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편견(偏見)이란 괴물 본문
얻기는 쉬우나 버리기는 참 어려운 것이 편견이란 괴물이다. 제국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착취행위를 당연한 권리로 생각을 한다. 착취를 당하는 쪽은 열등하기 때문에 당연히 착취를 당해야 한다고 여기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근본주의자들은 교리수호라는 미명 아래 성서에 대한 문자주의(文字主義)와 아전인수격(我田引水格)의 성서해석을 서슴치 않는다. 그리고 기독교의 진리에 대해서 정직하게 이해하고 실천하기 위해 질문을 제기하는 것조차 불신앙적인 태도로 매도를 하고 이단시를 하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 남자들은 여자들에 대해서, 비장애인들은 장애인에 대해서, 어른들은 아이들에 대해서 자신들이 훨씬 더 우월하고 상대는 열등하다고 생각을 하는 편견들을 가지고 있다. 요즈음 여당과 야당의 편견이 너무 심하다. 몇몇 신문들의 편견은 도가 지나친 것 같다. 자기들이 하면 옳고 다른 이들이 하면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잘못이라고 한다. 그러다가 또 자리가 바뀌고 상황이 바뀌면 슬그머니 주장하는 것도 바뀌고 만다. 정론을 펼쳐야할 사람들과 기관이 편견에 사로잡히니 꼴값을 떨게 되는가 보다.
그런데 이러한 편견들은 아무리 좋은 이유를 가져다 붙이고 꾸민다고 하여도 결국 자기중심적인 산물이라는 것이다. 자기의 편견은 사적인 견해일 뿐 사실 보편타당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무서운 것은 하나의 경향성으로 굳어지고 이해타산이 맞아 떨어지는 사람들에 의해 지지세력을 얻게 될 때 정통이 되고 도그마가 되어 거역할 수 없는 억압적 권위가 되고 가치판단의 잠금장치가 되는 것이다. 모두들 약간의 편견을 다 갖고 있기 마련이지만 이러한 편견을 얼마나 작게 가지고 살아가느냐가 그 사람됨의 척도를 말해주는 것일 게다.
내가 오래 전에 어디선가 보고 옮겨놓은 재미난 글귀가 있는데 그 출처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오늘 쓰고 있는 글의 주제와 연관이 있는 듯해서 여기 소개하기로 한다.
“사람들 중에는 다른 사람이 기발한 일을 할 때는 홍두깨라고 말하고 자신이 그런 일을 할 때는 새로운 착상이라고 한다. 다른 이가 뜻을 바꾸지 않을 때는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라 하고 자신이 뜻을 바꾸지 않을 때는 의지가 굳은 사람이라고 한다. 다른 이가 뜻을 바꾸면 변덕쟁이라고 하고 자신이 뜻을 바꾸면 자신이 뜻을 바꿀 때는 추진력이 있다고 한다. 다른 사람이 농담할 때는 실없는 사람이라고 하고 자신이 그런 말할 때는 유모감이 넘친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이 시간이 걸릴 때는 꾸물거린다고 하고 자신이 그럴 때는 꼼꼼하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이 기분 좋게 팍팍 쓸 때는 낭비한다고 하고 자신이 그렇게 팍팍 쓸 때는 화끈하다고 한다. 다른 사람이 약점을 들추면 헐뜯는다고 말하고 자기가 그럴 때 충고한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이 우유부단하면 줏대가 없다고 하고 자신이 그럴 때는 처세술이 좋다고 말한다. 다른 이가 화려하면 사치한다고 하고 자신이 그럴 때는 멋쟁이라고 말한다. 다른 이가 모험을 할 때는 무모한 짓이라고 하고 자신이 그럴 때는 과감한 시도라고 한다. 다른 사람이 유순하면 맥없는 사람이라고 하고 자신이 그럴 때는 사회적인 사람이라고 한다.”
편견이란 것이 얼마나 일방적이고 자기 이기주의인가를 보여주는 내용이다. 편견에 사로잡히면 그 시대의 사회와 공동체의 의와 공평의 저울은 무너지고 만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종교적 편견, 신앙적인 편견에 사로잡힐 경우 남을 너무 쉽게 판단하고 정죄하는 잘못에 빠지고 만다. 이것은 몸만 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까지 상처를 입히는 것이 되기 때문에 더욱 무서운 것이다. 그러므로 편견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편견을 바로 잡아야 한다.
'살림운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을 배려하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그리운 때다. (0) | 2002.09.18 |
---|---|
살아 있다는 현실만 있으면 하지 못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0) | 2002.09.11 |
Calling Out (0) | 2002.08.28 |
불필요해 보이는 보다 더 넓은 면적 (0) | 2002.08.22 |
바다가 살아야 우리가 삽니다 (0) | 2002.08.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