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큰 잔치 비유(눅 14:15-24, 마 22:1-10) 본문
오늘 저녁에 우리가 함께 나눌 비유의 복음은 "큰 잔치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는 어떤 바리새인의 두령의 집에서 예수님을 초대했을 때 예수께서 하신 비유의 말씀입니다.
이 큰 잔치비유에서 우리는 네 가지 것에 대하여 자세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잔치를 베푼 사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어떤 잔치에 참여하려고 하면 그 잔치를 배푼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 잔치가 슬픔이 가득한 잔치인지 기쁨이 넘치는 잔치인지 그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상가집에 가서 축하합니다 하고 웃을수는 없는 것이 아닙니까?
돐집에가서 삼가명복을 빕니다. 하고 슬퍼할 수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잔치는 분위기가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잔치집 가서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사람이 가장 미련한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기분 내느라고 주인의 마음은 생각지도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기뻐하는 자와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자와 함께 슬퍼하라"는 것입니다. 분위기를 잘 맞추어주는 것도 아름다운 봉사요 헌신입니다.
예배도 그렇습니다. 예배를 위해서 여러분들이 봉사를 해야 합니다. 그럴려면 분위기를 맞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엉뚱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거든요. 그러면 결국은 전체적인 예배가 망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잔치집에 초대되어 갔으면 오버를 해서는 않됩니다. 항상 손님으로 초대되어 간 사람은 손님으로서 자세를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잔치에 초대되어가서는 주인과 싸우고 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 얼마나 실례가 되는 일이겠습니까?
오늘 본문에 잔치를 베푼 주인은 잔치 자리가 가득찬 것을 좋아하는 분이셨습니다.
둘째로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대상은 "잔치의 초대를 거절한 손님들"입니다.
오늘 나는 이 큰 잔치 비유에서 예전에 언급한 것은 할 수만 있으면 피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잔치를 거절한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하는 것이라든지 그 내용이 어떤 것인가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약간 다른 각도에서 잔치의 초대를 거절한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거절할 수 있었다는 것은 적어도 잔치를 열고 초대하는 사람이 인자한 사람이었음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만약 잔치를 열고 초대한 사람이 대단히 강한 사람이고 성격이 괴팍해서 보복이라고 한다면 감히 잔치에 거절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의 경우 옛날 고을 원님같은 절대적인 힘을 가진 사람이 마을에 와서 주일마다 교회를 나오지 않으면 다 죽인다든지 세금을 몽땅 거두어드리겠다고 협박을 한다든지 하면 그 초대에 거절할 사람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오늘 예수님의 큰 잔치 비유에서 그 초청을 거절한 사람들은 큰 잔치를 열고 있는 주인의 여린 마음과 사랑의 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거절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은 거절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그 초청을 인간이 함부로 거절을 합니다.
만약의 하나님이 이 시간이라도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무서운 형벌을 바로 즉시 내리신다고 하면 믿지 않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셋째로 "대신 초대받은 사람들"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처음 초대받은 사람들과는 달리 이들은 초대 받을 만한 조건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잔치의 비유는 오늘 본 바로 앞에도 나옵니다만 잔치에 예수님을 모셔다 놓고도 예수를 감시하면서 예수가 어떻게 행가는 가하고 엿보는 사람들과 같은 사람들은 결국 잔치의 기쁨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초대받은 것만가지고 그리고 이 시간 주님과 함께 있다는 것만 가지고도 그 잔치가 흥겨운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나중 초대 받은 사람들은 그런 마음으로 잔치에 참여한 사람들입니다. 선민이라고 자처하는 유대인들은 하나님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열어주신 구원의 천국잔치에 참여하기를 거절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기 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에게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그 잔치에 참여하는 귀한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넷째로 "잔치 그 자체"를 생각해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은 마치 잔치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은 천국 잔치에 초청받아서 잔치에 참석하는 것과 같습니다.
요즈음은 잔치 초대가 오히려 부담스러울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대부분의 초대장이 순수한 초대장이 아니라 반드시 돈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초대를 받는다고 해서 그렇게 감사할 이유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큰 잔치는 그런 잔치가 아닙니다. 가난한 시절에 먹을 것도 변변이 없는 시절에 주인이 큰 마음을 먹고 잔치를 준비하여 대접을 하는 그런 잔치였습니다.
천국잔치는 바로 이와 같습니다.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잔치인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하나님이 큰 잔치 집에 초대되어 잔치를 누리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저것 따질 것없이 초대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면 내 기분에 맞추려고 하지 말고 초대하신 주님의 기분에 맞추어서 신앙생활을 해가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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