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검과 뭉치를 가지고 나왔느냐?(눅 22:52~53) 본문
검과 뭉치를 가지고 나왔느냐?
눅 22:52~53
22:52 예수께서 그 잡으러 온 대제사장들과 성전의 경비대장들과 장로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왔느냐
22:53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을 때에 내게 손을 대지 아니 하였도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둠의 권세로다 하시더라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를 마치셨을 때에 때가 찼음으로 인해서 예수님을 잡으려고 대제사장들과 성전의 경비대장들과 장로들이 가룟 유다를 앞장 세우고 찾아왔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잡기 위해서 가지고 온 무기는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강도나 시정잡배들을 검거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검과 뭉치" 따위였습니다. 자신을 잡으러 온 자들의 모습을 보신 주님께서는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뭉치를 가지고 나왔느냐?"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검과 뭉치를 가지고 온 무리들을 보시고 너희가 강도나 잡는 것처럼 그런 무기로 무장하고 날 잡으러 온 것이냐? 날카로운 질문을 하셨던 것입니다.
강도를 잡는 것은 칼과 뭉치 같은 무기여야 할 것입니다. 무기가 좋아야 대항하는 강도를 제압하여 잡을 수 있습니다.
사실, 무기가 강도를 잡고 도구가 일을 합니다. 요즈음 산업현장에 얼마나 많은 신도구들이 사용되는지 모릅니다. 요즈음 사용되는 기계는 예전에 비해서 참 좋습니다. 그래서 예전보다 훨씬 더 좋은 물건을 빨리 만들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무기나 도구는 현장과 일치해야 합니다. 건설장비는 건설현장에 필요하고, 농기구는 농사일에 필요합니다. 전쟁무기나 도구는 전쟁터에 필요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 칼과 뭉치를 가지고 온 것은 강도 잡는 무기를 가지고 농사짓겠다고 찾아온 것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강도처럼 무기를 들어보신 적이 없으시며 폭력을 행사해보신 적이 없으신 주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강도와 대비해서 강도가 하지 않는 일, 강도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못할 일을 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양들을 위해서 생명을 내어주고 그 생명을 더욱 풍성케 하려고 오셨다고 평상시에 말씀하셨고 또한 그렇게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강도처럼 검과 뭉치로 잡아야 할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강도를 잡는 검과 뭉치를 가지고 예수님을 잡으러 온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강도잡배처럼 취급하여 검과 뭉치를 가지고 나왔느냐?'라고 질문하신 것입니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현입니다.
소환했으면 그곳이 법정이던 성전이던 갔을 것인데 너희가 검과 뭉치를 가지고 나를 체포하려 왔느냐?하신 것입니다.
그러시면서도 그들이 하려고 하는 일을 용납하셨습니다. 그것은 나중에 다시 설명하겠지만 이제 "하나님의 때"가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잡으려고 검과 뭉치를 가지고 온 그들은 낮이 아니라 밤에 행동했습니다. 캄캄한 밤중을 택하여 예수님을 잡는 일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체포당해야 할 정당한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강도처럼 취급하는 그들의 행위는 낮에 할 수 없고 밤에나 할 수 있는 그런 행동이었습니다.
낮에 공개적으로 하지 못하는 일을 비밀스럽게 밤에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체포하는 일이 정당화 될 수 없는 비열한 행동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죄를 짓는 것은 비공개적으로 행하게 하는 사탄의 일입니다.
공개적으로 할 수 없는 일을 그것도 충분히 자격을 갖추고 법대로 할 수 있고, 권위를 가지고 집행할 수 있는 그들이 비공개적으로 했습니다. 그것은 스스로 부끄러운 일을 하고 있음을 드러내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정당하게 낮에 할 수 있는 일들을 비정상적으로 밤중에 처리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일이라면 결코 행하지 않아야 할줄로 믿습니다.
"너희가 나를 잡으려고 검과 뭉치를 가지고 왔느냐? 고 물으신 주님께서 오늘 본문 53절에 덧붙여 하신 말씀을 깊이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을 때에 내게 손을 대지 아니 하였도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둠의 권세로다"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신앙적으로 매우 깊은 진실을 담고 있습니다. 이 말씀 속에는 너희가 나를 이렇게 체포했지만 그것이 진실의 전부가 아니라는 이야기, 진실은 훨씬 깊은 곳에 숨어 있다는 이야기, 다시 말해 성경의 예언을 이루기 위함이라는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 아래서 일련의 일들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지 힘의 대결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바로 제가 계속해서 언급했던 "때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말씀"에 진실이 담겨져 있습니다.
예수님을 잡으려고 한 자들이 그동안 예수님을 잡지 못한 것은 힘과 능력이 부족해서도 아니었습니다. 기회가 없어서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도피를 잘 해서도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예수님이 성전을 활보하며 가르쳤어도 잡지 못한 것은 아직 하나님의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며, 지금 이렇게 체포한 것도 하나님의 때가 되어서 그런 것뿐이라는 사실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것이 삶을 바라보는 예수님의 관점이셨습니다. 그분은 삶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을 사회정치적 관점이나 군사적인 힘의 대결의 관점에서 보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라고 하는 거대한 관점에서 보았습니다. 당연히 삶도 단지 삶이 아니었습니다. 삶 너머에 계시는 분과 소통하는 것, 일상에서 삶 너머에 계시는 분의 손길을 섬세하게 느끼고 이해하며 사는 것이 삶이지 단지 생활하는 것은 삶이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인류 구원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구속의 값을 지불해야 할 때가 되었으므로 잠시 어둠의 권세게 득세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순수하게 검과 뭉치를 가지고 온 그들에게 체포를 당해주신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때에 따라 움직이고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때를 분명하게 알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이루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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