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온유 본문
나무는 그 열매를 보아 아는 것입니다.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성령의 사람은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기를 위한 성령의 열매 기획시리즈 오늘 그 열덟번째 시간 "온유의 열매"입니다.
온유함에 대해서 생각하거나 이것에 대해서 말하려고 하면 제일 먼저 부딪치는 것이 무엇입니까?
첫번째가 온유함이 현대를 살아가는 가치로서 합당한가? 하는 의심과 의혹일 것입니다. 이 악한 세상에서 어떻게 온유함으로 살 수 있단 말인가? 이렇게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세상은 언제나 힘센 사람들이 지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약한 사람들은 늘 당하고만 사는 것 같이 보입니다. 동물의 세계만 봐도 "약육강식'이란 말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기독교인들의 정체성을 흔들리게 하고 신앙에 갈등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온유하게 살라고 하는데 과연 온유하게 살고도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고 성공하는 인생을 살 수 있을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를 아주 거시적으로, 큰 눈으로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멀리 보시기를 바랍니다. 영원한 강자로 굴림할 것 같던 강한 것은 이미 멸종을 당했고, 강한 것 중에서도 살아남아 있는 것들은 보호종이 되었고, 천연기념물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약한 것은 죽여도 죽여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더욱 번성하기만 합니다.
또 다른 하나의 문제는 "온유함"이란 의미의 그릇된 정보와 해석의 오류입니다. 온유함을 미약하고 온순하며 저항하지 못하는 성격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유함의 가치를 무가치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온유는 약자의 표지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강자의 무기인 것입니다. 온유한 자가 강자인 것입니다. '온유'란 헬라어로 "프라우테스"라고 하는데 우리말 번역은 모두 "온유"라고 번역했습니다. 따뜻하고 부드럽다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gentlness (NFV. 젊잖음) 혹은 meekness (KJV. 부드러움)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우유부단한 성격을 의미하거나 연약한 이미지를 가진 말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용기없고, 우유부단해서 어떤 일도 결단하지 못하는 졸장부들에게 붙여지는 불명예스런 딱지는 더더욱 아닙니다.
여러분 물질 중에서 제일 부드러운 것이 무엇입니까? 물입니다. 노자 제8장에 "상선약수"라는 말이 있습니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란 뜻입니다. 그리고 물의 세가지 특징을 말하는데 "첫째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한다. 둘째, 물은 다투지 아니한다. 셋째 물은 늘 낮은 곳으로 흐르며 낮은 곳에 있다"고 합니다. 참으로 잘 보았습니다. 물은 온유입니다. 물은 부드럽지만 또한 한 없이 강합니다. 바위를 가르는데 물이 사용되고 두꺼운 강철을 자르는데 물이 사용됩니다. 불이나면 타고 남은 재라도 있지만 홍수가 나면 흔적조차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온유함은 바로 이와같습니다.
온유라는 이 말의 용도는 깊고도 참 다양합니다.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오늘은 3가지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온유 즉 '프라우테스'라는 헬라어 뜻은 "통제된 힘"을 의미할 때 사용됩니다. 아주 옛날 벌판을 질주하던 야생마를 길들여 교통수단으로 쓰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야생적이고 야성적인 말이 잘 길들여져서 순하디 순한 말로 바꾸어진 말을 야생마와 구별하여 '프라우테스 말'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단지 길들여졌을 뿐이지, 늙고 병들고 힘이 없이 터벅 터벅 걷는 모습은 결코 온유한 모습은 아닌 것입니다. 잘 길들여진 말이 아주 강인하고 날렵하게 달리는 모습을 연상하면 됩니다. 힘이 넘쳐나지만 그 힘이 잘 길들여져서 기수가 고삐를 트는대로 방향과 속도를 조절하는대로 힘을 분출하는 것이 온유인 것입니다. 여수나 제주도에 가면 관광지에 관광사진을 위한 소품으로 사용되는 말이 있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마부에 손에 이끌려 집에서 관광지로 관광지에서 집으로 터벅 터벅 걷는 말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 모습은 결코 온유한 모습이 아닌 것입니다.
사나운 맹수를 훈련시켜 주인의 명령에 잘 순종하고 따를 때 주인은 이 짐승을 향하여 '프라우테스 - 즉 온유해졌다' 라고 말합니다. 즉, 본능적인 행동을 통제할 수 있을만큼 길들여지고 잘 훈련된 성품을 온유라고 부릅니다. 힘이 잘 조절되어 유익한 목적을 위해 사용되도록 훈련된 인격을 온유라고 합니다.
온유한 사람은 이처럼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질이 사나움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지식과 자기의 주관이 뚜렷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의 은혜로만 만족을 누리며 사는 사람입니다. 자기 주관도 없는 사람이 이리 저리 흔들리는 것은 온유함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인 것입니다. 아집이 강해요. 자기 주관도 강해요. 자기 독선도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에 의해서 자신의 모든 힘들을 잘 조절할 수 있도록 길들여진 하나님의 사람이 바로 온유한 사람인 것입니다. 자신의 본능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 온유한 사람입니다. 충동을 억제할 수 있는 인격이 온유한 인격입니다. 자신이 가진 힘을 유익한 목적을 위해 바로 사용할 줄 아는 성품이 온유한 성품입니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둘째, 온유 즉 '프라우테스'는 정상적이지 못한 것이 정상적인 것으로 다스려진 것을 말합니다. 지금은 환절기입니다. 유행성눈병이 감기환자들이 많이 발생할 시기입니다. 사람에게 질병이 발생할 때 제일 먼저 나타나는 변화가 무엇입니까? 바로 체온입니다. 이처럼 어떤 환자의 몸에 열이 오르고 몸과 얼굴이 벌겋게 되었을 때 이 열을 진정시켜 정상 체온이 되었을 때 '프라우테스 - 온유해졌다' 라고 합니다. 열이 다스려 졌다는 말입니다. 정상 체온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 몸의 정상 체온이 얼마나 됩니까? 우리의 몸은 36도 2분이 정상입니다. 이 온도에서 너무 낮아도 안되고 너무 높아도 안됩니다. 정상 이상으로 열이 오를 때 여러분, 열을 속히 내리셔야 합니다. 정상 이하로 열이 떨어졌을 때 여러분, 열을 속히 내려야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위험한 지경에 떨어지게 됩니다. 신체가 망가지거나 심하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셋째, 거친 장정들, 반항기가 가득한 청년들이 군에 입대하여 주는 대로 먹고,시키는 대로 하고, 잘 훈련되어 자기 사생활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나라를 지키는 순종하는 군인을 프라우테스라고 하였습니다. 군사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양육과 훈련으로 세워지고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군사의 제일되는 원칙이 무엇입니까? 상관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군사가 불순종하면 명령불복종 죄로 총살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순종하는 군사가 바로 프라우테스 즉 온유한 사람인 것입니다. 군인은 모든 사람들보다 더 강인한 사람입니다. 최고의 젊음, 최고의 용기, 최고의 멋, 최고의 건강을 우리는 군인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잘 훈련된 군인, 훈련되었기에 힘든 것조차도 순종하는 군인이 바로 온유한 사람, 프라우테스라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온유함은 그리스도와 제자와 목자의 특징이며 하나님 자녀들의 특징인 것입니다. 잘 훈련된 하나님의 자녀들은 순교까지도 순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온유는 "잘 다스려진 인격", "잘 훈련된 인격", "잘 길들여진 인격", "잘 조절된 인격"이라고 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