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삿 6:11~14) 본문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삿 6:11~14
삿6:11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삿6:12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
삿6:13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 또 우리 조상들이 일찍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 주셨나이다 하니
삿6:14 여호와께서 그를 향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하시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 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섬겨주시니 미디안의 손이 이스라엘을 이겼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미디안의 노략질과 압제로 인해서 궁핍함이 심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디안을 피하고 피해서 산에다 구멍과 굴과 산성을 만들고 생활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t숨이 막혀오는 지경에서 이스라엘 자손은 여호와께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에게 다 빼앗겨도 유일하게 빼앗기지 않은 것은 여호와께 부르짖는 기도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한 선지자를 보내셔서 미디안에 의해서 고통당하게 된 이유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설명해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찾아오셔서 상수리 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습니다. 이때 마침, 요아스의 아들인 기드온이 미디안의 노략질과 압제 때문에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밀을 포도주 틀에서 숨어서 타작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자신의 이득을 미디안에게 빼앗기지 않고 얻기 위한 지혜로운 모습이기는 하지만 소심하고 나약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어디를 보아도 용사다운 면모를 찾아볼 수 없는 모습입니다.
기드온에게 찾아온 하나님의 사자는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신 말씀을 듣고 기드온이 즉각적인 반문을 합니다. 그 반문의 내용이 오늘 주제가 된 말씀인 "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 또 우리 조상들이 일찍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어찌하여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붙이셨나이까?" 하고 질문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기드온의 질문은 기드온에게만 있는 질문이 아닙니다. 성경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어찌 이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 할만한 일들이 무수히 많았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 앞에 기드온처럼 질문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왜 이렇습니까?
사실 이러한 기드온의 질문은 몰라서 물은 게 아닙니다. 지금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지 않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신다'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여호와의 사자에게 억장이 무너져서 반발하고 분노하고 탄식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냉소적인 질문하는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기드온도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일반적인 소시민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니 기드온은 지금 왜 하나님의 사자가 찾아오셨는지, 왜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이 아닌 기드온을 찾아오셨는지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하나님 앞에 불평불만을 쏟아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면 어찌 지금 내가 미디안 사람들이 두려워서 이렇게 수확한 밀을 포도주 틀에서 숨어서 타작을 하고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요?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십니다. 보세요, 지금 현실이 이런 상태에 놓여 있는데 이것이 하나님이 함께 하신 결과입니까? 하고 따지듯 질문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현실을 본다면 기드온의 말이 절대 틀리지 않습니다. 미디안의 압제는 보통 매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무슨 원인과 이유에서도 이런 서러움을 당하게 된 것이 원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거기다가 지금 기드온은 주업인 밀을 생산 하고서도 타작조차도 떳떳하게 하지 못하고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는 이상한 타작 방법으로 타작을 하고 있습니다. 원래 밀 타작은 마당이나 넓은 들판에서 타작용 마차나 황소의 발굽을 이용하여 하였으나, 기드온은 미디안 족의 눈을 피해 좁은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던 중이었던 것입니다. 왜 기드온이 그런 타작 방법을 사용했겠습니까? 그것은 미디안이 무서워서였습니다. 자신의 이득이 빼앗길까 봐 숨어서 타작을 한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큰 용사여"하신 것도 마음에 걸렸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생각해보아도 부끄러운 모습을 하고 있을 때 그 모습을 여호와의 사자에게 들켰는데,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사자를 통해서 "큰 용사"라고 하셨습니다. 큰 용사라는 말 '깁보르 헤하일'은 '능력 있는 용사'를 의미합니다. 룻 2:1 에서는 이 말이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 중 유력한 자가 있으니 이름은 보아스더라"에서 보는 것처럼 '유력한 자', 곧 '재산과 덕망, 그리고 세력을 겸비한 사람'으로도 번역되었습니다. 당시 미약한 므낫세 지파 중에서도 매우 작은 요아스 가족의 한 사람인 그를 어떤 사람도 큰 용사라고 보지 않았으며 기드온 자신도 스스로를 큰 용사로 보지 않았습니다.
기드온이 실제로 '깁보르 헤하일'이 아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보셨습니다. 기드온은 본래 연약하며 작은 자였을 수도 있지만, 그 안에 기드온 자신도 보지 못한 거인을 하나님은 보셨을 수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비록 그가 비겁한 자였을지라도 지금이라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그가 큰 용사, 유력한 자가 된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이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던, 자신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던, 그리고 남들이 어떻게 평가하던 하나님이 그렇게 생각하고 부르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러다시면 그렇게 될 것이 틀림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의 현실적인 질문을 들으시고 "그에게 향하여 이르시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탓하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돌아서서 그를 그윽이 바라보시며 그에게 말씀해주셨다는 것입니다.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하셨습니다.
새 가슴을 하고 있는 기드온에게 그리고 불평하고 원망하며 냉소적인 질문이나 하는 기드온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다니 기드온은 아마 자기 귀를 의심했을 것입니다. 내가 누구 관대 이 일을 하라고 하시십니까? 기드온의 질문과 충격은 우리와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불평불만하는 자여, 너희가 그렇게 된 것은 죗값이 아니더냐? 그래 그 정도밖에 안된다는 말이냐, 그렇다면 꺼져라. 너 아니어도 용사는 많다." 하시면서 꾸짖거나 나무라지 아니하시고 기드온의 투정을 받아주셨습니다. 그의 질문에 하나님이 하나님께서 함께 계심을 증거 해주셨습니다. 드디어 기드온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300명의 용사로 미디안에게 큰 승리의 역사를 일궈냈습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자를 택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십니다. 기드온은 정말 소심하고 유약한 겁쟁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겁쟁이 인 기드온도 큰 용사가 될 수 있습니다. 기드온이 미디안의 군대와 싸울 무기는 다름 아닌 '하나님이 함께 하심'입니다. 우리가 누구를 두려워해야 하는지 자주 잊어버리곤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마땅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지 아니하시면 우리의 대적은 한없이 강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아무리 강한 적도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의 대적이 될 수가 없을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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