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눅 18:35~43) 본문

예수님의 질문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눅 18:35~43)

유앙겔리온 2019. 11. 15. 14:11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눅 18:35~43(막 10:46~52)


18:35 여리고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한 맹인이 길가에 앉아 구걸하다가

18:36 무리가 지나감을 듣고 이 무슨 일이냐고 물은대

18:37 그들이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하니

18:38 맹인이 외쳐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18:39 앞서 가는 자들이 그를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18:40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명하여 데려오라 하셨더니 그가 가까이 오매 물어 이르시되

18:41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18:42 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매

18:43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르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


  오늘 저녁은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예수님의 질문 중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하신 질문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날 우리에게 누군가가 "네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분명한 대답을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미국 애풀의 잡스는 자기회사의 복도나 승강기에서 직원들을 만나면 첫마디 질문이 "당신의 삶의 목표가 무엇이냐? 이 회사에 들어온 목적이 무엇이냐?" 3~6초 안에서 대답을 못하면 "그만 두고 나가라"고 하여 직원들이 잡스 만나기를 피해다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한 인간이 이 세상 살아가면서 무엇인가를 이루고 책임적인 존재로 살아가려면 분명한 목표의식, 목적의식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여리고 에서 만난 소경에게 질문하셨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묻는 물음은 원하는 것을 분명히 하도록 요구하신 것입니다. 

 

  이 질문을 하시게 된 배경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 순서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게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에 여리고에 들렸습니다.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가파르고 험해서 평상시에는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절기 때가 되면 예루살렘으로 가는 순례객들이 무리를 지어 이 길을 지나 예루살렘을 향해 갔습니다. 그 때에 한 맹인이 길가에 앉아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막 10장 46절에 보면 "디매오의 아들인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아 구걸하고 있었다."고 그가 누구인가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소경 바디매오는 이 때를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무리들에게 구걸하기 위해서 그곳에 자리를 펴고 앉아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말씀을 듣게 되었고,  주님께서 많은 병자를 고쳐 주셨다는 소문을 이미 듣고 있었던 터라, 주님께서 자기 눈도 고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가 있는 곳을 지나가시자 그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쳤습니다. 그는 주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메시아라고 고백하면서, 간절하게 긍휼과 은총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소경이며 거지였던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직접 만나는 것은 쉽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만만치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했습니다. 바디매오가 예수님께 나가는데에는 장애물들이 있었습니다. 


  1) 그는 눈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2) 그가 나서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군중들이 있었습니다.

  3) 무엇보다 자기 안에 있는 마음의 장애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디매오는 이런 장애를 뛰어넘었습니다.

  "그가 더욱 심히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48). 그는 아무리 사람들이 꾸짖어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책망을 듣고 더욱 크게 소리치면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드디어 예수님의 관심을 끌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저를 부르라 하시니 저희가 그 소경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너를 부르신다 하매"(49),


  마침내 주님께서 그의 부르짖음을 듣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그 소리를 듣고 가시던 길을 멈추어 섰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믿음으로 부르짖는 소리를 거절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즉시 사람들에게 그를 데려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즉시 소경에게 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께서 너를 부르시니 안심하고 일어나라!".


  소경은 그 말을 듣고 너무 기뻐서 마가복음에 보면 "입고 있던(또는 돈이나 음식을 구걸하기 위해  펴놓았던) 겉옷을 버리고" 즉시 일어나서 주님께로 갔습니다.


  그렇게 해서 예수 앞에 서게 된 소경 거지 바디매오에게 주님께서는

  "내게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느냐?" 질문하셨습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가로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눅 18:41 )."

 

  여기서 구할 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구걸할 물질을 구할 것인지, 아니면 근본적으로 눈을 떠야 할 것인지?

바디매오는 주님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주님은 소경 바디매오가 보기를 원한다고 고백하는 것을 보시고, 그를 민망히 여기시며 그의 눈을 고쳐주시기로 마음먹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 소경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주님의 말씀이 떨어지게 되자, 바디매오는 즉시 눈을 떠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바디매오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소경 바디매오는 주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메시아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주님께서 자신의 눈을 고쳐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주님은 그에게 믿음이 있는 것을 보시고, 그의 눈을 고쳐 주셨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사건을 통해서 자신이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메시아임을 분명히 증거해 주셨습니다. 이사야는 오래 전에 이에 대해서 이렇게 예언한 바 있습니다. "그 때에(메시야 시대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는 노래하리니..."(사 35:5-6). 바디매오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즉시 눈을 떠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가 곧 보게되어 예수를 좆으니라"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좆으니라(막 10:52)."


  그는 눈을 뜬 후에 기뻐하면서 집으로 달려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눈을 떠서 보게되자 마자 주님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눈을 떠서 보게 된 후에 즉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주님을 좇았습니다. 그리고 이 광경을 본 무리들도 소경의 눈을 뜨게 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통해서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전에 주님이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메시아임을 분명하게 증거해 주셨습니다. 그 소경은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주님의 일행에 합류했습니다. 그리고 무리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보고 주님이 메시야임을 믿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