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사 1:10~15) 본문

하나님의 질문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사 1:10~15)

유앙겔리온 2021. 1. 8. 06:16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사 1:10~15

사1:10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사1: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사1: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사1: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사1: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사1: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요즈음 한국교회 이곳저곳에서 예배에 대한 성찰이 일고 있습니다. 예배가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 장기화 되다보니 예배에 대한 중요성을 더욱 느끼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쩌면 이 기회가 우리 한국교회의 예배를 갱신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왕 일어난 예배에 대한 성찰의 기회이니, 단순히 대면예배냐 비대면예배냐 정도의 문제나, 예배순서 한두가지 넣고 뺴고의 문제가 아니라 더 근본적인 예배에 대한 성찰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이러한 예배의 성찰이란 전제를 두고 본문중 11~12절에 기록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는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로써 그의 피조물에게 예배를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배자들 가운데서 항상 참된 예배자를 찾으십니다. 참된 예배자는 사람 중심의 예배를 드리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예배하는 자입니다. 교회에서 사람중심의 예배를 진행시키거나 사람중심의 예배가 유행하면 안됩니다. 예배는 "가치가 있는 대상에 대한 철두철미한 인정"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은 그의 가치를 철두철미하게 인정하고 설명하고 노래하고 가르치고 섬기며 증거하는 것입니다.

  최고의 참된 예배자는 일상의 삶과 예배가 일치하는 예배자입니다. 어떤 시간과 공간에서도 삶과 예배가 일치하는 것이 참된예배입니다.설혹 조금 미흡하고 부족했더라도 회개하고 작은 변화라도 보이려는 진지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체질을 아십니다. 그래서 일시적인 완전한고 완벽한 변화가 아니더라도 조금씩 조금씩 거룩해져가는 모습을 기대하십니다. 그것이 성화되는 과정입니다. 

   참된예배는 하나님께서 유익하다고 생각하셔야 아며,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을 인간이 준비해서 보여드리는 것이여야 합니다. 그런데 이사야시대의 이스라엘 관원들과 백성들의 제사는 하나님께는 아무 유익도 되지 아니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요구한 것이 아닌 자신들이 원한 것을 하나님이 받으시도록 강요한 그릇되고 거짓된 예배자들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는 그런 이스라엘의 관원을 향하여 "소돔의 관원들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고모라의 백성아"라고 호칭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불렀습니까? 몰라서였을까요, 하나님께서 너무 많은 일을 하시다보니 그만 잠깐 헷깔리셨을까요? 소돔과 고모라, 그 죄악과 타락의 대명사인 도시, 의인 10명이 없어서 멸망당한 음란과 환락의 도시가 아닙니까? 철저한 인간중심, 우상중심의 도시가 소돔과 고모라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를 유황불로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모르실리가 없으십니다. 그렇게 말씀하심은 안타까운 일이기는 하나 이스라엘의 실상이 다름아닌 소돔과 고모라와 실상과 다를바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보니 소돔과 고모라를 보는듯하셨던 것입니다. 선민이라 하고, 택함받은 백성이라고 하는 이스라엘 관원들과 백성들이 그런 타락한 지경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된것 것이었겠습니까? 무슨 연고입니까? 
그들은 웅장하고 화려한 솔로몬 성전에서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여 엄숙한 제사를 쉬지 않고 드렸습니다. 레위인으로 구성된 전문 음악가 24개 그룹이 12개 그룹씩 교대로 비파와 수금과 제금과 나팔을 연주하며 잘 훈련된 아름다운 목소리로 찬송을 불렀습니다. 성전 마당은 경배자들과 제물로 가져온 짐승들로 북적였고, 제사장들은 매우 분주했습니다. 

  완벽하고 성공적인 예배가 이뤄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때 하나님은 의외의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이 몹쓸 소돔의 관원들과 고모라의 백성들과 같은 자들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법에 기를 기울일지어다" 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의 관원들과 백성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법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하나님의 유익과 하나님의 요구를 제대로 알턱이 없었던 것입니다. 제멋대로 산 것입니다. 제멋대로 경배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입맛과는 관계없이 자신의 입맛에 맛는 제물를 드린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유익대로, 자신들의 요구대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의 관원들과 백성들은 귀먹은 예배자, 눈먼 여배자가 된 것입니다.
 
  성경에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여호와의 말씀을 맡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맡았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의 유익과 여호와 하나님의 요구를 누구보다도 더 잘알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정보를 독점하고 있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복도 독점할 수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법을 가지고만 있었지 보고 듣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즉 순종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말씀과 법을 삶으로 옮겨놓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눈멀고 귀먹은 예배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결과로 인해서 많은 제물과 기도의 제목들을 가지고 부지런히 성전을 왕래했으나 그것은 이미 "하나님이 배부르신 것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이요. 하나님이 싫어하신 것이요.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는 바요. 하나님이 견디지 못하겠다 하셨으며. 하나님께서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본문 15절에서는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라고 하셨으며,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 성전의 마당만 밟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려면서 말 1:8절 말씀을 통하여서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 하셨습니다.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눈멀고 귀먹은 예배자가 되지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 마당만 밟고 지나가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유익하 것을 드리고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드리는 예배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요즈음 우리의 예배상황을 지켜보면서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동안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눈먼자와 귀먹은자 처럼 예배를 드렸으면, 코르나 19로 인해서 예배방역조치를 하도록 하셨겠습니까? 우리의 손과 입으로 얼마나 죄를 많이 지었으면 손에 지문이 지워지도록 손소독을 하고 물로 씻게 하시며, 찬양과 기도를 해야할 입에 예배때마져도 마스크를 씌워놓으셨겠습니까? 얼마나 열불을 많이 내고 살면 열체크를 해야만 예배당출입을 하도록 하셨겠습니까? 얼마나 성도의 교제가 잘못되고 천박스럽게 보였으면 모든 성도의 교제를 못하도록 소그룹모임금지, 공동식사금지 등을 시키실까요? 

  이런 일이 그냥된 일이 라고 생각하십니까? 결코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의 유익을 위하여 예배하며, 누구의 요구를 위하여 예배합니까? 하나님을 유익케 해드며,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것을 드리는 예배가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신령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이 기회를 진정한 예배를 사모하고 참된 예배를 회복하는 기회로 삼았으면 합니다. 하나님을 유익케 하고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드리고 행하는 참된 예배자들이 모여 예배드리는 성도와 교회가 되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