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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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운동

디베랴냐 갈릴리냐

유앙겔리온 2004. 11. 18. 10:53
 

  디베랴 바다는 갈릴리 바다의 또 다른 명칭입니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는 갈릴리 바다라고 한 것을 요한복음에서만 유독 갈릴리바다라 하지 않고 디베랴 바다라고 하고 있습니다(요 6:1, 6:13, 21:1). 왜 요한복음을 기록한 저자만이 유독 갈릴리 바다를 디베랴 바다라고 했을까요? 그것이 오늘 우리가 깊이 생각할 문제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무엇으로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풀어가는 핵심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사고와 사상과 행위의 양식을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디베랴는 원래 로마를 다스렸던 황제의 이름이었습니다. 로마시대에 로마의 황제들은 자신이 정복한 지역에 자신의 이름을 붙여서 거대한 도시를 만들어 놓고 그것을 기념하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이곳 저곳 로마 군인들이 정복한 곳에 로마황제의 이름을 따다 붙여 도시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적어도 로마의 황제의 이름을 붙여 도시를 만들려고 하면 그만한 위엄을 갖추고 규모를 자랑할 만한 것이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거대함"이란 조건이 붙어있습니다. 작은 고을은 로마의 황제 이름을 붙이고 싶어도 붙일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불경스럽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은 자연스럽게 거대함의 가치를 숭배하고 거대함의 가치를 높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거대함이란 것, 큰 것, 그것이 꼭 유익하거나 아름다운 것이나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규모가 크다고 해서 꼭 좋은 것은 아닙니다. 거대하기 때문에 크기 때문에 폐망의 길을 가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이에 반하여 디베랴가 아닌 갈릴리는 이스라엘의 순수하고 고유한 촌락의 이름입니다. 이 갈릴리라는 곳은 작은 것이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거니시던 "영원적 가치"가 숨쉬는 그런 곳입니다. 목자와 양떼가 함께 하는 그런 곳이었으며 어부들이 고기잡이를 하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예수님은 12제자중 11명의 제자들을 갈릴리에서 선택하시고 세우셨습니다. 가룟유다만이 예루살렘 남쪽 도시 출신이었습니다. 작다고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작다고 무익하고 경쟁력이 없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오히려 작기 때문에 빨리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고, 개혁을 할 수 있고 경쟁력을 갖출 수가 있습니다. 작기 때문에 아릅답고 작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 더욱 소중하게 생각될 수 있습니다. 

  많은 곳, 큰 곳에서는 작은 것은 묻혀버리고 소중하게 취급되지 않는 경향성이 있습니다.


  예수 시대나 오늘의 시대나 영원적인 가치가 거대함의 가치에 눌려서 숨쉬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작은 것은 무가치한 것으로 소홀리 취급되기 쉬운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거대함의 가치에 속고 있는 것입니다. 큰 일, 위대한 일, 규모가 큰 것에만 가치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거대함의 가치 그것은 영원함의 가치에 우선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크고 위대해도 일시적인 것이라면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에 진실이 없고 사랑이 없으면 그것은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큰 것을 하겠다고 작은 것에는 소홀리 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작은 것이라도 소중히 여기고 그것을 귀중히 여겨야 합니다. 작은 봉사, 작은 섬김, 작은 자리, 작은 일 그것을 착하고 충성되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께서 갈릴리가 아닌 디베랴 바닷가에서 베드로를 만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세 번씩이 똑같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여기에는 깊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의중, 예수님의 생각, 예수님의 바램이 담겨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 세상이란 거대함을 추구하고 있다. 베드로야, 지금 네가 서 있는 이 자리가 거대함을 추구하는 곳이다. 그런데 너도 세상을 닮아 그렇게 거대함을 추구하면서 살래, 세상 바라보고 살거니? 그렇지 않으면 그 거대함의 가치를 추구하는 세상 속에서 영원함의 가치를 추구하며 내가 네게 맡긴 양들을 치며 살래" 물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뜻은 거대함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주님을 사랑하는데 있음을 밝히 말씀하여 주신 것입니다. 사명을 충성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큰 것 너무 좋아하지 말아야 합니다. 거대함보다는 진실함, 신실함, 착함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으로 보면 거대함을 추구한 것은 모두 망했습니다. 기업도 나라도 민족도 다 거대함을 추구하다가 망했습니다. 공룡도 그 거대한 몸집 때문에 멸종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영원함을 가치로 추구하는 것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거대함을 추구하고 세상권력을 탐하셨다고 하면 오늘의 주님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지혜로운 사람들이 추구해야 할 삶의 자세는 거대함에 가치를 두는 것이 아니라 영원에 가치를 두고 진실에 가치를 두고 사랑에 가치를 두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망하지 않습니다. 그래야 오래도록 유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