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작은 일로 여기느냐?(겔 34:17~19) 본문

하나님의 질문

작은 일로 여기느냐?(겔 34:17~19)

유앙겔리온 2021. 2. 22. 21:40

작은 일로 여기느냐?
겔 34:17~19

겔34:17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나의 양 떼 너희여 내가 양과 양 사이와 숫양과 숫염소 사이에서 심판하노라
겔34:18 너희가 좋은 꼴을 먹는 것을 작은 일로 여기느냐 어찌하여 남은 꼴을 발로 밟았느냐 너희가 맑은 물을 마시는 것을 작은 일로 여기느냐 어찌하여 남은 물을 발로 더럽혔느냐
겔34:19 나의 양은 너희 발로 밟은 것을 먹으며 너희 발로 더럽힌 것을 마시는도다 하셨느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도성인 예루살렘과 유대의 근본이 무엇이었습니까? 에스겔서의 시각으로 보면, 그들은 피투성이로 들에 버려져 죽어가던 자였습니다. 마귀의 종노릇하며 헤매이던 자였습니다. 아무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한 자와 같았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출처였고 근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와같은 피투성이와 같은 어린아이를 업어와서 더러운 것을 다 꺠끗이 씻겨주고 양육하고 돌보아 가장 아름답고 존귀하고 영화로운 하나님의 신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 명성이 이방인 중에 퍼졌고 신부는 존경과 칭찬과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신부된 유다는 이와 같은 일을 작은 일로 여기고 음행하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장터마다 음행하는 침상을 손수 만들고 지나가는 누구나 그의 음행하는 침상으로 끌어드리고 불러들여서 음행을 했습니다. 

  이 믿겨지지 않는 이상한 내용이 유다의 현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을 자신의 현실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신부의 행음을 보면 기가 막힌데, 세상의 재미를 추구하며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과 짝하는 것을 기가 막힌 일로 보지 않고 작은 일로 치부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신부가 된 언약 백성이 자신의 비천함과 사랑받아 존귀하게 됨을 잊었습니다. 

  비록 이렇게 가증한 일을 저질렀을지라도 신부가 이것을 큰 일로 여기고 통회 자복하며 왕께 나아왔다면 하나님께서는 인자와 신실함으로 그의 신부를 새롭고 존귀하게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완악하고 뻔뻔한 자가 된 유다는 전무후무한 가증한 일을 행하고도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유다와 예루살렘을 바벨론을 통해서 심판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바벨론 포로됨이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포로된 유다백성들은 그 포로지에서,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아 있는 백성들은 그 유다땅에서 극한 분열을 격고 있었습니다. 환난을 겪고 있으면서도 자기만 생각하고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고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좋은 꼴을 먹고는 남은 꼴은 발로 짓밟아서 먹지 못할 꼴이 되게 했습니다. 맑은 물을 마시고는 남은 물을 발로 더렵혀서 마시지 못할 물이 되도록 했습니다. 

  이들에게는 자기가 먹고 마시는 좋은 꼴과 맑은 물에 대한 감사도 없고, 더 나아가 자기가 다 배불리 먹어서 더 이상 먹을 수 없는 꼴과 물을 다른이들에게 돌려서 먹도록 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발로 밟아서 남들이 먹지 못하게 하는 악행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백성들이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보고서는 교훈을 삼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실망이 크셨으나 북이스라엘을 통하여서는 교훈을 받지 못하고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을지라도 적어도 자신들이 똑같은 일을 당하고서는 교훈을 받기를 바랬고 깨닫고 돌이키기를 바랬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유다는 그렇지 못했던 것입니다. 자신들이 경험한 것을 그냥 작은 일 정도로 여기고서는 가볍게 넘겨버리고 말았습니다.  

  환난기인 포로생활 가운데서도, 모두가 포로된 가운데서도 남은자가 되어 유다땅에 살고 있던 사람들도 자신들에게 어쩌다 주어진 좋은 꼴과 맑은 물을 감사하고 연약한 자들과 함께 나누는 일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환난 가운데서도 어쩌다 조건이 좋은 환경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이 때를 기회로 도약하는 나라도 있고 기업도 있고 개인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험을 한다는 것은 당연지사가 아니라 매우 특별한 은혜이며, 사명이어야 합니다. 작은 일이 아니라 매우 큰 감사의 제목이며, 더 나아가 사명의 자리여야 합니다. 그런데 에스겔 당시에 유다는 이것을 다른 사람들과 구분되는 특별한 지위로 여기고 다른 사람들은 자신들이 먹는 꼴과 물을 먹을 수 없도록 침을 뱉고 오물을 혼합해서 더렵혀놓았던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보시고서는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통해서 "너희가 좋은 꼴을 먹는 것을 작은 일로 여기느냐 어찌하여 남은 꼴을 발로 밟았느냐 너희가 맑은 물을 마시는 것을 작은 일로 여기느냐 어찌하여 남은 물을 발로 더럽혔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이 물음에서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작은 일로 여겨 그냥 넘겨버리고 있는 것이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라는 것이며, 오히려 그것이 너무 커서 기가막힐 만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인생살아가면서 어떻게 여기느냐? 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작은 일로 여기느냐? 아니면 큰 일로 여기느냐? 여기는대로 됩니다. 여기는대로 행위가 이어지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유다는 좋은 꼴을 먹는 것을 작은 일로 여기고 맑은 물을 마시는 것을 작은 일로 여겼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좋은 꼴을 먹고 맑은 물을 마시는 것을 당연지사로 받아들이고 하찮은 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남은 것도 하찮게 여겼던 것입니다. 마음이 완악해지고 돌같이 굳어서 더 이상 통회하고 자복하며 통곡하지도 못했습니다. 가증한 일을 행하고도 작은 일로 여겼습니다. 자신의 죄와 교만과 악독함을 작은 일로 여겼습니다. 이런 전무후무한 가증한 일, 그리고 가증한 일을 작은 일로 여긴 이유는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와 사랑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좋은 꼴을 먹는 것이나 맑은 물을 마시는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 특별하신 은혜, 간섭이 없으시면 이뤄질 수 없는 크고도 대단한 일들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좋은 꼴을 먹지 못하고 마시지도 못한 가난하고 힘없는 유다백성들에게는 생명을 좌우하는 기가막힐만한 크고 위대하고 놀라운 것입니다. 

  매일 매순간 숨쉬며 호흡하는 것이나 두 발로 걷고, 두 귀로 듣고 두 눈으로 보고 앉고 섬이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스쳐지나가는 사건들마다 하루 하루를 살아낸 이 모든 것들이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알고 보면 정말 큰일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 특별하신 은혜요 사랑입니다. 어느 하나라도, 한순간이라도 삐꺽하면 큰 사고가 나는, 엄청 복잡한 일이 생기고마는 큰일입니다. 날마다 기가 막힐만한 큰 일입니다. 그런데 가장 안타까운 것은 이것을 작은 일로 여기는 실수는 범하는 것입니다.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신부들입니다. 발가벗겨져 피투성이로 들에 버려져 죽어가던 자, 마귀의 종노릇하며 헤매이던 자, 아무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한 자와 같았던 우리를 주님은 안아오셔서 그의 보혈로 깨끗하게 하시고 양육하셔서 주님의 신부가 되게 해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은 자요 하나님에 대하여 산자로, 예수님의 신부로 여기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을 작은 일로 여겨서는 안됩니다. 가장 크고 놀라운 일로 여기면서 주님의 신부된 사명을 잘 감당해 나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