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얼굴에 맷돌질 하느냐?(이사야 3:13~15) 본문
얼굴에 맷돌질 하느냐?
이사야 3:13~15
사3:13 여호와께서 변론하러 일어나시며 백성들을 심판하려고 서시도다
사3:14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장로들과 고관들을 심문하러 오시리니 포도원을 삼킨 자는 너희이며 가난한 자에게서 탈취한 물건이 너희의 집에 있도다
사3:15 어찌하여 너희가 내 백성을 짓밟으며 가난한 자의 얼굴에 맷돌질하느냐 주 만군의 여호와 내가 말하였느니라 하시도다
어느 사회나 지도자는 있어야 합니다. 지도자에 의한 패해가 있을수도 있지만 그래도 지도자는 있어야 합니다. 지도자는 곧 권력을 부여받습니다. 권력은 남을 강제할 수 있는 힘입니다. 이 권력을 가지고 권력자들은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지키며 협력을 이끌어 내게 됩니다. 그러므로 권력은 그렇게 부정적인 것도 아니며 더더욱 죄악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주신 축복입니다. 그런데 권력자가 자신이 가진 권력을 남용한다면 그 권력은 큰 죄악이 되는 것입니다. 권력은 백성을 섬기라고 주신 자리입니다.
그래서 한 사회의 지도자나 권력자는 책임이 큽니다. 정치, 종교, 경제, 교육, 사회 지도자와 권력자의 도덕성과 생명력은 그 사회의 건강성과 직결됩니다. 이들은 그 분야와 그 곳에 방향을 결정하고 목적을 결정합니다. 그리고 그 방향과 목적을 지향하는 방법을 결정합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타락하면, 이들이 악하면 그 영향력은 고스란히 그 사회 전반에 미치게 되고, 가장 선량한 사람들과 약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피해를 입게 됩니다.
세움받은 리더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헌신된 사람들이라고 하면, 그곳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고 하나님 나라를 세위기 위해서 헌신된 곳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움받은 리더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라고 하면 그곳은 지옥처럼 변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국가의 리더쉽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마지막 때에 깨어서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을 세우고 이루는 위정자들이 되도록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들은 나라의 방향과 목적을 결정하는 사람들이고, 그들은 현재 우리의 성향을 잘 보여주는 사람들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권력은 부패하기 쉽고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통제가 필요하고, 절제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사야 시대의 유다의 위정자들과 권력자들은 그 권력으로 오늘 본문을 보면 "포도원을 삼키며, 가난한 자에게서 탈취한 물건이 그 집에 있으며, 백성을 짓밟는다."고 했습니다. 극한 표현으로 "얼굴에 맷돌질한다."는 충격적인 말씀까지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섬기며 돌보라고 권력을 주셨는데, 백성들의 얼굴을 맷돌삼아서 가난한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갈아서 가루로 만들어 마셔버리는 악을 행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의 맷돌질 당한 얼굴을 보시고서는 위정자들과 그 권력자들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일어나시고 서신다"고 하셨습니다.
오늘은 본문말씀 중에 있는 이 "얼굴에 맷돌질 하느냐?"하신 하나님의 질문을 제목으로 삼아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얼굴"을 생각해봅시다.
얼굴에 대한 사자성어나 속담과 격언등이 참 무수히 많습니다. 그것은 그만큼 우리 인생에 있어서 얼굴이 차지하는 역할과 사명이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기서는 구태어 그것들을 자세히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얼굴이 무엇입니까? 얼굴은 머리의 앞부분으로 몸의 표면에서 형태의 변화가 가장 많은 부분입니다. 사람의 얼굴은 4종 7개의 구멍과 얼굴뼈, 그리고 80개의 근육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80개의 근육으로 7,000가지 이상의 표정을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 몸의 근육들 가운데 가장 많이 몰려있고 가장 오묘한 것이 바로 얼굴입니다.
얼굴은 그 사람의 명함이요, 간판이며, 그 사람의 살아가는 이력서이며, 자기를 나타내는 최선의 자료입니다. 아무리 겨울이 추워도 옷을 겹겹이 입고 외투를 입어도 양말을 겹쳐 신고 장갑을 끼어도 얼굴은 가리지 않습니다. 나를 나타내는 간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나 부끄럽지 않은 얼굴을 만들어야 합니다. 얼굴에 책임을 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얼굴 값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든지 사람의 얼굴을 함부로 대하면 안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에서 이스라엘의 지도자와 권력자들은 "백성들의 얼굴에 맷돌질했다"고 했습니다. "맷돌질한다"는 표현을 생각해봅시다.
맷돌질이 무엇입니까? 원래 맷돌질은 성스럽고 귀한 노동이었습니다. 딱딱하고 거칠어서 먹을 수 없는 곡식을 부드럽게 빻고 갈아서 생명 유지와 성장을 돕는 음식재료를 만들어내는 귀한 노동행위입니다. 맷돌질이 잘 되어야 좋은 식료품이 됩니다. 맷돌은 성서시대의 사람들에게는 일상화 된 삶의 도구였을 것입니다.
얼굴과 맷돌질은 조합이 잘 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위정자들이 여호와의 백성들의 얼굴에 맷돌질한다고 얼굴과 맷돌질을 조합시키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표현한 '맷돌질한다'는 표현은 '짓밟는다'는 표현보다 더욱 강력한 의미로, 이 말은 백성들을 무자비하게 맷돌로 갈아 내용물을 짜내듯 억압해서 착취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의 '맷돌질'이란 물리적 폭력뿐 아니라 인격적 괴롭힘까지 포함하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성스럽고 귀한 음식의 재료를 생산하기 위한 노동으로서의 맷돌질이 아니라 힘 있는 위정자들과 그 패거리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삼킬려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한 괴롭힘이며 착취를 말함입니다.
인생이 얼굴에 맷돌질을 당하면 얼굴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뭉개고 가루를 만드는 것이 멧돌질입니다. 백성의 얼굴에 맷돌질 했다는 것은 백성을 곡식 낱알인 것처럼 가혹하게 학대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얼굴에 맷돌질은 비유일텐데, 사람은 얼굴이 중요합니다. 얼굴을 들 수 없도록 무안을 주거나 부끄러움을 주거나 수치를 주는 것도 아프고 참기 힘든 일인데, 얼굴에 맷돌질을 해서 얼굴을 짓눌러서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면 그 사람, 그 인격을 완전히 죽인거나 다름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 취급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얼굴에 맷돌질한 악마적인 사람들이 누구였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유다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유다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돌보기 위해 세운 청지기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권위와 힘으로 오히려 백성들을 짓밟고 압제하며 자신들의 욕심만 채웠습니다. 한 사회의 지도자가 타락하면 그 사회는 비참한 사람들이 늘어갑니다. 사회가 부끄러움을 부끄러움으로 여기지 않게 되고 잔인함이 넘치게 됩니다. 긍휼이 없고 잔인함만이 강처럼 흐르는 곳에서 어떻게 사람이 평안한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백성들의 얼굴에 맷돌질한 이들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십니까?
그냥 그렇게 보고 넘어가실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의 열심과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그들을 심판하지 않으실 수 없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심판에 얼마나 적극적이신지, 얼마나 심각하신지, 그리고 얼마나 위급하신지, 13절에 하나님의 모습이 앉아계시지 않고 "일어나시며, 서신다"로 묘사하고 있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얼굴에 맺돌질 당하는 자기 백성을 돕기 위해서 일어나시며, 서시며, 움직이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위와 권세를 가질수록 주님 앞에서 자기 행위를 셈하게 될 날을 늘 염두에 두고 지위와 권세를 사용해야 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영적 지도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두는 우리의 힘과 영적인 권세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힘써야 합니다. 결코 우리의 욕망과 편의를 위해 이것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사용되지 않으면 결국 이 모든 책임을 우리에게 물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공동체 내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권세와 지위를 실행함에 있어서 어떤 평가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얼굴에 맷돌질 하는 자"라고 평가받는 그리스도인들이 한 분도 없기를 바랍니다.
주께서는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5:40). 그러니까 지극히 작은 자를 멸시하는 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요 그들을 무시하고 압제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압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지위와 권세로 악을 행치 말아야 하겠습니다. 자기 손으로 부지런히 일하여 정당하게 자기 얼굴에 땀흘려 번 소득으로 살아야 합니다. 사는 동안 이웃에게 선을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하는 줄로 믿습니다. (2020년 10월 넷째주일, 종교개혁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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