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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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운동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안기는 것

유앙겔리온 2003. 10. 23. 22:42


한국의 가을산은 너무 아름답다. 이때야말로 등산하기에 참 좋은 때이다. 그래서인지 등산하는 행렬이 많아졌음을 이곳저곳에서 느낄 수가 있다. 간혹 불미스러운 사고의 소식들이 있어 마음이 아프지만 그래도 가을 산행은 기쁨과 위안과 휴식을 제공해 주기 때문에 그 유혹을 뿌리칠 수가 없다. 가을의 단풍은 나무가 닥쳐오는 추운 겨울을 보내고 새 봄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나무는 누가 지시하지도 아니해도 잎에 있는 영양분을 줄기와 뿌리에 모두 옮겨놓고 잎과 결별을 하는 것이다. 결별을 위한 최후의 몸단장이 단풍인 것이다. 자연은 결별도 아름답게 한다. 가을 산행을 할 때 아름다운 단풍에 정신을 팔려 즐기기에 여념이 없거나 죽자 살자 오르고 내리는 산행이 아니라 나무가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을 보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미래를 준비하는 그런 산행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결별을 아름답게 할 줄 아는 자연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자신도 만났을 때보다도 헤어질 때 더욱 아름다운 모습이고자 힘써야 하겠다. 자연 앞에서 겸손을 배웠으면 좋겠다.

등산을 이야기하면 늘 어떤 등산가의 인터뷰 때에 했던 말이 생각난다. "사람이 산에 오르는 것은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산에 한번 안기는 것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등산가로서는 대단한 업적을 이루었는데도 말이다. 참으로 겸손한 생각이며 겸손한 사람이며 겸손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아름다운 말이었다. 그리고 등산하는 참 의미를 적절하게 표현해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한번 안겼다 내려오는 것이지, 정복했다는 것은 인간의 오만이며 교만이다. 무슨 수로 그 어마어마한 산을 정복한다는 말인가? 바다를 수영했다고 해서 바다를 정복한 것이 아니듯이 산을 올랐다고 해서 산을 정복한 것은 아닌 것이다. 작은 은사나 작은 재능을 가지고도 마치 모든 것에 통달한 사람처럼 구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사람은 겸손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성경을 공부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을 정복한다는 것은 교만이다. 심오한 주님의 말씀의 품에 한번 안기는 정도에 불과하다. 그리고 어느 쪽에서 안기느냐에 따라서 그 느낌도 다르고 깨달음도 다른 것이다. 말씀의 품은 안길 때마다 그 느낌이 다르고 묵상할 때마다 그 주시는 은혜가 다르다. 그래서 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오르고 또 오르고 하면서도 실증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 하나님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묵상하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생각을 한다. 수 십독을 하고 수 백독을 해도 여전히 새로움은 더해진다(가을 산행을 이야기 하다가 또 성경이야기로 빠져버렸네. 숨길 수 없는 목사의 직업의식 때문에.....).

미국의 하이웨이에는 3R의 표지가 있다(미국의 도로는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도로는 홀수 이고 동서로 가로지르는 도로는 짝수 번호가 붙어 있다). Rest-휴식을 취하라. Refill-기름을 채우라. Refection-기분전환을 하라. 몇 날 며칠을 가로질러 가야 하는 먼 길이기 때문에 3R을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인생의 하이웨이에도 3R은 필요하다. 가을 산행을 통해서 이것을 얻어 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정복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안긴다고 생각하면서 산행을 해보자. 휴식과 보충과 기분전환의 유익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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