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랴?(이사야 14:24~27) 본문

하나님의 질문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랴?(이사야 14:24~27)

유앙겔리온 2021. 1. 8. 06:24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랴?
이사야 14:24~27

사14:24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내가 경영한 것을 반드시 이루리라
사14:25 내가 앗수르를 나의 땅에서 파하며 나의 산에서 그것을 짓밟으리니 그 때에 그의 멍에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고 그의 짐이 그들의 어깨에서 벗어질 것이라
사14:26 이것이 온 세계를 향하여 정한 경영이며 이것이 열방을 향하여 편 손이라 하셨나니
사14:27 만군의 여호와께서 경영하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폐하며 그의 손을 펴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랴

  우리가 사는 시대에는 "하나님의 실패"를 들먹이는 무례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실패한 것을 인간이 나서서 보정을 하고 고쳐보겠다는 야심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패한 하나님이라면 이미 하나님이 아니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실패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만약 우리의 눈에 하나님의 실패처럼 보이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이해하지 못한 무지소치이거나 아직도 진행중인 것을 마치 종결로 착각하는 성급함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의 눈에 보이는 해로움이 다 해로운 것은 아니며 눈에 보이는 좋은 것이 무조건 다 좋은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성급하게 하나님 노릇을 하면서 무얼 빼고 더하겠다고 하는 것은 더 큰 인간의 실패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우리가 사는 시대를 마틴 부버는 "신의 일식의 시대"라 부르고 있습니다. 부버는 현대의 물질사회를 보며,더 이상 하나님이 있을 자리도 없고,또 말씀하고 계시지도 않는 것 같이 보이는 세계로 이러한 모습을 '신의 일식'이라는 단어로 표현했습니다. 달의 그림자에 해가 가리듯,현대성이라는 그림자에 하나님은 가려졌다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이 계신다는 의식 속에서 하루 일과를 시작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가야할 곳과 가지 말아야 할 곳을 판단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향해 질문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의 실패를 들먹이고, '신의 일식'으로 특징지어지는 현대사회 속에서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믿음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가를 위해서 본문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랴?"는 제목으로 말씀을 상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24절에 하나님은 그분의 생각과 경영으로 시대를 초월하여 일하시고 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내가 경영한 것을 반드시 이루리라"하셨습니다. 여기 "반드시"라는 말이 반복되어 사영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것, 하나님이 경영하시는 것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반드시 되고 반드시 이룬다"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반드시'라는 표현은 히브리어 '임'으로 강한 확신을 나타내는 표현으로서 하나님의 의도가 강한 확신 가운데 전달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강한 의지가 포함된 그 계획들이 반드시 실현되어 나타날 것이라고 선포하시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생각이나 경영은 유불리를 따라서 자꾸 바뀌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경영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복잡하게 보이고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뒤죽박죽 되는 것 같아보이는 것들도 하나님의 생각과 경영은 반드시 되고 반드시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경영은 언제나 선하며, 실수나 실패가 없으습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경영은 사람의 생각과 경영과 달리 그 누구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경영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이사야 시대에 온 세상은 앗수르가 지배하던 시대였습니다. 앗수르는 세계를 지배할 만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지닌 최강대국이었습니다. 또 한 때는 하나님의 "진노의 막대기와 몽둥이"(10:5) 역할도 했던 나라였습니다. 심지어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하나님의 친백성인 이스라엘을 징벌하시는 도구로 쓰시기도하셨습니다. 그래서 외형적으로 드러난 것만을 보면 온 세상은 앗수르가 통치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나님은 앗수르의 일식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앗수르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지켜주지 못한 하나님을 실패한 하나님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생각과 사람의 경영으로 하나님을 버리고 앗수를 붙잡았습니다. 앗수르의 신을 의지했습니다. 그들의 풍속과 유행을 쫓았습니다. 그러나 일식은 계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식조차도 하나님의 생각과 경영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경영의 핵심은 사람의 생각과 경영처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자신의 것을 다 내어주시고 독생자까지 주심을 통하여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는 생각이며 경영이십니다. 25절, "하나님이 앗수르를 하나님의 땅에서 파하며 하나님의 산에서 짓밟을 것이며 그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지운 멍에를 벗기시고 그들에게 지워진 짐이 그들의 어깨에서 벗어져 나가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게 하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경영은 27절에 "누가 능히 그것을 폐하며 그의 손을 펴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랴"하셨습니다. 이 땅의 그 어떤 힘도 권세도 하나님의 뜻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경영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사람의 생각과 경영은 중간에 바뀔 수 있습니다. 형편과 사정에 따라서 변경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르십니다. 어떤 사람도, 어떤 형편과 상황도 하나님의 생각과 경영을 돌이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누구를 파하시겠다고 하시면 그는 반드시 파함을 당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멍에와 짐을 벗기신다고 하시면 반드시 벗어집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고 하시면 반드시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선한 사람들에게 주시는 은혜와 축복 그리고 악인들에게 주시는 진노와 징벌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아무도 하나님의 뜻과는 반하여 하나님의 계획을 취소하거나 변경케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절대적이시고 영원하신 것처럼 그분의 뜻이나 계획이나 경영도 절대적이고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이 믿음, 곧 하나님의 경영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굳게 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어떤 형편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믿음의 길을 가야 합니다.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도 이사야처럼 하나님께서 이 세계와 역사의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조정하고 경영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확신해야 합니다, 그 어떤 인간의 능력도 하나님과 맞서서 그 뜻을 꺾을 수는 없음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