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민 14:11~12) 본문

하나님의 질문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민 14:11~12)

유앙겔리온 2021. 1. 8. 06:05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민 14:11~12

민14: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민14:12 내가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멸하고 네게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

  민수기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의 여정을 다루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광야 이동의 여정은 성도들의 삶을 그대로 다루고 있습니다. 광야 같은 인생길에서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엇이 필요하며,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표본처럼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나눌 말씀은 멸시에 대한 문제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깔보는 것같은 느낌을 받을 때 기분이 나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심리는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느끼는 심리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으로 삼은 민수기 14장에는 "어느 때까지"라는 말씀이 세번이나 반복되어 나오고 있습니다.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아니하겠느냐? 내가 너희를 어느 때까지 참겠느냐?"하신 말씀입니다. '어느 때까지'라는 말은 '이스라엘의 불신앙이 장기간 계속되었다는 사실과 하나님의 오래 참으시는 인내'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과정 가운데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멸시를 당한다고 느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깔봄을 당한다고 느끼시는 것이 절정에 다다를때가 언제였는가하면 바로 가데스바네아에서 일어난 사건에서 연유했습니다. 출애굽한 후 1년 6개월 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 턱밑인 가데스바네아까지 왔습니다. '가데스바네아'에서 약속의 땅까지는 불과 3일 거리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바로 약속의 땅인 가나안 문지방 앞인 가데스 바네아 즉 바란광야에 도착한 이스라엘 광야 공동체는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을 선택해서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했습니다.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었는지 선택된 12명의 이름을 각지파별로 자세하게 기록해놓고 있습니다. 

  12명의 정탐꾼들이 사십일 동안 땅을 정탐한 후 돌아와서 여호수와 갈렙을 제외한 10명의 정탐꾼들은 자신들이 보고 온 것에 대해서 "우리는 보기에도 메뚜기 같고, 그 땅은 거민을 삼키는 땅"이라는 부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그들이 본 가나안 땅은 풍요롭고 기름진 땅임에는 분명했지만, 그곳에는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장대한 거인과 자신들을 비교해 보니까, 두려움이 몰려왔던 것입니다. 

  이들의 보고는 어쩌면 매우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기적의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은 없었습니다. 약속의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배제한 10명의 정탐군들이 들려주는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보고는 백성들로 하여금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곡하며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14:4)고 까지하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탐꾼들과 그 정탐꾼들에게서 보고를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믿음'입니다. 현실만 바라본다면 낙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스라엘 백성이 있는 곳이 어딥니까? '가데스 바네아'입니다. '가데스바네아' '하나님의 성소' 하나님께서 계신 거룩한 곳입니다. 이곳에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원하신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을 보인 이들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민심을 돌려보고자 했으나 역부족인 상황이었습니다. 기울어진 것을 다시 세우기는 그 불신앙이 너무 컸습니다.    

  이런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이렇게 세번씩이나 반복하면서 질문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인생 살아가면서 영적인 광야인 가데스바네아에 서서 현실을 바라볼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을 바라볼 것이냐하는 결단을 요구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데스바네아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택한 것을 우리도 선택함으로써 똑같은 실수를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현실에서 보이는 어려움과 도전이 너무 커서 때로는 하나님의 능력까지도 의심하며 한계를 정하는,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멸시한다고 느끼게 하는 일을 서슴없이 범할 때가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거대한 아낙 자손같은 문제,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하나님은 바라보지 못하고 현실만 바라보고서는 슬떼없이 악평이나 하고, 문제를 과장하고, 열등감에 빠져 있어서는 안됩니다. 메뚜기 자화상에 빠져 있어서는 안 됩니다. 

  십자가 위에서 승리하신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는 현실에서 건져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길 수 있는 힘을 공급해 주십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을 멸시했던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주어진 것은 무엇입니까? 
  23절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땅입니다. 
  33절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두고도 들어가지 못하고 40년 동안이나 메마른 광야에서 유리방황하다 죽어가는 가련한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가데스바네아의 비밀입니다.

  삼상 2:30절에 하나님께서는 "...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