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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운동

양선

유앙겔리온 2007. 11. 5. 18:03

  양선이란 헬라어로 "아가도쉬네"인데 영어성경(NIV. KJV)에서는 goodness(선행)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그런데 갈라디아서 5:22을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개역 성경과 개역 개정판에서는 "양선"이라고 했고, 표준 새번역에서는 "선함", 공동번역에서는 "선행"이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러니까 종합해보면 문자적으로 양선이란 "선을 베푼다"는 뜻입니다.

신앙생활을 철없는 아이처럼, 뭐든지 받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이 땅에 살아가는 목적은 섬김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구원 공동체인 교회를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선을 행하는데 있습니다. 이렇게 '섬긴다. 선을 행한다' - 이것을 양선이라고 합니다.

 

 

  좀 유머스럽게 표현하자면 성경에 나오는 사람중에 가장 욕심 많은 사람은 "막달라(?)"입니다. 뭐든지 막달라고만 합니다. 일평생 동안 이것주세요. 저것도 주세요. 쉼없이 구해달라고만 합니다. 교회 안에 막달라는 성도들만 있으면 안됩니다. 어린아이 신앙에서 성숙한 신앙으로 영적 성장을 이루어야 합니다. 주님께 달라는 것보다 주님의 뜻을 헤아려 주님의 뜻에 이해야 안되도 납득이 안되도 순종해야 합니다. 유익이 없어도 순복해야합니다.

 

 

  한글 성경에 '주'라는 하나의 단어로 번역된 말이 영어 성경에는 두 가지 의미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번째는 구원자(saviour)라는 의미이고, 두 번째는 왕(Lord)이라는 의미입니다. 약 10%는 구원자이고 나머지는 왕의 의미로 쓰였습니다. 그래서 로드쉽(Lordship)은 그 분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고, 철저히 주님의 뜻에 순종하여 사는 삶입니다.

로드십은 주님께서 교회의 주인이시며 내 인생의 주인이시며 모든 것의 주인되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만왕의 왕이시고, 창조주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를 내 마음과 생활의 중심에 두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 되심을 철저하게 확인하고 확증해야 합니다. 내 모든 주재권, 소유권, 결정권 이 모든 것이 내가 주인이 아니고 예수님이 주인인 것 이것이 로드쉽입니다. 우리의 행하는 것 모두가 이제는 주님이 주인이시기 대문에 주인의 의도대로 움직이며 살아가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미국 내 자원 봉사할동 규모는 어마어머합니다. 1억 1000만 정도가 일주일에 한번식 아무 보수도 받지 않고 봉사 활동에 시간을 투자한다는 최신 통계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한국에서도 약 650만 명의 시민들이 자원봉사자로 활동합니다. 이 중에는 그리스도인들이 아닌 사람들도 많습니다. 하물며 성도이면서 선을 행하는 일을 외면하면 안 될 것입니다.

 

 

  늦게 예수님을 믿게 된 아버지가 다른 지방에 사는 세 아들을 불러 주일마다 교회에 나갈 것을 당부했습니다. 세 아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할 수 없어서 그 주부터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한 달이 지난 후 아버지는 세 아들을 다시 불러 모아서 교회 나간 후 무엇이 달라졌는가를 물었습니다. 큰 아들은 자신의 삶이 보다 경건해졌고 사업도 잘된다고 말했습니다. 둘째 아들은 덕분에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나서 더 이상 외롭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세째 아들은 보이질 않고 대신 편지가 와 있었습니다. 그 편지에는 요즘 마을의 장애자들과 노인들을 돌보느라고 도저히 올 수가 없었다며 죄송하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아버지는 세 아들중 교회에 가서 진정으로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 받은 아들은 세째 아들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과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실천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말은 나태한 신앙 생활에 채찍이 됩니다. 성경에 기록되어진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가르침들이 그냥 가르침으로만 끝나서는 안되고 곧 실천이 되어야 함은 그것이 바로 참 신앙인의 자세이고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의 행동과 교회 밖의 생활이 다른 사람들을 가끔 보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면 그것이 곧 실천이 되어야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고 배웠으면 생활 중에 감사의 조건들을 찾아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깨달음이 곧 행동의 변화로 나타날 때만이 진정으로 변화 받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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