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요 18:11) 본문

예수님의 질문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요 18:11)

유앙겔리온 2020. 2. 10. 21:04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요 18:11


18:11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예수님을 잡으러고 가룟유다를 앞세우고 검과 뭉치를 들고 찾아 왔던 사람들, 그리고 그들에게 칼을 빼든 베드로에 대한 기사가 복음서에는 실려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폭력적인 방법으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음을 주님께서는 알려주셨습니다. "칼을 가지는 자는다  칼로 망하느니라" 말씀하셨고 칼을 칼 집에 꽂으라고 하셨으며 귀가 잘린 말고의 귀를 다시 붙여주셨습니다.

  그래요. 할 수만 있으면 폭력적인 방법은 배제해야 합니다. 

 

  오늘의 주제는 폭력이냐, 비폭력이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거절할 것이냐 마실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자신을 잡으로 온 자들과 자신을 지키려고 하는 자들에게 주님께서 주신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주신 잔이기에 내가 마시지 아니할 수가 없다는 뜻을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너희들도에게도 만약 아버지의 뜻으로 잔이 주어진다면 마시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느냐?고 결단을 촉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질문하신 말씀에서 자신이 져야할 십자가의 고난을 "잔(포테리온;cup)"에 비유했습니다. 

비유적인 의미로서의 잔은 성경에 여러번 등장하는 이미지입니다.


  잔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어떤 이에게 주어진 것을 채우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시11:6 " 악인에게 그물을 던지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그들의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시 16:5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생명과 은혜와도 관련이 있습니다(시23: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또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과도 관련이 있습니다(시116:13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이것은 또한 심한 고통과도 상관이 있으며(시75:8 "여호와의 손에 잔이 있어 술 거품이 일어나는도다 속에 섞은 것이 가득한 그 잔을 하나님 쏟아내시나니 실로 그 찌꺼기까지도 땅의 모든 악인이 기울여 마시리로다" 사51:17 "여호와의 손에서 그의 분노의 잔을 마신 예루살렘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일어설지어다 네가 이미 비틀걸음 치게 하는 큰 잔을 마셔 다 비웠도다"),

  죽음의 쓴 맛을 나타내기도 합니다(시75:8 "여호와의 손에 잔이 있어 술 거품이 일어나는도다 속에 섞은 것이 가득한 그 잔을 하나님 쏟아내시나니 실로 그 찌꺼기까지도 땅의 모든 악인이 기울여 마시리로다 ").


  오늘 말씀을 통해서 주님이 마시려는 잔은 이 중에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비유하는 잔입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도 십자가 고난을 앞에 놓고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주님은 이 십자가의 고난의 잔이 아버지께서 주신 잔이라고 확신했기에, 그를 잡으로 온 이들을 능히 제압하여 피할수 있었지만 그들에게 자기를 잡을 수 있도록 허용하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칼을 칼집에 도로 꽂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주신 질문을 통하여 아들된 자로서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법을 가르쳐주셨습니다(11절).

결국 주님은 반항없이 스스로 체포되셨고 대제사장 가야바의 장인 안나스에게 끌려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위기를 모면하려고 인간적인 힘을 구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묵묵히 체포당하셨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잔이 결코 마실만하다거나 쉽다거나 해서 마시고자 한 것이 아닙니다. 그 십자가의 잔이 얼마나 잔인하고 힘들고 고통스러운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잔이라고 하면 거절하지 아니하고 그 잔을 마시고자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성경을 이루어지게 하려 함이라" 혹은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야만 구약의 옛약속이 신약의 새약속으로 이루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의 제단에서 제물로 바쳐질 때 모든 인류가 죄에서 구원받을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구약 제사가 예시하고 보여주는 그림자였습니다. 


  주님은 이것을 분별할 수 있으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인지 아닌지, 성경을 이루어지게 하려 함인지, 선지자의 글을 이루려 함인지를 주님은 아셨습니다.

주님은 이 아버지의 뜻을 알기 위하여 최종적으로 겟세마네동산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는 땀방울이 핏방울로 바꿨습니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아버지의 주시는 잔을 즐거이 순종하여 마신 것처럼 너희들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십자가의 잔이라고 하면 즐거이 순종하여 지고 따를 것을 가르치시고 명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앞장 서서 걸어가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하여 나를 따라오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뒤따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뜻 앞에 인간적인 생각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인간적인 힘으로 막아보려고 하나님께 불순종한 적은 없습니까?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잔이라고 하면 기꺼이 그 잔을 순종하여 마실 수 있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