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명한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눅 17:5~10) 본문
명한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눅 17:5~10
눅17:5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눅17:6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눅17:7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눅17:8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눅17:9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눅17: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오늘 본문 말씀은 겸손히 섬기는 종의 자세에 대해서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겸손히 섬기는 종"은 똑같이 밭에나가서 일하고 집에 돌아왔으나 집에 돌아와서 쉬는 사람은 종이 아니라 주인이며, 종은 쉬는 주인을 위하여 먹을 것을 예비하고 수종을 들고 그리고 주인이 다 먹고 마시고 쉰다음에라야 먹고 마시고 쉰다는 것입니다. 그러하고도 불평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당연한 보상을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하는 가를 말씀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자랄려고 하면 이와 같이 겸손히 섬기는 종의 마음과 자세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종의 자세와 종의 마음으로 주님을 섬길 때 여기에 바로 믿음이 있고 그 믿음은 자라나게 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했을 때 겸손히 섬기는 종과 같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다보면 처음에는 좋은 믿음으로, 불같은 마음으로 시작은 했으나 얼마 못가서 그 마음이 변질되고 초심을 잃어버리고, 낙심하고 돌아서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왜 그렇게 되는 것입니까?
시작은 종의 마음으로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내가 주인이다하면서 주인노릇할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모든 성도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주인노릇을 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그 때부터 믿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욕심으로 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예수님 당시의 주인과 종의 관계는 지금의 노사관계나 주인과 일꾼의 관계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예수님 당시의 주인과 종의 관계는 소유의 관계입니다. 종은 주인의 소유이고 주인의 재산 중에 하나였습니다.
종의 어원이 국가와 국가끼리 싸워서 이긴자가 진자의 왕족을 종으로 삼는 것에서 비롯되었음을 안다면 더 분명하게 종의 성격을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원수가 되어 싸웠으므로 마땅히 죽여야 할 자를 살려두었으니 살아 있는 것만으로 감사하며 주인에게 예속되어 자기를 주장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이 무엇을 했다고 해서 주인에게 무슨 댓가를 받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러한 주인과 종의 관계를 주님은 주의 공로를 의지해서 구원받은 우리들과 주님과의 관계로 설명하신 것입니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가 주의 보혈로 살리심을 받고 주의 종들이 되었으니 종의 자세를 지켜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을 통하여 3개의 질문을 동시 다발적으로 하시면서 우리의 답변을 기대하십니다.
7절 "너희 중에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8절 "도리어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9절 "명한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우리는 이 거듭되는 주님의 질문에 믿음으로 대답해야 합니다.
7절의 질문 "너희 중에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하는 이 질문에 어떻게 답변하실 것입니까?
"없습니다."
8절의 질문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하는 질문에는 어떻게 답변하실 것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9절의 질문 "명한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하는 질문에는 어떻게 답변하실 것입니까?
"아니요, 감사하지 않습니다."
종이 밭에 나가서 종일 일을 했다고 해서 집에 돌아오면 주인에게 밥상을 받고 대접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여전히 주인을 위해 수종을 들고 일을 해야 합니다. 배가 고프다고 마음대로 먹고 마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은 배가 고파도 먼저 주인을 위한 모든 일을 마친 후에야 먹고 마실 수 있습니다. 또한 주인이 명한대로 다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종에게 감사하는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 당시에 주인과 종의 관계입니다.
결론적으로
좋은 종은 수고하도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0절 말씀은 이 비유의 결말입니다. 10절 말씀을 보면 "무익한 종이라고 했습니다"
종은 주인 앞에 무익한 종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섬겨야 한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중요하고 결정적인 말씀입니다. 지칠만큼 많은 수고를 하고도 그 생각과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을 무익한 종이라고 한 것은 유익이 없고, 필요치 않은 종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최고의 겸손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무익한 종은 쓸모가 없거나 주인에게 해를 끼친다는 뜻이 아니라 봉사와 헌신에 대한 어떤 대가와 보상을 기대하지 않는 겸손함을 의미합니다. 죽도록 수고하고 고생했으면서도 당연히 할 일을 했다는 마음, 과하게 일했지만 일한 것이 없다는 겸손한 마음, 이러한 마음으로만 살아간다면 우리가 무슨 일을 하면서 살더라도 아무런 불평이 없을 것입니다.
나 없이도 어디 일이 되는 가 봐라. 내가 얼마나 중요한 인물이고 내가 얼마나 큰 인물인데 그것도 몰라주느냐. 이런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유익함을 향변하는 것이고 그것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교만한 종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아니하십니다.
종은 종일 뿐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종은 종일 뿐입니다. 종은 주인의 즐거움을 위해 일해야 하고 주인이 은혜를 베풀어야 주인의 것을 누릴 수 있습니다. 주님은 복음서 말씀에서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고 하라 하셨습니다. 종은 주인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자기를 드러내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자기를 내세우고 뽐내어도 그것은 종으로서 당연한 것일 뿐, 그 행한 일이 기특하고 크다해서 종이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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