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내가 어찌 갈 수 있으리이까?(삼상 16:1~5) 본문

인간의 질문

내가 어찌 갈 수 있으리이까?(삼상 16:1~5)

유앙겔리온 2021. 11. 3. 23:06

내가 어찌 갈 수 있으리이까?
삼상 16:1~5

삼상16:1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 하시는지라
삼상16:2 사무엘이 이르되 내가 어찌 갈 수 있으리이까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암송아지를 끌고 가서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 하고
삼상16:3 이새를 제사에 청하라 내가 네게 행할 일을 가르치리니 내가 네게 알게 하는 자에게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을지니라
삼상16:4 사무엘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여 베들레헴에 이르매 성읍 장로들이 떨며 그를 영접하여 이르되 평강을 위하여 오시나이까
삼상16:5 이르되 평강을 위함이니라 내가 여호와께 제사하러 왔으니 스스로 성결하게 하고 와서 나와 함께 제사하자 하고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성결하게 하고 제사에 청하니라

  사무엘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변나라들을 바라보면서 우리들도 저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주변나라들과 같은 제도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왕을 세워달라고 애원 해서 최초로 세운 왕이 사울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왕으로 인해서 이스라엘은 좋은 쪽으로 변화되지 못하고 나쁜 쪽으로 변화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사울은 처음 기대와는 달리 반복된 실수로 신망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사울에게 보내 잃어버린 신망을 회복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울에게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아말렉을 진멸하라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명하신 것은 아말렉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어떤 상황속에서도 보호받아야 할 대상인 늙거나 병들어 대열에서 뒤처진 자들을 무자비하게 죽인 죄악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울이 이 말씀에 순종하는척 했으나 결국은 자기 생각과 자기 기준대로 순종함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결정적으로 불순종한 것입니다. 아말렉을 완전히 진멸하지 않았고 진멸한척만 했습니다. 자기 눈에 가장 약한 것들, 볼품없고 가치없는 것들은 죽이고 좋은 소와 기름진 양을 남겼으며,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말렉 왕 아각을 살려두었습니다. 그리고 갈멜로 가서 자기 이름을 기리기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울의 행위를 하나님이 지켜보셨던 것입니다. 

  사울은 이로 인하여서 주어진 기회를 잃어버리는 우를 범합니다. 이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사울왕을 버리고 새 왕을 세우시려는 계획을 세우셨고 그 일을 사무엘에게 지시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울의 이런 모습이 어리석은 모습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하나님 순종도 말씀대로 순종이 아닌 우리의 생각대로 하는 순종에 머물러 결과적으로는 불순종이 되게 할 때가 많습니다. 내가 내 생각대로의 순종이 아닌 절대순종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생각을 알고나서 사울왕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운 당사자로써 사울의 일로 많이 마음 아파하고 오래도록 슬퍼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 하시는지라"하시는 말씀까지 들어야 했습니다.  

  여기서 '보았느니라'(히, 라이티)는 '기쁨으로 보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왕을 대신해서 새로운 이스라엘의 왕으로 뽑을 자를 매우 기뻐하셨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 하나님을 기쁨으로 보도록 하셨습니까? 오늘 주시는 본문말씀 이전에 두 곳에 걸쳐서 그 이유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한번 살펴 보도록 합시다. 삼상 13:14절 말씀,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 하나님이 보신 자는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구절 삼상 15:28절 "사무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나라를 왕에게서 떼어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셨나이다." '사울보다 나은 사울의 이웃'이라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라이티'(히, '기쁨으로 보았다')라는 말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말을 들을 수 있으려면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어어야 하고, 현재의 비난 받고 있는 사람보다 더 나은 그의 이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버리시기로 작정하신 자 보다 하나님이 마음에 맞지 아니하고, 현재 비난 받고 있는 이보다 더 나쁜 이웃이라고 한다면 구태여 바꿀 필요도 없고 개혁을 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이 하나님 마음에 맞지 않는 자를 버리고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자를 세우기 위해서, 현재 사울왕보다 더 나은 사울의 이웃을 새 왕으로 세우기 위해서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가지고 가라"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내가 어찌 갈 수 있으리이까?'(How can I go?)라고 했습니다.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그 말씀이 어떤 말씀이든지 사무엘 정도 되면 '내가 노래하며 가리라'(Singing I go)고 해야 옳지 않겠습니까? 그럴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그와는 달리 "내가 어찌 갈 수 있으리이까?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했습니다. 

  사무엘은 자신의 슬픔과 상처 난 감정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겁을 먹고 있었습니다.  개혁을 할 때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이 바로 두려움입니다. 변화를 수용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이제 노년은 좀 편히 살아도 되고 그렇게 모험을 하면서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뜻 하나님 말씀을 따르지 못하고 하나님께 자신의 입장과 사정을 아뢰었던 것입니다. 

  사무엘이 한 말 중에 아주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삼상 15:22~23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그랬던 사무엘이 "내가 어찌 갈 수 있으리이까?"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의 말을 들으시고 사울이 들어도 죽임을 당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처리하는 방법을 사무엘에게 일러주십니다. "너는 암송아지를 끌고 가서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 하고 이새를 제사에 청하라 내가 네게 행할 일을 가르치리니 내가 네게 알게 하는 자에게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을지니라" 하신 것입니다. 
 
  내가 어찌 갈 수 있으리이까? 한 사무엘에게 지혜를 주시고 피할 길을 열어주심으로. 사무엘의 사역과 그의 인생을 책임져 주시고 보호해 주신 하나님을. 우리는 확인 할 수가 있습니다. 

  드리어 "사무엘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여"(4절) 사무엘은 자신의 슬픔과 상처 난 감정,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하나님께 순종합니다. 그것은 두렵고 떨리는 말씀이었고, 만약 이러한 행위가 사울에게 알려진다면 그의 생명을 내놓아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순종하고 일어섭니다. 이것이 사무엘 다움입니다. 결국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갈 수 없을 것 같은 길을 묵묵히 걸어갑니다. 그렇게 걸어갈 때, 하나님의 크심을 알게 되며. 그 길을 포기하지 않고 걸어갈 때,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집니다. 하나님의 새 역사는 시작되고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어찌 갈 수 있으리이까?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 했던 사무엘이 이러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베들레헴에 가서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제사에 초청했습니다. 사무엘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새왕을 세우는 일을 하게 되고 사울의 시대에서 다윗의 시대로 새시대를 열게 되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