갈 때 여자가 길을 가로질러가면 제수가 없다고 해서 몹시 기분 나쁘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여자를 배에 태우는 일도 제수가 없다고 해서 삼가했습니다.
이러저런 여자와 관련된 금기사항이 우리나라에도 참 많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여인의 가치를 최고로 높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가치의 전복"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3. 하나님 나라를 기껏해야 가루서말을 부풀게 하는 누룩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유대 전통에 의하면 하나님 나라를 거대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 나라는 막강한 군사력을 자랑하는 중무장된 군대로 세계를 지배하는 나라쯤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바벨론이나 앗시리아 제국이나 로마제국보다는 큰 나라여야 했습니다.
작은 나라인 유대나라 작은 민족의 서름을 겪고 있는 유대인들은 어쩌면 거대병에 걸려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어디 유대인들 뿐이겠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그렇습니다. 그렇게 클 것이 없는 것들을 괜시리 키워놓아서 문제거리가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는 겨자씨와 같고 작은 누룩 덩어리와 같다고 하신 것입니다. 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겨자씨가 썩어서 나물보다 큰 나무처럼 되고 누룩이 자기를 밀가루에 섞어넣어서 밀가루를 부풀게 하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는 처음부터 커서 지배하고 억압하고 다스리고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고 봉사하는 나라임을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도를 지배의 도가 아닌 섬김의 도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늘 말한 것처럼 예수를 따른 도, 구원을 얻는 도가 십자가를 믿는 도가 아니라 심자가를 지는 도인과 같은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장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사랑의 만찬을 나누 신 후에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고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요13:14)"
하나님 나라는 바로 이러한 나라인 것입니다. 주와 선생이 되어 오히려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나라 세상의 가치체계가 전복되어버린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힘은 사랑의 힘인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권력은 전시적인 것이 아니라 스스로 숨기는 것, 스스로 감추는 권력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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