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어느 때까지 지키지 아니하려느냐?(출 16:28) 본문

하나님의 질문

어느 때까지 지키지 아니하려느냐?(출 16:28)

유앙겔리온 2021. 1. 8. 06:03

어느 때까지 지키지 아니하려느냐?
출 16:28

출16:2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어느 때까지 너희가 내 계명과 내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려느냐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지 둘째 달 십오일이 되었을 때였습니다. 그들이 엘림과 시내산 사이 있는 신 광야에 으르렀을 때, 애굽에서 가지고 나온 모든 것들은 다 떨어지고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급기야는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하고 원망했습니다. 

  열가지 재앙을 통한 출애굽의 대장정을 경험하였고, 그들 앞에 가로놓여 있던 홍해를 가르고, 뒤쫓아온 애굽군대를 일거에 홍해 가운데 수장시키고 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경험했으면서,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그렇토록 자신들을 못살게 굴었던 애굽에서 고기가마와 떡시루를 더 그리워하고 찬양한 것입니다.    

  그들은 광야에서의 첫 굶주림의 경험과 닥쳐올지도 모르는 굶주림에 대한 불안 때문에 애굽의 고기 가마와 떡상에 대해 과장된 이야기를 합니다. 과연 그들이 애굽에서 풍족하게 고기를 먹고 떡을 먹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불만은 지나간 것을 과장하게 하고 현재의 것을 헐뜯게 만듭니다. 여기에는 진실에 대한 배려나 어떤 이유 같은 것은 찾아 볼 수도 없습니다. 무조건 과거는 미화하고 현재상태와 닥쳐올 미래에 대해서는 불만과 불평과 원망으로 채우게 되었던 것입니다. 

  애굽에서 노예생활할 때는 이런 원망도 자유롭게 할 수 없는 그런 삶을 살았던 그들입니다. 이제는 출애굽했고 자유를 얻은 백성들이 되었습니다. 그것 한 가지만 가지고도 사실 굶어죽어도 좋다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놀라운 자유를 얻고서도 막상 먹고마실 것 때문에 노예생활을 하던 애굽을 그리워했고 찬양했습니다. 

  탈북자들이 자신의 생명을 버릴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탈북하여 남쪽으로 왔고 남쪽의 도움으로 이제 살만하면서도 북쪽에 있을 때가 좋았다고 하면서 남쪽에 대한 불만과 원망으로 살아가는 것과 다를바가 없습니다. 

  출애굽백성들이 신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시기로 하고, 4절에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신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일용할 양식으로 주시면서 그것에 대한 율법도 주셨습니다. 그 율법이 무엇이었습니까? 

  각 식구대로 정한 만큼 거두고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고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엿셋날은 갑절을 거두고 안식일엔 거두러 나가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신 이 율법을 어기고 정한 양보다 더 많이 거두고, 거둔 것을 내일을 대비한답시고 남겨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엿셋날이 되었어도 여전히 하루분량만 거두고 돌아와서는 안식일에도 또 만나를 거두러 나간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출 16장에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노를 발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 이 일이 칭찬받을 일이 아니었고 분노를 사야할 일이었습니까? 

  자원이 부족하고 언제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르는 죽음의 땅 광야에서 불확실한 내일을 위해서 양식을 악착같이 만나와 메추라기를 모으고, 그것을 분할하고 절약하고 아껴서 보관하려고 한 일은 칭찬 받을 일이 아니었을까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그러나 사정은 모세가 분명히 이러한 행동을 사전에 금했고 또 지금은 노를 발했다는 것입니다. 왜 그랬습니까?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한 일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믿지 못해서 "딴 주머니를 찬 것"과 마찬가지의 일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러한 불순종은 왜 생긴 것입니까? 믿음이 없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오늘 만나를 주신 하나님께서 내일 아침에는 만나를 주시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하는 염려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만나가 갑작히 끊기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며칠분씩 한꺼번에 거두어 놓아야 안심이 됩니다. 

  하나님은 말씀에 밝은 이론가를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에 밝은 이론가를 원치 않습니다. 쌓은 이론보다는 남김없이 믿음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원하십니다. 

  비록 죽음의 땅 광야지만 이스라엘 백성 바로 곁에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일용할 양식을 차질 없이 필요할 때마다 공급할텐데도 이 사실이 전혀 미덥지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못 믿어워서 딴주머니를 찬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에게 한 일, 즉 그 원망과 불평은 그들에게만 한 일이 아니라 종국에는 하나님을 향하여 한 것입니다. 8절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못믿어워서 하나님을 원망했고 하나님을 못 믿어워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딴주머니를 찬 것입니다. 

  우리들 주변에도 보면 남편을 못믿어워하는 아내들이 남편 몰래 딴주머니를 찹니다. 아내를 몯 믿어워하는 남편들이 아내 몰래 딴주머니를 찹니다. 딴주머니에 대한 찬반여론이 만만치 않게 대립을 합니다. 어떻든 딴주머니를 찬다는 것은 상대를 온전히 믿지 못하는 것이며 서로에게 결정적인 찬스에 아쉬운 소리나 기죽은 일 같은 것을 하지 않겠다는 자존심 싸움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혼을 대비해서 딴주머니를 차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못 믿워워지면 인생들은 딴주머니를 차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못 믿어워할 때마다 한 일들이 무엇이었습니까? 우상을 섬긴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딴주머니를 찬 이스라엘 백성들의 만나 항아리에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지라"했습니다. 딴주머니 차고서 평안하리라 화평하리라 생각하는 것은 근본부터 잘못된 것입니다. 의심으로 시작하고 갈라질 것을 생각하면서 찬 딴주머니가 행복을 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뭘 모르는 것입니다. 정말 내게 필요한 일이고 유익한 일이라면 하나님이 언제든지 얼마든지 어떻게 해서라도 공급해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딴주머니 차지 아니하여도 하나님께서 주실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이 믿음이 행복을 줍니다. 이 믿음이 평화를 줍니다. 신뢰가 사라지고 믿지 못하기 때문에 맡기지 못하니 끊임없이 불안한 가운데 그 불안함을 막기 위해서 나름대로 딴주머니를 계속해서 차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딴주머니가 자꾸 많아지고 그 무게에 짖눌려 살다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딴주머니를 차지 않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