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을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눅 12:13~21) 본문
12:13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12:14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12:15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12:16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2: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2: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2: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12: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12: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요즘 부쩍 부모가 자식들을 상대로 법정 소송을 냈거나, 형제 자매간에 법정 소송들이 늘어간다고 합니다. 이전에는 경제공동체여서 법적다툼을 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으로 생각했을 관계들인데도 말입니다. 이 모두가 물질에 대한 욕심 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물질만능이란 생각이 사람들의 마음을 붙잡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유명한 하버드 대학교수 마이클 샌들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란 책에서, 사랑도 권력도 명예도 물질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세상을 향해서, 껍데기를 소유할 뿐이며, 진정한 행복은 밖에서 오는 것으로 영향을 줄 수 없다 말합니다. 그것들은 더 중요한 것을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생명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하찮은 것들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 하셨고, 모세는 하루치의 '만나'만을 모으게 했으며, 바울은 자족하기를 힘쓰라 가르쳤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에도 예수님 앞에 모여든 무리들 가운데 한 사람이 "선생님이시여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라고 청탁을 해왔던 것입니다. 아마도 부모로부터 물려받게 되는 유산이 형이 거의 차지해버리고 자기에는 공평하고 만족스럽지 못하게 분배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동생이 형에 대해서 불만을 품고 있던 모양입니다. 그러던 중에 그 당시에 사회로부터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던 예수님께 나와서 형과의 유산문제를 잘 해결해 주기를 간청한 것입니다.
이런 청탁을 받은 예수님께서 그 답변으로 오히려 답변이 아닌 질문를 던지셨습니다.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곧 이어서 거기 함께 모여 있던 무리들에게 "삼가 모든 참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하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것을 잘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서 예수님은 거기 모여 있는 무리들에게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어떤 마을에 부자가 있었는데 예기치 않게 대풍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밭에 소출이 풍성함을 인해서 그 마음에 내가 곡식 쌓아둘 것이 없으니 어찌할까? 고민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부자는 고민 끝에 두가지 결정을 했습니다.
첫째 결정은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한 것입니다.
이미 있는 곳간을 헐어 더 크게 짓는 하드에워를 손보는 일이었습니다.
얘기치 않게 갑작스럽게 많아진 곡식과 물건을 쌓아두기 위해서는 건물을 지어야 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 시스템에 빠집니다. 이 유혹과 이 경향성에 빠집니다. 먼저 무슨 방법과 대책을 말하라고 하면 건물부터 물건부터 하드에워부터 세워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것이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한다는 논리인 것이지요.
풍년 해결이 정말로 꼭 지금까지 별탈이 없이 수용가능했던 곳간을 헐어버리고 새롭게 짓는 것 뿐이겠습니까?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이겠습니까? 조금만 더 깊이, 높이, 넓게 생각해보면 더 지혜로운 방법이 있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둘째는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했습니다.
하드에워를 새로짓고 그리고 그리고 거기에 풍년에 생산한 곡식과 물건을 쌓아두면 영혼이 평안하고 즐거워질줄로 생각한 것입니다.
정말로 이렇게 해 놓으면 평안할까요?
정말로 이렇게만 해 놓으면 아무 걱정이 없을까요?
사람은 있을수록 가질수록 염려도 따라서 많아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여기에 등장하는 예수님께 유산을 나누어 달라고 요청한 이 사람도 유산 문제만 없어더라면 형제간의 문제가 없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갑작이 부모에게 유고가 생기므로 말미암아서 눈 앞에 재산이 놓이게 되자 형제간에 갈등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새 물건, 새 귀중품, 새 재산이 여러분에게 생겼다면 제일먼저 여러분들의 변화는
그 새 것에 안위를 인해서 자꾸 살피게 되고 신경을 쓰게 되고 그것의 안전함을 위하여 지속적으로 살펴보는 습관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자식이 상팔자란 말이 생기기도 한 것입니다.
자식이 있음으로 인해서 기쁨도 주어지지만 사실 부모 눈을 감을 때까지 자식을 염려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떻든 예수님의 이 부자 이야기는 결말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부자에게 "어리석은 자여"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원문으로보면 "정신없는 자, 무분별한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들이나 자신이 생각할 때는 대단한 성공을 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정신없고 무분별한 자라는 것입니다.
왜 어리석다고 했습니까?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되겠느냐"하신 것입니다.
하드웨어의 준비가 영혼을 위한 준비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영영혼을 위한 준비가 필요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한해의 특별한 풍년은 곳간을 새로 지어 보관하라고 주신 기회가 아니라 그 기회는 나눔을 위한, 지금까지 자신을 위해서 수고해주신이들을 위해 섬김과 봉사의 기회로 삼으라고 주신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렇게 사용했다면 영혼 문제가 거론 될 만한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풍년은 매번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건물부터 허물고 새로 짓는 것은 다음엔 그 건물이 애물단지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근심 때문에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욕심 때문에 결국 사망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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