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미혹에 이끌리지 않도록 주의하라 본문
우리는 광고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광고는 어떤 사실이나 어떤 상품을 알려주는 정보전달기능이라는 순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광고는 순기능뿐 아니라 역기능도 가지고 있습니다. 불필요하고 좋지 않는 그릇된 정보를 전달하여 사람을 속이는 나쁜 기능도 있습니다. 그래서 전혀 사려고 마음먹은 바도 없었는데도 광고를 보는 순간에 미혹을 받아서 필요도 없는 것을 사버린 경험들을 한번쯤은 다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어찌 상품뿐이겠습니까? 해서는 안 될 일, 생각해서는 안 될 일, 빠져서는 안 될 일을 미혹으로 인해서 했던 경험들을 가지고 있지 않는 분들은 아마 한 분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권고하는 것은 수없이 반복하여 한다고 해도 결코 과장되거나 헛된 수고가 아닙니다.
"미혹을 받다"라는 말은 "길을 잃게 하다" "나쁜 길로 이끌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이처럼 길을 잃게 하고 나쁜 길로 이끄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올 수능시험부정에 우리 지역사회의 학생들이 181명(?)이 연류되었다는 보도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사회적 파장이 만만치 않는데, 학생들은 언제나 컨닝의 유혹을 받고 있습니다. 실력광주를 자랑처럼 여겼는데 상처를 받게 되었습니다. 미혹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불상사입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사람은 나이에 따라 유혹을 받는다"라고 했습니다. 나는 여기다 한 마디 덧붙여서 “사람은 나이와 그 사역에 따라서 유혹을 받는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어린 아이나 노인이나, 성직자나 노동자나 그 누구나 미혹을 받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함부로 돌을 던져서는 안 됩니다. 미혹에 쉽게 빠지도록 미혹에 허약한 학생들을 만들어놓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며 미혹에 빠지는 것을 당연시 하는 우리 사회의 책임일 것입니다.
왜 미혹을 받습니까? 미혹을 받게 되는 이유는 대부분 "자기의 욕심에 끌려 미혹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욕심이 지나치면 미혹을 받기 쉽습니다. 너도 나도 더 크게, 더 많이, 더 빨리되기를 소원합니다. 이런 지나친 탐욕이 자연스럽게 원칙을 무시하고 편법을 선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미혹에 쉽게 빠져들게 합니다.
식욕, 색욕, 물욕, 권력욕 명예욕 등등은 우리에게 달콤한 쾌락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여 나로 미혹을 당하지 않게 해주옵소서" 하고 입술로는 소리쳐 기도하지만 그것을 피하려는 결단을 하지 않습니다. 마치 독사의 입속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놓고서 독사에게 물리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숯불에 발바닥을 올려놓고 주여 데이지 않게 타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손을 빼야지요. 발바닥을 들어내야지요.
탐욕 때문에 양심을 버리고, 친구를 배반하고, 의리를 짓밟고, 명예를 집어던지고, 인격을 팔고, 골육도 버리고, 칼부림을 하고 살인까지 하는 예가 세상에는 허다합니다. 그래서 때때로 욕심없이 사는 사람들이 바보취급을 당하기도 하고 무시를 당하기도 하는 세상이긴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탐욕을 부리지 않아도 근면과 신용과 절약과 검소의 덕으로 열심히만 살면 결코 부끄럽게 살진 않게 될 줄로 믿습니다.
"나는 계속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노라면 언젠가는 내게 기회가 올 것입니다."라는 원스턴 처칠 경이 남긴 말은 유명합니다. 욕심만 부릴 것이 아니라 착실히 준비하고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야 미혹을 받지 않습니다. 욕심만 앞서면 미혹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사람들이 금욕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금욕주의는 좋은 것이 아닙니다. 나는 금욕주의자는 아닙니다. 과욕을 버리자는 것입니다. 탐욕에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욕심에 중독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탐욕에 사로잡히면 그 욕망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불길같은 욕망에 떨어지고 중독되면 헤어날 길이 없습니다. 탐욕 때문에 파멸하고 좌절하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많습니까?
미혹의 결과는 큽니다. 미혹을 받아서 넘어지게 되면 굳센데서 떨어지게 되고, 어쩔 수 없이 근심이 자기를 찌르고 후회가 자기를 치는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꿀벌 한 마리가 꿀이 가득 담겨 있는 꿀단지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러니 이제 꿀벌은 벌판이나 야산으로 날아다니며 이 꽃 저 꽃에서 조금씩 꿀을 모으기 위해 고생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꿀벌은 꿀단지의 꿀을 빨기 시작했습니다. 그 맛이 이를 데 없었습니다. 정말 꿀맛이었습니다. 이 꿀벌은 꿀 단지 속으로 점점 빠져 들면서 꿀을 빨았습니다. 꿀을 실컷 먹고 나니 배가 부르고 피곤해졌습니다. 그 때 정신이 들어 밖으로 빠져 나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꿀벌의 날개에 꿀이 훔뻑 묻어 날개가 움직여 주지를 않았습니다. 꿀단지에서 몸을 빼낼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꿀벌은 꿀통에 빠져 쾌락 속에 묻혀 죽어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꿀벌처럼 미혹 당하여 믿음에서 미끄러져 떨어지는 일이 결코 없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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