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네 이름이 무엇이냐?(창 32:24~28 ) 본문
네 이름이 무엇이냐?
창 32:24~28
창32: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창32:25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창32:26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창32: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창32: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오늘 주신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하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어느 순간인가부터 야곱이 20여년 동안 머룰며 살아왔던 삼촌 라반의 집에 이상기류가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라반의 식들이 야곱에게 반감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창31:1~2절에 보면 "야곱이 라반의 아들들이 하는 말을 들은즉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말미암아 이 모든 재물을 모았다 하는지라 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본즉 자기에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더라"했습니다.
분위기가 전과 같지 아니한 것을 감지한 것입니다. 더 이상 머무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20여년 동안 라반의 집에 머물면서 모진세월을 보냈고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오늘의 상황, 현재의 상황은 이전의 어떤 상황과도 비교할 수 없을만큼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야곱은 대단히 육감적인 센서가 발달된 사람입니다. 그 센서에 라반집의 감정적인 정서가 포착되었던 것입니다.
이쯤되자 하나님께서도 이제 야곱을 라반집에 그대로 머물도록 해서는 안되겠다고 여기시고, 그를 아버지집 곧 고향집으로 돌려보내야 되겠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창31:3에 보면,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자신의 권속들을 설득하여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하고 라반의 집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그렇게 떠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하나님의 군대"가 함께 함을 경험하도록 함으로써 확인하게 합니다. 창32:1~2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했습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야곱은 고향집이 가까워지자 마음에 두려움을 떨처버리지 못하고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강을 건너면 아버지집과 가까워지는데 강을 건너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처음 집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형 에서와의 관계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에서를 대면할 전략을 세우고 소유를 두 떼로 나누어 강을 건너에게 하고 자기는 뒤에 남아 압봅강가에서 밤을 새워 하나님의 사람과 씨름했습니다. 여기서 씨름했다는 말은 한국의 씨름처럼 삿바를 잡고 씨름했다기보다는 씨름하듯 눈물로 붙들고 늘어진 야곱의 하나님께 대한 필사적인 기도를 말씀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필사적인 기도를 하고 있던 야곱에게 찾아오셔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물으셨습니다. 이름을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라면 이렇게 이름을 묻는데에는 분명 하나님이 따로 야곱에게 가지고 계시는 의도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의도는 곧 이어서 밝혀집니다.
그런데 많은 현대인들은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이름 알아서 뭐하게요? 시비조고, 알면서 왜 물어요? 하면서 대들고, 좀처럼 무슨 의도가 있어서 물으시겠지? 하고 생각을 잘 하지 않습니다.
요즈음 쳐다봤다고 시비붙고 스치고 지나갔다고 싸움나고 그러지 않습니까? 이런 것이 사건과 사고를 만들고 인생을 돌이킬 수 없는 불행으로 몰고가기도 합니다.
야곱이 "내 이름은 야곱입니다."라고 대답하자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이름을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라 새 이름을 주시기 직전 야곱으로서 살아온 삶의 내용인 교만과 사기와 속임수로 점철된 자신을 보게 하셨습니다. 야곱의 옛 이름을 부각시킴으로써 새 이름으로 가치와 의미를 더하시기 위해서 였음을 알게 됩니다.
원래 '야곱'이란 이름의 뜻은 '붙잡다'에서 왔습니다. 리브가의 뱃속에서부터 형의 발목을 붙잡았습니다. 야곱은 아버지의 장자권도 미리 붙잡고, 형 에서의 상속권도 미리 붙잡고, 마음에 든 라헬을 아내 삼기 위해서 다른 여자 세명도 아내로 붙잡았습니다. 외삼촌 라반의 재산도 붙잡아 자신의 것으로 만든 사람입니다. 그는 붙잡은 것을 쟁취하지 못한 적이 없습니다. 어떻게든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던 사람이 야곱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지금까지 자기가 살아온 지난날을 돌이켜 볼 때 속이고, 변명했으며, 원망과, 불평 속에 살아온 지난날의 생활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 나는 야곱입니다. 사기꾼입니다. 거짓말쟁이입니다. 이기주의자입니다. 지금까지 원망과 불평과 저주와 시기, 질투로 일생을 살아왔습니다' 하는 고백인 것입니다.
이제는 야곱의 이름으로 살아온 그의 인생을 여기서 끝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으로 하여금 이제 새 이름인 '이스라엘'로 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형을 두려워하는 형편에서 벗어나게 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야곱이 새사람이 돼, 새 생활을 하도록 하십니다. 자기 자신을 의지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두려운 문제도 해결될 것입니다. 형과의 관계도 풀어질 것입니다.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뀐 것과 함께 두 가지가 함께 바뀌었습니다. 그것은 야곱의 삶이 바뀌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얍봅강'의 지명이 '브니엘'로 바뀐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새 이름을 주신 그것을 그냥 흐르는 강이란 뜻의 얍봅을 "하나님의 얼굴"이란 뜻을 가진 "브니엘"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냥흘러가는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사는 인생이 된 것입니다. 자기 얼굴을 내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얼굴을 내는 인생이 되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둘째로는 음식의 규례가 바뀌게 됩니다. 힘줄 있는 음식을 먹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음식은 힘입니다. 먹는 것이 그 사람입니다. 먹는대로 세포가 형성되고 피와 살과 뼈가 조성됩니다. 그런데 양식이 바뀌었습니다. 힘에 그원이 바뀐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앞에서 "내 양식은 따로 있다"고 하셨습니다. 양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사람마다 불려지는 이름이 있습니다. 그 이름은 ㄱ의 인격이고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간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고 묻고 계십니다. 왜 우리의 이름을 물으시겠습니까? 자신의 힘과 지략으로 살아온 날들을 버리고 이제부터는 나를 사랑하고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지해서 새이름으로 새로운 삶으로, 그리스도인으로 불리며 살라는 초청이고 명령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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