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삼상 23:1~5) 본문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
삼상 23:1~5
삼상23:1 사람들이 다윗에게 전하여 이르되 보소서 블레셋 사람이 그일라를 쳐서 그 타작 마당을 탈취하더이다 하니
삼상23:2 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
삼상23:3 다윗의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유다에 있기도 두렵거든 하물며 그일라에 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치는 일이리이까 한지라
삼상23:4 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삼상23:5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일라로 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워 그들을 크게 쳐서 죽이고 그들의 가축을 끌어 오니라 다윗이 이와 같이 그일라 주민을 구원하니라
다윗은 악령이 든 사울왕에게 쫓기고 있는 도망자 신세입니다. 사울은 다윗을 자신의 정치적 걸림돌로 여겨서 그를 죽이려고 여러번 시도했습니다. 사울은 자신에게 쫓기고 있던 다윗을 도와준 제사장 아히멜렉 집안을 전멸시켜버리가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을 발견한 사람들은 누구든지 사울왕에게 보고하도록 해서 위치를 추적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의 처지는 언제 사울에게 죽임을 당할지 모르는 그런 처지였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처지를 시 54:3절을 통해서, "낯선 자들이 일어나 나를 치고 포악한 자들이 나의 생명을 수색하며 하나님을 자기 앞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셀라”라고 했습니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힐 일입니까? 다윗은 하나님을 외면하고 자신의 생명을 노리고 수색하는 포악한 자들에 의해 위협적인 공격을 당하는 것이 다반사였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발길 닿은 곳마다 그의 행적을 밀고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10여 년간이나 이리저리 쫓겨 다니며 수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런 아주 다급하고 불리한 처지에 놓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다윗을 찾아와서 그에게 전하여 준 소식이 "블레셋 사람이 그일라를 쳐서 그 타작 마당을 탈취하더이다"라는 서글픈소식을 전하여 듣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왕인 사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도망자 다윗에게 그일라 주민이 도움을 요청한 것입니다.
다윗의 입장에서 그일라 주민의 소식을 듣고 그들을 구원하는 일에 참여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자신도 지금 쫓기고 있는 도망자 신세인데 그런 처지에 있던 다윗으로서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불레셋의 손아귀에서 그일라 주민을 구해 주려고 결정하는 것이 어디 그렇게 만만한 일이었겠습니까? 그일라를 구하려고 나서는 일은 자신을 추적하는 이들 앞에 '나 여기있소'하는 것과 바를바가 없었습니다. 뿐만아니라 하필이면 왜 내가 구해 주어야 하는가라는 의문점을 가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일라 주민을 구하는 일은 사울왕과 그의 군대가 해야 할 인데 할 수도 있습니다.
거기다가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다윗의 측근들조차도 다윗이 그일라에 신경쓰는 것을 반대하고 항의를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가 유다에 있기도 두렵거든 하물며 그일라에 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치는 일이리이까?" 표준새번역을 보면, "우리는 여기 유다에서도 이미 가슴을 졸이며 살고 있는데, 우리가 그일라로 출전하여 블레셋 병력과 마주친다면, 얼마나 더 위험하겠습니까?"라고 불만을 토로한 것입니다. 다윗의 사람들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반대하고 나서는 일입니다. 가까운 사람들의 반대를 물리치는 일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분명 다윗에게는 자신이 나가서 싸워야 할 작접적인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습니다. 상황도 처지도 남을 도와야 할 만큼 여유롭지 못했습니다. 다윗의 사람들이 항의하고 있는 것처럼 지금 상황에서도 가슴졸이고 살고 있는데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치는 일은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모르지 않습니다. 핑계대를 댈려면 얼마든지 댈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블레셋이 누구이며, 블레셋이 무엇입니까?
당시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공존해 있었던 때로 사사시대부터 계속된 원수와 같은 관계인 것입니다. 블레셋은 이스라엘이 늘 마음 조리며 전쟁하는 대상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전쟁이 실패한 전쟁으로는 엘리제사장 때 언약궤를 빼앗기기까지 한 전쟁이었고, 승리한 전쟁으로는 다윗이 물 맷돌로 골리앗을 죽인 전쟁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사건도 이전에도 끊임없이 있어왔던 추수기의 탈취 상황이 또 다시 재연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은 여전히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끊임없이 블레셋처럼 우리의 영역을 침범하여 탈취하는 일을 합니다. 우리는 영적 전쟁 중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일라는 누구이며 그일라는 무엇입니까?
가나안 정복 후 여호수아에 의하여 유다 지파에게 할당된 지역이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서 이리저리 도망자 신세이기는 하나 이미 그는 사무엘에 의해서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유다에 속한 그일라가 블레셋에 의해서 침략을 당하여 타작한 것을 탈취당했다는 소식을 듣었다는 것은 단순한 개인적인 도움을 요청받은 것이 아닌 하나님의 소명으로 느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이 소식을 듣고 다윗은 사람들에게 묻지 않고 여호와께 물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의문이나 가까운 사람의 반대를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 질문이 바로 다윗이 두번씩이나 하나님께 물었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였습니다. 자신의 상황도 좋지 않았지만 그일라 주민을 구출하려 가야 하는 건지 하나님께 물어 보았던 것입니다. 갈 마음이 없었다면 하나님께 묻는 일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고 두번씩이나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여유있고 건강하고 상황이 좋을 때 일을 감당하고 헌신하고 봉사하는 것도 값진 것이고 좋은 일이지만 그렇지 못할 때 한 것이라고 하면 더욱 값지고 귀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일을 내 형편이 좋을 때만 하려 한다면 그것은 믿음의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형편이 좋을 때나 형편이 나쁠 때나 한결같이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과 일을 감당해야 하는 줄로 믿습니다.
다윗이 자신의 형편보다는 자신의 사명을 먼저 생각하고 나아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일라로 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워 그들을 크게 쳐서 죽이고 그들의 가축을 끌어 오게 하였고 다윗으로 하여금 그일라 주민을 구원하도록 했다"고 했습니다.
다윗이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께 묻고 유불리를 따지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그일라 주민을 구한 것 뿐만 아니라 많은 가축들을 전리품으로 가져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알지 못하는 것들을 준비해 놓으신 후에 우리들에게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관심이 어디 있는지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비전이 어디 있는지 분명합니다. 그일라와 같은 영혼이며, 그일라와 같은 지역이며 그일라와 같은 나라와 민족입니다. 우리의 형편 핑계대고 주의 일을 모른채 하는 성도들이 한분도 없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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