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Calling Out 본문
우리는 완장 시대를 거쳤다. 그렇지만 현재에도 보이지 않는 완장은 여전히 우리 의식과 삶 속에서 마력을 발휘하고 있다. 윤흥길이 쓴 소설 에 ‘완장’이란 작품이 있다. 이 작품에 보면 무지렁이 청년이 어느 날 저수지 감시원이 된다. 감시원 완장을 차고 나서니 저수지에 오는 사람들이 설설 그 앞에서 기는 것이었다. 그래서 차츰 완장의 마력에 취하게 된다. 자신이 엄청난 존재인 줄로 착각 한다. 권세를 휘두른다. 결국 완장 때문에 그는 파멸하고 만다. 집착과 과욕이 덫이란 것을 누구나 다 안다. 그런데, 이 덫에 걸린 사람만은 그것을 모른다. 참 무서운 덫이다. 거기에서 속히 빠져나오는 것이 살길인 것이다.
집착을 버리고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일은 모든 개혁과 갱신의 시작이며 시금석이다. 그리고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집착과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것이 좋은 신앙생활의 출발점이다. 내 생각에 집착하고 내가 살아왔던 삶의 틀에 메여 있으면 결코 좋은 신앙인이 될 수가 없다. 주님은 너의 방법을 버리고 내 방법을 택하라고 말씀하신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니 그 차이가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이나 크다"고 하셨다. 주님은 하늘의 방법을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땅의 방법만 생각하고 있다고 하면 접촉점이 없다. 이것은 영원한 평생선이 될 수밖에 없다. 신앙생활은 집착과 고정관념으로부터 떠나고 나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사용하시기 위해서 “본토 친척 아비 집”으로부터의 떠날 것을 명하셨다. 아브람은 본토 친척 아비 집으로부터 벗어남으로써 아브라함이 되었던 것이다.
집착과 고정관념을 버리지 못하고 떠나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새롭게 준비해 놓으신 것을 받을 수 없고 누릴 수 없고 나눌 수 없다. “롯의 처를 생각하라”고도 했지 않는가? 롯의 처는 소돔을 뒤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었던 여인이다. 성경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생활을 통하여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을 보지 못하고 죽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우리로 하여금 목도하게 하였다. 그리고 우리가 목도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들은 애굽의 고기 가마와 떡반죽 그릇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에 가나안을 향하여 앞으로 나가는 에너지를 얻지 못했다. 예수시대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성전종교와 회당종교, 제사종교와 율법종교에서 나오지를 못하였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는 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낡은 헌옷에 생배조각을 붙이는 것과 같은 약간의 개조나 보수나 변경이 아닌 구습의 썩어질 것으로부터 완전하게 탈출할 것을 요구하신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것이다. 주님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리라”(요 2:19) 하신 것은 성전종교나 제사종교나 율법종교의 부분적 증축이나 개축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주님이 말씀한 “에클레시아”는 그런 옛 언약(言約)이나 옛 율법이나 옛 종교의 보수나 유지나 연장이나 답습이 아니었으며, 그 자루나 부대로나 전대로 구겨져 들어가는 구원이 아니었다. 거기에서 나오지(Called Out) 않으면 안 된다는 새 약속인 것이다. 성전종교와 율법종교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유대나 이스라엘 왕국인데 비하여 주님의 교회의 목적은 “하나님 나라”였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에클레시아”는 변질된 “성전” “성소” “단” “제물” “산당” “제사장”과 같은 이런 “성전종교”와 “제사종교”의 모든 옛것으로부터 “Calling Out”인 것이다.
한국기독교연구소장으로 있는 김준우씨는 21세기 기독교 총서를 발간하는 발간기에서 21세기는 인류의 생존과 평화를 위한 문명전환의 마지막기회가 될 것으로 보면서 “인간중심주의, 개인중심주의, 소유중심주의를 극복하고 생명중심주의, 우주중심주의, 존재중심주의로 패러다임을 전환하지 않으면 21세기는 짐승화의 세계가 되고, 인류문명은 파국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옳은 말이다. 20세기적 사고의 집착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고 떠나야 한다. 그래야 희망이 있는 것이다. 완장을 두르고 폭력과 지배와 높아짐과 착복을 성공으로 생각하고 그것에 집착했는데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뒤따름으로써 섬김과 봉사와 낮아짐과 나눔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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