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수 7:10) 본문

하나님의 질문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수 7:10)

유앙겔리온 2021. 1. 8. 06:06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
수 7:10

수7:10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일어나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

  모세를 이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의 임무는 하나님께서 약속으로 주신 땅 가나안땅을 실재적으로 점령하는 일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었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첫 번째 성은 크고 견고한 성 여리고성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을 하나님의 계획하신 뜻에 따라 순종하므로 손쉽게 무너뜨릴 수 있었습니다. 단한 명의 전사자도 부상자도 없이 완승을 거두었습니다. 그 성공은 그를 우쭐하게 하기에 충분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음 목표는 아이성이었습니다.  "아이"란 파멸이란 뜻입니다. "아이"는 벧엘 동남쪽 3km지점에 있는 엣텔 언덕에 세워진 도성이었습니다. 그곳은 아모리인 2만 정도가 살고 있는 적은 도성입니다. 승리의 여세를 몰아 미리 정탐한 후에 삼천명 정도만 올라가 아이성을 공격하였습니다. 하지만 작고 만만하다고 여겼던 아이성은 그 결과는 영 달랐습니다. 여호수아의 군대는 아이성 사람들에게 등을 돌리고 도망해야 할 처지에 놓였고 그날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36명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의 마음이 녹아 물같이 되고 말았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극도의 두려움과 불안감에 사로잡혔다는 말입니다.  

  여호수아는 이 일 앞에서 망연자실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간의 범죄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여호수아로서는 강하고 담대하라 함께 해주시마 약속하시던 하나님과 이 작은 성 아이 성 앞에서 조차 실패하게 된 이 상황이 어떻게 납득이 될 수 있었겠습니까? 

  여호수아는 아이성의 실패를 인해서 자기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 나아가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고 해가 저물도록 그렇게 엎드려있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무엇이 잘못되어 이스라엘이 아이와의 전쟁에서 패하게 되었는지 많은 생각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나아가 엎드린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의 엎드림이 어떤 엎드림이었는가를 생각해 보게하는 말씀이 수 7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수 7:7~9절 "여호수아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우리를 아모리 사람의 손에 붙여 멸망시키려 하셨나이까 우리가 요단 저편을 족하게 여겨 거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나이다 주여 이스라엘이 그 대적 앞에서 돌아섰으니 내가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가나안 사람과 이 땅 모든 거민이 이를 듣고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 이름을 세상에서 끊으리니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려나이까"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그와 함께 한 이스라엘 장로들의 엎드림이 자신을 돌아보고 민족을 돌아보고 방법을 찾아나가는 엎드림이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은 그렇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일이 잘될 때는 호들갑을 떨면서 감사와 찬송을 드리다가도,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금새 풀이 죽어 자책하기도 하고, 이웃을 그리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여호수아도 이 문제에 직면한 것입니다. 부정적인 보고를 해서 백성의 간담을 서늘하게 해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환애굽으로 돌이킬려고 했던 10명의 정탐꾼들과 백성들 앞에서도 흔들림없는 믿음을 보여주었던 여호수아도 이스라엘의 운명을 짊어지고 가야하는 무게 앞에서는 흔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찾아와 물으십니다. "일어나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 이 하나님의 음성이 칭찬으로 들리십니까? 아니면 해서는 안될 일을 하고 있는 잘못한 자를 꾸짖는 말로 들리십니까? 

  저는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려 원망만 하고 있느냐?"라고 들립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찾아오셔서 '어찌하여...?!'라고 질문하시는 경우는 대부분은  질문을 받고있는 자가 엄청난 위기 혹은 문제 상황에 빠져 있을 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질문은 언제나 대답을 예비하신 질문들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본성을 거슬러 질문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한 걸음 멈추게 하십니다. 오늘 본문말씀의 질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전지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니 인간에게 뭘 물어보셔야 할만큼 모르시는 것이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다 아시는 주님께서 '왜?' 라고 물으시는 것은, 그러므로 인간에게 숙고할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원인이 있다고하면 하나님께서는 벌써 해결해 주셨을 것입니다. 

  "왜?, 어찌하여?" 하고 물으신 것은 원인이 너희들에게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게 원인이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게 있는 잘못을 찾아 제거할 때 비로서 회복의 은혜를 누릴 수가 있습니다. 

  사실 아이성 전투에서 여호수아가 빼먹은 것이 있습니다.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빠져 있습니다. 여리고성을 정복할 때는 하나님께 물었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전쟁을 수행했습니다. 그러나 아이성 전투에서는 여호수아는 하나님께 먼저 묻지 않고 자기 임의로 사람들을 보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행동을 취한 것입니다. 여리고 성에서의 성공이 여호수아를 흥분시킨 때문일까요? 아니면 아이 성 정도면 하나님께 묻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해서일까요?

  아이성의 실패의 원인은 여리고성 정복시 얻은 모든 생명과 재물을 다 하나님께 바치라 하신 명령을 불순종하여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트린 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수6:18-19) 유다 지파에 속한 아간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외투와 금덩어리 은덩어리를 개인의 장막에 숨긴 것입니다.(7:1) 지극히 적은 개인의 은밀한 죄악 때문에 결국 이스라엘은 패하게 된 것입니다. 바로 그 죄 때문에 대적을 능히 이기지 못한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정탐꾼을 보내는 일보다 기도하는 일을 했다면 아간의 죄의 문제를 사전에 알게 되었을 것이고 이것을 해결하고 나아갔더라면 이런 불행은 없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후에라도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엎드려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일어나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하시고 문제 해결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여기 "일어나라"(쿰)는 말은 "맞서다"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단순히 일어나라는 뜻만이 아니라 당당하게 맞서라는 말이며 원수와 대적을 대적하라는 말입니다. 엎드려 있는 여호수아에게 낙심만 하지 말고, 속히 일어나 죄를 제거하고, 대적을 쳐 무찌르라는 격려의 말씀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과연 일어나서 아간의 죄악을 해결하고 결국은 아이성뿐만 아니라 마침내 가나안 땅을  완전 정복케 되었습니다. 우리들도 주님과 함께 엎드린 자리에서 일어나 대적과 다시 맞서서 싸울 수 있는 하나님의 군사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