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눅 20:1~8) 본문

예수님의 질문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눅 20:1~8)

유앙겔리온 2019. 11. 15. 14:21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눅 20:1~8


20:1 하루는 예수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실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과 함께 가까이 와서

20:2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위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20:3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내게 말하라

20:4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20:5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20:6 만일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백성이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니 그들이 다 우리를 돌로 칠 것이라 하고

20:7 대답하되 어디로부터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니

20: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거셔서 성전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들어가신 예루살렘성전은 성전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생각하셨던 그런 성전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성전은 장사하는 사람들의 시장이 되어있었고, 강도의 굴혈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눅 19:45~46절 "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전의 주인으로서 성전의 원래 기능을 회복하시려는 뜻에서 성전을 깨끗케 하신 일을 행하셨습니다. 바로 그것이 성전정화사건입니다.


  이 성전 정화사건은 성전을 중심으로 유대사회를 지배하던 사람들, 종교적인 틀인 율법으로 백성들 위에 군림하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하수인이 되어 어느 정도 삶을 영위하던 사람들에게는 이 사건은 충격이었고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자기들이 주인노릇하고 있는 성전에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자기들의 뜻과는 무관하게 성전을 정화하는 일을 행하심으로 인해서 자신들의 신분의 위협과 권위의 위협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눅 19:47절에 보면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 라고했습니다.


  이렇게 기회를 노리고 있던 이들이 하루는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백성들을 가르치고 있을 때 예수님 앞을 가로 막고 서서 한 가지 질문을 예수님께 던졌습니다. 그 질문은 바로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위를 준 이가 누구이냐?"하는 질문이었습니다. 당신은 모세나 아론의 후예인 제사장도 아니고, 공인된 율법학자도 아니며, 또 백성들 가운데서 추대된 원로도 아닌데 어찌 이런 일을 하느냐?하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은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시비였습니다. 이렇게 질문한 것은 예수님을 시험에 빠뜨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질문을 통해서 예수님이 자신들이 의도하는 시시비비에 걸려들기를 바란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무슨 권위로 그런 일을 하느냐?고 어리석은 질문을 하는 그 질문자들에게 대답대신 되묻는 방법으로 답하셨습니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오늘 저녁에 우리가 함께 나눌 예수님의 질문 "요한의 세례가 하는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하신 질문이 그것입니다.

예수께서 이와 같이 질문하신 것은, 예수님을 올무에 걸리도록 하기 위해서 질문을 만들어 질문하는 이들의 질문의 잘못을 지적하고 질문자 스스로가 대답을 찿게 하려는 것이며 질문을 막고자 하려하심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하나님 아버지가 주신 권위요, 또한 하나님의 아들로서 스스로 가진 권위였습니다. 그리고 이미 유대백성들이 인정한 권위입니다. 그런데 그 권위를 인정하기가 싫어서 그들은 예수님께 잘못된 질문을 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그들의 질문에 답하는 대신 질문하신 그 질문을 통해서 자신들의 질문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지적받게 되고 깨닫게 됩니다.


  이 예수님의 질문은, 이렇게 대답하나 저렇게 대답하나 문제가 될 수 밖에 없는 그런 질문이었습니다.

본문 5~6절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만일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백성이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니 그들이 다 우리를 돌로 칠 것이라 하고" 그들은 모여서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답변을 찾아보려했으나 이렇게 저렇게도 대답을 하면 그 대답 때문에 곤란한 지경에 빠지게 되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뻔뻔스럽게도 "어디서부터인지 알지 못하노라"고 대답했던 것입니다.


  이들의 대답은 전적으로 자신들의 곤란을 벗어나기 위한 답변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은 요한의 세례를 하늘로부터 온 것으로 받아들이기가 싫었습니다. 그렇다고 인간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할 수도 없었습니다. 요한을 따르는 무리들의 저항에 부딪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결국 진실이 아닌 '모르겠다'는 답변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자신들의 질문 하나로 어려움에 빠뜨릴려고 했던 대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은 오히려 예수님의 질문 하나로 어려움에 빠지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디서부터인지 알지 못하노라"하고  얼버무러 넘어가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알지 못하노라'는 이들의 답은 그들의 위신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는 발언이며 궁여지책으로 그들이 선택한 수치스런 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회, 종교, 학문적인 일에 있어서 중대한 사안에 대해 조사하고 그에 대한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이고 책임이고 또한 막강한 권한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알지못한다"답변을 한 것은 이것을 망각하고 포기해 버린 결과를 낳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에게로부터냐?하는 이 질문은 예수님 앞에 덪을 놓고자했던 이들에게 악한 꾀를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질문 하나만 잘 해도 문제를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백성의 지도자들은 우매한 질문에 예수님은 질문에 또 다른 질문을 던지므로써 현명한 답변을 하신 것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백성의 지도자들은  질문도 우매하고 답변도 우매한 답변을 한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회개도, 책임도 아무것도 지지 않으려고 했다가 오히려 백성들에게 수모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특히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셨을 때 우리의 곤란한 처지 때문에 아는 것도 "모른다"고 대답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곤란해질지라도 주님꼐서 하신 질문에 진실하고 순수하게 예, 아니오를 대답해야 할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