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스스로 분쟁하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눅 11:14~20) 본문
11:14 예수께서 한 말 못하는 귀신을 쫓아내시니 귀신이 나가매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는지라 무리들이 놀랍게 여겼으나
11:15 그 중에 더러는 말하기를 그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고
11:16 또 더러는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니
11:17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
11:18 너희 말이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만일 사탄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11:19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 재판관이 되리라
11:20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귀신의 세력에 눌려서 말을 못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말을 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주시매 말못하는 사람이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 일을 놓고 "더러는 말하기를 예수님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했다"는 사실입니다.
귀신의 세력은 일치단결하여 어떻든 그 힘에 눌린 사람들로 하여금 그 기능과 가치를 발휘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귀신의 세력은 발전적인 세력이 아니라 파괴적인 세력입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해서든지 귀신의 세력을 묶고, 귀신의 세력을 쫓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필요에 의해서 예수님께서 하신 치유사역 가운데 귀신을 묶어 쫓아내시므로 인해서 치유해주시는 일들이 참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이런 귀신의 묶고 쫓아내신 치유사역의 일을 그릇되게 판단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곧 예수님을 대적하고 예수님의 권위를 깎아내리려고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나 주요 그리스도여서가 아니라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했고, 또 더러는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마태복음에는 이들을 바리새인이라고 했고(마 12:24),
마가복음에는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이라고 했습니다(막 3:22).
이에 예수님께서 그들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아 주시려고 하신 말씀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17~18절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 너희 말이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만일 사탄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하신 것입니다.
귀신의 왕이 바알세불이고
그리고 그 나라가 힘을 가지고 세워져 있다고 한다면 귀신이 귀신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일들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귀신의 나라도 자기들끼리는 결속하고 자기들끼는 분쟁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17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이에 대해서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보편적인 경험인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나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황폐하고 무너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논증으로 삼습니다. 아무리 귀신이라고 해도 스스로 분쟁하면 어떻게 그의 나라가 서겠느냐? 귀신일지라도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귀신의 왕을 힘입어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라면 결국 왕이 자기의 부하를 쫓아내는 것이 아니냐? 그러니 ‘너희들의 말은 논리에 맞지 않는 이야기다’라고 반박하셨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굳게 결속함으로 활동합니다. 귀신들은 선한 세계를 결렬시키려고 획책하지 서로를 무너뜨리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나라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집이라고 하면서 스스로 분쟁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귀신들도 하지 않는 일을 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칫 잘못하면 분쟁을 일삼다보면 귀신보다 못한, 귀신보다 더 사악하고 나쁜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 어떤 이유에서도 영적인 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영적인 신분이 분명하게 세워져야 합니다. 또한 겸손의 덕을 쌓아야 합니다. 겸손이 없는 곳에 분쟁이 있습니다. 자아가 살아 있는 곳에 반드시 분쟁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아를 죽이고 겸손의 덕을 쌓으며 말씀의 분명한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영적인 분쟁은 반드시 황폐함을 낳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분쟁은 우리에게 더 이상 없어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 다고 하면서도 전혀 예수의 가르침과는 상관이 없이 사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이입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신 것은 귀신과는 전혀 다른 하나님의 나라의 힘에 의해서 였던 것입니다.
하나님나라가 임하면 귀신의 나라는 쫓겨가게 됩니다.
20절 "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의 성격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말해줍니다. 사도바울도 하나님나라는 먹는 것이나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하였습니다. 내 안에 내 삶속에 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손, 하나님의 주권과 도움의 손길이 역사하는 곳, 그곳에는 절대로 악한 영의 역사가 깃들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낸 사건이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증거라고 선포하셨습니다.(눅11:20)
하나님의 능력이, 힘이, 통치가 이루어져 귀신이 나갔다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비난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눈앞에서 벌어진 하나님의 능력을 전혀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권세가 임한 것,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진 것을 의심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일을 사탄의 속임수로 몰아가며 예수님을 넘어뜨리려 했습니다.
확실해진 것 하나는 귀신을 귀신으로 쫓아내는 것은 완전한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나하면 그들은 같은 나라이며 같은 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완전한 해결책은 귀신의 나라와 귀신의 집과는 전혀 다른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집의 권세로 귀신의 권세를 다스리고 지배하고 쫓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에서 통해서 우리에게 주는 귀한 교훈은 자기나라 자기 집을 세우려고 한다면 분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분쟁하면 스스로 황폐하고 무너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나라와 집을 세우기 위해서는 힘을 모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나라가 임한 곳에는 반드시 사단의 세력이 꺾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왕성하게 임하기를 소망하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많은 죄악들과 사단의 역사들이 묶기고 쫓겨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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