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원한을 품지 말라 본문
일찍 핀 꽃들은 벌써 다 지고 말았다. 올 봄은 잦은 비바람으로 인해서 더욱 꽃의 수명은 짧아졌다. 지금도 밖에는 비가 오고 있는데 꽃잎에 달린 빗방울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여 꽃잎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렇지만 떨어지는 꽃잎을 바라보며 그리 슬퍼할 이유가 없는 것은 꽃은 시들어 떨어지지만 씨앗은 남기 때문이다. 꽃은 시들지만 시들어 떨어지는 꽃은 반드시 씨앗을 남기게 된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이며 법칙인 것이다. 꽃이 본질이 아니라 오히려 씨가 본질에 속한다. 모든 생명체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종족과 종속을 보존하고 번식하려는 고유의 작용을 하게 된다. 식물이 꽃을 피우는 것도 역시 그러한 이유에서 이다. 그렇다면 꽃이 시들고 떨어지는 것을 아쉬워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사람이 살다보면 좋은 일만 있는 법은 아니다. 원치 않게도 궂은일을 만날 때도 많이 있다. 그러나 궂은일이라고 해서 반드시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우리 원치 않는 궂은 일로 인해서 도리어 우리네 인생은 또 다른 기회를 맞게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게 궂은 것을 안겨다 준 이들에게 원한을 품어서는 안 된다. 원한을 품는 것이 인간답다고 원한을 부추기며 원한을 정당화 시키는 이들도 이 세상에는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원한의 에너지는 결코 인생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원한을 품으면 제일 먼저 피해를 보는 사람은 원한을 품고 있는 본인인 것이다. 그러므로 오히려 인생에게 부딪쳐 오는 궂은일들과 그것을 안겨다 준이들에 대해 원한을 쌓기 보다는 이것을 통하여 내 인생에 무슨 씨를 맺게 할 것인가를 기대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향한 모욕이나 비난이나 험담들에 대해서 원한을 품지 않으셨다. 오히려 침묵하시고 그들을 민망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셨다.그리고 그런 것들에 대해서 마음을 허비하거나 두려움을 가지지 아니하셨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자신을 죽음으로 내몰고간 이들을 위하여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하고 자신에게 고통을 안겨다 준 이들을 용서하시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셨다. 주님은 원한을 품는데 삶을 낭비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자신의 사명에만 관심을 가지셨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시들고 결국은 떨어진다. 그러나 시들어 떨어진 자리에 씨를 만들어 내는 것이 사명이기에 그 사명에 충실할 뿐인 것이다. 예수님은 원한을 품는 일에 에너지를 사용하시지 않고 사명을 수행하는 일에 온 에너지를 사용하셨다.
각종 분쟁과 테러와 난리와 전쟁의 뿌리에는 원한이 자리 잡고 있다. 이것이 대립과 분쟁과 적대의 뿌리 되는 에너지이다. 평화를 원하면 원한을 품는 대신 받은 상처를 흘려보내버리고 상대에 대해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고서는 문제를 더욱 꼬이게 할 뿐이다. 원한을 품을 만한 일들이 있을 때 더욱 자신의 사명을 발견하고 그 사명에 전 에너지를 사용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원한의 사슬은 끊기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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