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쉬운 길의 함정 본문
갈수록 인간은 쉽게 살고자 하는 욕망이 거세지고 있다. 그래서 전자제품 같은 것도 무엇이든지 원터치 리모콘으로 조작하는 것이어야 잘 팔린다고 한다. 할 수만 있으면 사람의 힘이 들지 아니하고 사람이 덜 움직이는 그런 것을 원한다. 그러다보니 신앙생활에서도 쉽게 할 수 있는 방법만 찾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편하고 쉬운 길이 다 좋은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편하고 쉬운 길이 나쁜 함정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진정으로 고통이 없는 것이 행복일까? 인류는 지금까지 좀더 고통없고 좀 더 편한 것을 추구해왔다. 그렇다고 그 마음까지 편해지는 것일까? 오히려 더 의미를 지니지 못한 삶으로 인해 지쳐가는 것은 아닐까?
편하고 쉬운 길이 사람을 병들게도 하고 죽음에 이르도록 하는 해악이 될 수 가 있다.
예수님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사흘만에 살아나야 하리라" 고 제자들에게 말하자 베드로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께 "선생님 왜 그렇게 어려운 길로 가시려고 하십니까? 쉬운 길로 가십시다"라고 했다. 이때 주님은 "사단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라고 꾸중하셨다.
무조건 편하고 쉬운 길이 좋은 길이 아니다. 쉽고 편한 길에 도사리고 있는 함정이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쉽게 살라는 악마의 소리에 귀를 내어주지 말아야 한다. 마음을 내어주지 말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쉽고 편한 길을 버리고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그 길을 자원하셔서 가셨다. 그리고 죽음을 자원하셨고 그리고 죽음까지도 편한 죽음보다는 고통의 죽음을 스스로 원하셨다. 복음서는 여러 곳에서 그런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 중에서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어가실 때 "내가 목마르다"하셨는데 그 때 사람들은 쓸개를 탄 포도주를 마시라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건낸다. 마가복음도 마태복음도 누가복음도 이 쓸개를 탄 포도주를 예수 그리스도는 마시지 않는 것으로 보도하고 있다. 왜 "내가 목마르다"하시면서도 건내주는 그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을까? 그것은 다른게 아니라 쓸개를 탄 포도주는 진통제나 마취제를 섞은 포도주이기 때문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런 것으로 전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죽음을 맞기를 원치 않으셨다. 스스로 고통받는 온전한 모습으로 죽기를 원하신 것이다.
우리의 영적인 믿음생활과 은혜생활에서도 값싼 은혜로 살고자 하는 유혹이 항상 있다. 왜냐하면 이것이 쉬운 믿음의 생활이기 때문이다. 값싼 은혜는 예수님에 대한 뒤따름이나 순종이 없는 은혜이다. 헌신 없는 은혜요. 결단없는 은혜요, 감격없는 은혜요, 감사 없는 은혜이다.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과 같이 개선도 없고 변화도 없고 개혁도 없고 달라진 것도 없이 사는 것이다. 그리고서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만 하면 만사형통이라는 식이다.
그러나 잊지말야 할 것은 값싼 은혜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든 믿음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경계해야할 가장 무서운 악한 마귀 사단의 역사이다. 십자가를 지지 말라고 권했던 베드로, 십자가를 저서는 안 된다는 베드로에게 예수께서 하셨던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했던 것을 말이다.
주님의 제자, 주님의 일꾼, 주님의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이 된다는 것은 쉬운 길을 버리고 스스로 힘들게 살아가는 자가 되는 것이다. 주님의 제자, 주님의 일꾼이 된다는 것은 남의 뒤를 따라가는 자가 아니라 앞장서서 길을 개척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주님의 제자 주님의 일꾼이 된다는 것은 피동적으로 누가 시켜야 하고 누가 끌어주어야만 억지로 가는 사람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자동적으로 스스로 하고 스스로 가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다니엘서에 보면 다니엘과 그 친구들은 우상숭배를 하면 쉽게 살 수도 있었지만 그것을 거절했기 때문에 꺼지지 않는 풀무불에 들어가게 되었다. 기독교인으로 최초의 순교자가 된 스데반도 복음에 대해서 침묵하고 입을 열지 아니하고 은밀하게 숨어 있는 그런 쉬운 길을 택하였더라고 하면 순교를 면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주님처럼 십자가의 길을 택하였다.
독일의 본회퍼 목사님은 히틀러의 나찌정권시절에 미국에서 신학교 교수로 쉽게 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조국 독일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조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39살의 젊은 나이에 순교를 당했다.
쉬운 길이 주님을 배신하고 배교하는 길일 때, 쉬운 길이 내 몫의 십자가를 외면하는 길일 때, 그래도 쉬운 길을 가고자 하는가? 그것은 함정일 뿐이다. 함정에 빠져서 그것이 함정임을 깨닫게 될 때는 이미 늦었다. 값진 것은 쉽지 않다. 귀한 것은 쉽게 오는 것이 아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어려운 길이고 미련한 것 같으나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인 것을 믿어야 할 것이다.
주님은 쉬운 길을 포기하고 어려운 길을 자원하여 가는 자들에게 약속을 하신 것이 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대로 갚으리라" 고 하셨다. 고난이 클수록 영광도 큰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되는 길은 결코 쉽다고할 수 없는 길이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뒤따라가는 어려운 길이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리고 그의 교회와 기독교가 쉬운 길을 버리고 예수님의 제자의 길을 걸어가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살리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이다.
나도 주님처럼 편한 것을 거절하고 스스로 고통을 느끼면서 주어진 인생 길을 가는 이가 되고 싶다. 그러나 여전히 편한 것이 더 좋은 것을 어이하면 좋은가? 예수 그리스도를 뒤따라가면 가능할련지... 예수 십자가를 힘껏 붙잡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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