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주여 어찌하여?(출 5:22~23) 본문

인간의 질문

주여 어찌하여?(출 5:22~23)

유앙겔리온 2021. 9. 3. 18:56

주여 어찌하여?
출애굽기 5:22~23

출5:22 모세가 여호와께 돌아와서 아뢰되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이 학대를 당하게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출5:23 내가 바로에게 들어가서 주의 이름으로 말한 후로부터 그가 이 백성을 더 학대하며 주께서도 주의 백성을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애굽 왕 바로에게서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보내라 담대히 말합니다. 용기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즉시 좋은 일이 일어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왕 앞에 선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돌아온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더 센, 더 강도 높은 노역 뿐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기록원들이 바로에게 나가서 어찌하여 이와 같이 하시나이까했을 때, 바로는 그들에게 모세가 나에게 와서 너희들을 보내달라고 했기에 내가 더 센 강도의 노역을 주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에게 몰려와서 "너희가 우리를 바로의 눈과 그의 신하의 눈에 미운 것이 되게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는도다 여호와는 너희를 살피시고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출5:21) 라고 비난한 것입니다. 

  칭찬을 들을 일을 했는데 오히려 비난과 원망을 듣게 된다면 그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사람이 이럴 때처럼 마음 상하고 억울한 일이 없을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은 지금까지 쌓아온 인생의 기득권과 안정된 삶을 다 버리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키기 위한 대장정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쉬운 길을 그들에게 주시지 않았습니다. 바로의 마음을 강팍하게 해서 떠나려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쉬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로 하여금 바로왕으로부터 거절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도우려고 했던 동족의 어른들에게 쓰디쓴 항의를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결과가 좋지 못했습니다. 바로와 그 방백들에게서 해방을 약속했으나 도리어 바로와 그 신하의 눈에 미운털이 박히게 되었습니다. 도우려고 한 일이 오히려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런 결과에 대해서 가만히 있을 그런 넉넉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애굽의 종살이를 하면서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가혹한 노동이 주어졌고, 히브인들의 기록원들이 바로왕에게 왜 우리를 이렇게 혹독하게 다루시며 가혹한 노동을 시키십니까? 호소를 했을 때, 바로 왕은 가혹한 노동의 원인을 모세와 아론에게 돌립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비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 때문에 자신들이 죽게 생겼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활한 바로의 계락입니다. 히브리인들끼지 불신과 다툼을 하도록 조장을 한 것입니다. 

  이런 바로 왕의 전략은 사단의 전략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우리를 하나님과 떨어뜨려 놓고 하나님을 믿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아주 치밀하고 교활한 방법을 사용합니다. 바로 믿음의 형제자매들로 하여금 불신과 다툼을 하게 해서 공동체를 붕괴시키는 것입니다. 일치단결하지 못하게 하고, 연합하지 못하게 합니다. 
  
  주님의 구원의 손길이 때때로 환난이나 시험이나 시련으로 닦아올때 우리의 모양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불신과 다툼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100% 사탄의 함정에 빠지는 것입니다. 바로왕의 계략은 적중했습니다. 기록원들로 인하여 촉발된 불신과 원망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번지게 되었고, 모세와 아론을 괴롭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원망과 비난 앞에서 모세는 괴로웠습니다. 원수가 자신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형제가 자신을 공격하는 말들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순종의 결과 이렇게 나타날 줄은 몰랐습니다. 

  이 때에 모세는 어떤 선택을 했습니까? 
  모세는 이전처럼 사명을 벗어나려고 핑계를 대거나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멀리 도망치지도 아니했습니다. 여호와께 돌아와서 하소연하고 탄원을 합니다. 괴로운 심정, 고통스러운 마음을 하나님께 토로합니다. 상처입고 실망해서 미디안으로 돌아가버리거나, 다른 누군가에게 가서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가서 질문하고 따져 묻고 탄원했습니다. 이렇게 한 것은 이제 모세가 참된 믿음의 자리로 더 가까이 다가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으로 학대를 당케 하셨습니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습니까?"라고 반복해서 어찌하여를 사용하면서 하나님의 본뜻을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냐고 따지듯이 묻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미 이와 같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예고하신 일이 아니었던가요? 출 4:2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전에 모세에게 예고하시기를 "내가 바로의 마음을 강팍하게 하겠기 때문에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주지 아니할 것이라"하셨습니다. 이렇게 분명하게 예고해 주셨는데도 모세는 그 말씀을 잊어버리고 이렇게 불평같은 질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시적으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함으로 이스라엘의 구원의 기쁨을 더하게 하시고 시험 후에 더 큰 복을  준비해 두신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런 깊이 있는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뜻을 알았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들고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위에 굳게 서야 했습니다. 이렇게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일했는데 어떻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지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신실하게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을 가져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바로왕과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고 하면서 정면으로 도전하는 바로왕과 같은 어리석은 인간이 이 세상에는 많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을 반드시 멸망하게 되고 내 백성들을 가려내는 날 결국은 심판을 당하게 됩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구원의 감격을 기뻐하다가도 구원의 과정 속에서 오는 괴로움과 죄악을 벗어버리지 못한데서 오는 손해나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세상세서 버림받거나 세상에게 미움을 받는 대상이 되는 것을 불행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런 그리스도인은 성숙하지 못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이런 사람들로부터 오는 불신과 원망과 다툼이 일어날 때, 이 순간에 나는 어떤 선택을 합니까? 이런 핑계 저런 핑계 대면서 도망가거나 하나님을 원망하가 불신앙하지는 않습니까? 스스로 답을 찾으려고 방황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답을 찾지는 않습니까? 

  모세는 이 때에 하나님께 나아와서 하나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거절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그 부르짖음에 응답하시고 아주 자세하게 앞으로 진행될 일들을 알려주셨습니다. 6:1절을 보세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내가 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보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그의 땅에서 쫓아내리라"했습니다. 하나님은 더 큰 능력을 바로에게 행할 테니 그저 바라보고만 있으라 하신 것입니다. 바로의 저항이 강할지라도 더 큰 능력으로 반드시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선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말씀을 믿고 의지함으로 끈질기게 하나님께 나아가 아뢰어 묻고 그 응답을 기다리므로 현재의 고난을 장래의 영광으로 바꾸어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