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악한 포도원농부의 비유( 막12:1-12, 마 21:33-46, 눅 20:9-19) 본문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예수 그리스도의 비유의 복음은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는 '소작인의 비유'로도 알려진 비유로서 공관복음인 마태, 마가 누가복음 모두에 다 기록돼 있는 비유입니다. 이 비유는 예수님의 지상 생활 마지막 주간에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갈릴리 지역의 대부분의 토지가 부유한 지주들의 소유였고, 그들은 대개의 경우 로마의 점령세력과 결탁한 상류층 사람들이어서 갈리리에 거주하지는 않으면서 땅만 수유하고 있는 부재지주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농민들은 소작인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소작료 내고 세금바치고 나면 근근히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그런 형편이었습니다. 그래서 갈릴리 농민들은 이에 대한 반감이 대단히 컸다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그래서 농민들은 그들에게 항거하는 반란에 가담하곤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고향땅을 떠나버리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도적떼가 되기도 하고, 의분이 있고 정의감이 있는 사람들은 맞서 싸우는 단체를 조직하여 조직적으로 투쟁하며 싸우기도 했습니다. 이 이사람들이 열심당 즉 젤롯당입니다.
그러나 농장의 주인들이 다 그런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이야기처럼 좋은 포도원을 만들어 놓고 정말로 극히 작은 부분을 세로 바치게 하는 좋은 주인이 있었는데 당시에 갈릴리 지방의 분위기에 편승해서 소작농들이 연대해서 반역을 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나사렛에서 삶의 대부분을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이런 유사한 사건들을 직접으로나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들은 대부분 사실적인 근거를 두고 있음직한 일들을 비유로 말씀하시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이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도 아마 사실적으로 그 시대에 있었던 이야기를 사용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비유에서 우리는 먼저 포도원의 의미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포도 농사는 우리가 잘 아는대로 노아시대부터 이스라엘백성들의 주 농업이었습니다. 노아는 포도주에 취하여 수치를 드러낸 경우도 있습니다.
구약 성경은 포도원을 이스라엘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포도원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이사야 5:1-7, 27:1-6, 렘 2:21, 겔 15:1-6 등
포도원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어서 그 포도원을 이스라엘에게 맡겨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 포도원이 좋은 열매 맺기를 기대한 주인의 뜻을 거스리는 경우가 너무 많았습니다. 성경은 극단적으로 극상품 포도나무에서 먹지 못할 들포도를 맺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포도원 주인은 오래참습니다. 세번 종을 계속해서 보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성경에서 3은 완전한 숫자입니다. 그러니까 참을 만큼 참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후에도 마지막으로 아들까지까지 보내서 한번의 기회를 더 제공하는 자비의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마지막 기회까지 악한 기회로 사용하고 만 포도원 농부들은 과연 누구를 상징하고 누구를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악한 포도원 농부는 첫째로 거듭 거듭하여 하나님에게 반역의 길로 가는 당시의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의 일을 맡았던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과 서기관들과 율법주의자들은 성전제사를 담당하고 있는 포도원의 농부와도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부분에 보면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의 이 비유는 자기들을 가르켜 말씀하심인줄 알고 즉시 잡고자 하되 백성을 두려워하더라"라고 하였습니다. "죄를 지으면 제발에 저린다"말이 있습니다. "죄인은 누가 쫓아오지 않아도 뒤돌아보며 도망간다"는 말씀도 성경에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포도원을 맡긴 포도원의 본래의 주인을 인정하려고 하지도 않았고 마땅한 의무도 행치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보내시는 선지자들마져 돌로 처죽이는 일을 했습니다.
마 23장 37-38절에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반역을 거듭하는 이들에게 예수님은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온 자신마져 거부하지 않도록 경고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결국 자신도 그들의 손에 잡혀서 건축자의 버린돌 처럼 그렇게 수난을 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죽임을 당하실 것을 미리 말씀하신 것입니다.
둘째로 이 악한 포도원 농부는 당시를 살아가는 전 유대적 사람들을 일컫는 것입니다.
포도원은 영원히 주인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영원히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시대에는 "우리에게도 이방인들과 같이 왕을 주셔서 다스리게 하옵소서 우리는 하나님의 다스림이 싫습니다."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주님은 하나님의 최후의 사자마저 거부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의미로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세번째로 이 악한 포도원 농부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말하고 있기도 합니다. 사실은 인생의 주인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도 인생은 하나님의 창조성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소유권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부정하려고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뒷전이고 자신이 주인이 되어서 행세를 하려고 합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선지자, 종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회개할 기회를 거듭 주시는데도 불구하고 그 기회를 계속 놓쳤습니다. 하나님의 인내를 만홀히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악용했습니다. 멀리서 종만 보내니까 주인을 우습게 본 것입니다. 그리고는 상속자이며 유업을 무를 자인 아들마저도 그들은 죽여버리고 완전히 그 포도원을 불법으로 차지해 버리려고 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그러했습니다. 예수님을 죽여버리므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땅에 속한 나라로 삼아버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포도원으로 돌아오신 아들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금까지 어떻게 했던지간에 이제라도 아들로 상징되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구원을 얻게 하시겠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요 3:36절에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않는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비유는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이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뇨?”라는 말로 끝납니다. 사실 이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는 구약에 익숙한 사람들은 쉽게 기억하는 내용입니다(사 5:1∼2,7). 결국 소작인들은 죽임을 당할 것이고 포도원은 다른 자들에게 대여될 것이란 것이 주님의 결론입니다. 이 비유는 제자들에게는 확신과 자신감을 주고 적대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인내에도 한계가 있다는 경고가 됐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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