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하갈아 무슨 일이냐?(창 21:14~21) 본문
하갈아 무슨 일이냐?
창 21:14~21
창21:14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가져다가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 그 아이를 데리고 가게 하니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더니
창21:15 가죽부대의 물이 떨어진지라 그 자식을 관목덤불 아래에 두고
창21:16 이르되 아이가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 하고 화살 한 바탕 거리 떨어져 마주 앉아 바라보며 소리 내어 우니
창21:17 하나님이 그 어린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으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이르시되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창21:18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가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
창21:19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셨으므로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게 하였더라
창21:20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시매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서 거주하며 활 쏘는 자가 되었더니
창21:21 그가 바란 광야에 거주할 때에 그의 어머니가 그를 위하여 애굽 땅에서 아내를 얻어 주었더라
독일의 신학자 에밀 브루너는 창조질서 네 가지를 언급했습니다. 가정, 국가, 교회, 노동, 이 네 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간여하시는 창조의 기본 질서에 해당하는 것들입니다. 이 중 첫 번째가 가정입니다. 구약에 "가정"이라는 단어가 1,850회나 나옵니다. 그런데 가정을 가지런히 하는 것은 전적으로 어른들의 책임입니다. 방탕한 부모는 자녀를 방탕으로 인도하도하게 되며, 욕심이 많은 부모는 그 자녀들을 탐욕으로 인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가정 공동체를 생각하지 아니하고 정욕적으로 자신만을 위한 결정을 하거나 자신만을 위한 선택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사라는 스스로 가정을 복잡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리지 못하고 인위적인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평안하던 가정에 하갈을 끌어들이고 이스마엘을 얻게 됨으로 인해서 아브라함의 가정은 여려 차례 불란을 겪에 됩니다. 그 중에 한 사건을 소개하고 있는 말씀이 오늘 주어진 본문 말씀입니다.
하갈과 그의 소생인 이스마엘과 사라와 그의 소생 이삭이 한 집에 동거하는 상황 가운데서 또 한번의 가정이 발칵 뒤집히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삭이 자라서 젖을 떼게 되었을 때 아브라함이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런데 이 때에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리는 일이 발생했고 그것을 본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10절)한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하여 14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가져다가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 그 아이를 데리고 가게 하므로" 하갈과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집을 떠나게 됩니다. 집을 나온 이 두 모자에게 세상은 그렇게 만만치 않았습니다. 곧 가지고 나온 떡과 물은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는 가운데 다 떨어져 버리고 환경에 약한 아이였던 이스마엘이 죽은 것을 차마 지켜보지 못하겠어서 조금 떨어진 곳에 나아가서 소리내어 울고 있을 때였습니다.
하나님이 그 어린아이의 소리를 들으셨으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가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하셨습니다. 성경에는 이스마엘이 무엇을 말했는지 한 마디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아이의 소리를 들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부르짖고 찾는 자의 하나님이 되어주십니다.
하갈은 자신을 위해서 보다 아들 이스마엘을 위해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갈이 하나님꼐 부르짖었는데, 하나님은 그 어린아이 즉 이스마엘의 소리를 들으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하갈의 울음과 기도를 통하여 그녀의 아들의 소리를 들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를 위한 근심과 기도에 대해서 뛰어나고 놀라운 관심을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하갈아 무슨 일이냐?
하갈에게 찾아오신 하나님께서는 하갈의 인생을 고달프게 하고 눈물짖게 하고 고통케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질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르실리가 없으시겠지만 하나님께서 하갈에게 질문하신 것입니다. 항상 질문에 답이 있습니다 질문만 잘 하고 잘 받아도 그리고 그 질문을 붙잡고 씨르만 잘 해도 좋은 답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갈에게 울고 있는 이유를 물으셨습니다.
그러나 하갈은 침묵합니다. 이 침묵의 의미는 하나님, 하나님이 아십니다. 이스마엘 때문입니다. 이스마엘은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은 이스마엘을 위해서 무엇을 돕는데 있어서 무기력하기 짝이 없습니다. 실망과 좌절에 마비되어 있었습니다. 침묵은 오히려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큰 답변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답변을 들으시고 "이스마엘을 큰 민족이 되게 하실 것"을 약속해주셨습니다. 친어머니조차 포기해버린 아이가 큰 민족이 될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민족은 너무 강했기 때문에 수천년 동안을 이 세계의 모든 적들과 대항해서 싸울 수 있는 국가였습니다. 누가 그 민족, 그 나라를 창시했습니까? 광야에서 축쳐저 죽어가고 있던 그 이스마엘, 바로 그 어린 아이였습니다.
전에는 '사래의 여종'이라고 부르셨으나, 이제는 종이 아닌 자유인으로서 '하갈'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언제까지 종의 태도를 갖지 말고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고 격려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뵈옵고 약속의 말씀을 듣자 하갈의 눈이 밝아졌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하갈의 눈을 밝히셨습니다." 19절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셨으므로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게 하였더라" 하갈과 이스마엘이 목말라 찿았으나 찿지 못했던 샘물이 하나님께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듣는 순간 하갈의 눈이 밝아져서 지금까지 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글의 코끼리 가족이 물줄기를 찾아서 광야를 횡단하여 길을 재촉하고 있었습니다. 코끼리 가족을 이끌고 있는 것은 60살 먹은 할머니코끼리였습니다. 할머니코끼리로부터 시작해서 손자손녀 사촌코끼리들이 생존을 위해서 함께 위험을 무릅쓰고 길을 갑니다. 그런데 가족중에 어린 코끼리가 지쳐서 결국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게 됩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발생했습니다. 할머니코끼리가 자신의 코를 땅을 향하고서는 이리저리 탐색하더니 한곳을 상아로 찍어 파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샘물이 솟아났고 그 물을 마신 쓰러진 코끼리가 힘을 얻고, 모든 코끼리 가족들도 그 물을 마시고 생존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할머니니 코끼리가 쓰러져 죽어가는 자신이 돌보아야할 어린 코끼리가 죽어가자 그를 살리고자 한 행동이 놀랍기 그지없었습니다.
관점이 바뀌면 안 보이던 것이 보이게 됩니다. 인생의 모든 일은 우리의 시각, 관점, 눈높이에 의해서 제한을 받습니다. 하갈의 눈이 밝아졌다는 것은 하갈의 아이 같던 관점이 하나님의 관점으로 높아졌다는 뜻일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고 부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하갈과 이스마엘의 하나님도 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울고 있는 아이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가 아이였기 때문에 더욱 불쌍히 여긴 것입니다. 선택받은 민족이 아닐지라도 하나님은 그들의 아버지도 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들도 돌보시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마엘과 함께 계셨습니다. 사라는 두 모자를 내쫓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지키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들에게 고작 하루분의 양식과 물을 주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먹이시고 키워주셨습니다. 이스마엘은 빠르게 장성하여 광야에서 거주하면서 활 쏘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스마엘에 대하여 하갈과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이루셨습니다.
하물며 선택받은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 백성들이야 얼마나 기뻐하시고 돌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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