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들포도를 맺음은 어찌됨인고?(이사야 5:1~7) 본문
들포도를 맺음은 어찌됨인고?
이사야 5:1~7
사5:1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사5:2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사5:3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서 사리를 판단하라
사5:4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음은 어찌 됨인고
사5:5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지를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사5:6 내가 그것을 황폐하게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에게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리라 하셨으니
사5:7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오늘은 우리교회가 지키는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본문말씀은 "포도원의 노래"라고 불리는 부분입니다. 하나님은 심히 기름진 산에 포도원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이 포도원이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고, 망대를 세우고 그 안에 술틀까지 파서 기름진 포도원을 조성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포도원을 조성하신 포도원 주인이신 하나님의 기대는 오직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란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기대와는 달리 그 포도원은 실망스럽게도 들포도를 맺은 것입니다. 기대와 현실이 상반되어 어긋난 것입니다. 그런데 7절에 보면 이것은 단순한 포도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족속과 유다 사람, 이들이 포도원이며 포도나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선지자를 그들에게 보내셔서 내가 바란 좋은 포도는 다 어디가고 "들포도를 맺음은 어찌됨인고?"라고 탄식하시며 질문하신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은 "들포도를 맺음은 어찌됨인고?"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누구든지 씨를 뿌리는 자는 거둘 것을 기대하면서 뿌립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했을 때 기대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얻게 될 때가 많습니다. 그럴때 모멸감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름진 땅에 포도원을 세우시고 극상품포도나무를 심으셨습니다. 그리고 좋은 열매 맺기를 기대하셨습니다. 그러나 포도원의 현실은 기대와는 전혀 달리 들포도만 맺었습니다.
성서의 땅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들포도는 포도의 겉 모양과 그 생김새는 같은데 그 속에 독을 품고 있는 포도를 말합니다. 특히 본문에 사용된 들포도란 말은 히브리어 '베우쉼'입니다. 이 단어는 들포도 즉 야생포도라는 뜻도 있지만 "냄새 나거나 쓸모없는 것, 악취"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향기로운 맛을 내는 포도같이 생겼는데 속으로는 악취가 진동하는 쓸모없는 포도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들포도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 백성으로 살지 않는 이스라엘을 비유합니다. 이것은 이사야 시대에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본문 7절 하반절에 "그들에게 공평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의로움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고 탄식하십니다. 여기에서 '공평'인 '미쉬파트' 와 '포학'인 '미쉬파흐' 는 원어상 발음이 비슷합니다. 또 '의로움' 인 '쩨다카' 와 '부르짖음' 인 '짜아카' 도 발음이 비슷합니다. 그러나 발음은 비슷한데 그 의미는 정반대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의미합니까? 겉모양은 비슷하나 속내용이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외부적으로는 성전의 제사 생활과 율법을 지키는데 열심인 것 같으나 그 마음은 하나님을 떠나 육체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신앙적 열심을 가장한 죄를 지은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들포도의 삶입니다. 우리는 들포도의 삶을 살아서는 안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포도원으로써 들포도를 맺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사 5:12절에 나와 있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번 볼까요? "그들이 연회에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피리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보지 아니하는도다" 했습니다.
오직 자신의 안위와 쾌락에만 몰두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것 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했습니. 그 결과로 그들이 들포도를 맺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교회와 그의 성도들에게 구하는 것은 기둥감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염래를 맺게 하려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현대인이 관심에 영적관심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건물주가 청소년들의 꿈이 되고, 부동산 투자가 성공의 비결이 된 시대, 잘 놀고 즐기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된 시대, 오죽했으면 창조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이 생겼겠습니까? 말씀대로 한다면 들포도가 가득한 포도원시대가 바로 오늘 우리가 사는 시대입니다. 들포도가 아닌 좋은 포도를 맺기 위해서는 우리의 관심을 영적인 것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오늘 포도원 주인이신 하나님은 재판정에 사람들을 불러 모아놓고 말씀하는 것처럼 3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서 사리를 판단하라"하셨습니다. 너희가 배심원들이라면 할 말이 있으면 해보라는 것입니다. 너희라면 그것이 너희의 포도원이고 너희가 포도원 농부라면, 과연 그 포도원, 그 포도나무 그 포도 열매를 어떻게 하겠느냐? 사리를 판단하라 하신 것입니다.
누가 보아도 극상품 포도가 열릴 수밖에 없는 지역과 땅과 물과 최고의 포도나무까지 심어서 극진히 보살피기까지 했는데, 그런데 어떻게 들포도가 맺힐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들포도는 말 그대로 들포도니까 들에 나가서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극상품 포도는 그렇게 구할 수 없기에 공을 들여서 수확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엄청난 비용을 드리고 수고를 아끼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들포도의 결과가 나왔다는 것은 더 이상 그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것을 반증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라면 주인이 어떤 조치를 취해도 유구무언일 수 밖에 없습니다.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는 것입니다. 유다 사람들이 사리에 맞게 판단하면 당연히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들포도를 맺었습니다.
믿음의 세계, 영적 세계에 특별한 기적도 있어야 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사리에 맞아야 합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특별하게 성령 역사를 통하여 기적도 있어야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사리에 맞게 행함으로 하나님이 원하는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우리교회와 성도들은 모든 일을 사리에 맞게 행함으로 하나님이 기대하는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리를 판단하라고 비유도 주시고, 절기도 주시고, 성경도 주신 것입니다. 사리분별없이 믿는 것을 하나님은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사리분별을 잘하고 바르게 믿는 것을 원하시는 주님인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5~6절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지를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내가 그것을 황폐하게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에게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리라 하셨으니"했습니다. 적어도 한광의 포도원과 한광의 포도나무들은 이런 처분을 받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추수감사절은 뿌리고 거두는 일, 심고 따는 일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뜻을 배우고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우리는 본문에 나오는 '포도원의 노래' 를 보면서 과연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고 사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극상품의 열매를 맺었는지, 아니면 들포도를 맺었는지 살펴야 합니다. 들포도를 맺었다면 "들포도를 맺음이 어찜이냐?" 는 본문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심정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좋은 포도를 맺는 성도가 되어야 하는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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