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눅 10:25~37) 본문

예수님의 질문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눅 10:25~37)

유앙겔리온 2018. 1. 24. 12:09

10:25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0: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10:27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10: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10:29 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10: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10: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10: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10:33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10: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10:35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10:36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10: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오늘 본문 말씀에서 어떤 율법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10,25) 하고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네가 율법교사인데 네가 가르치고 있는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그 율법교사가 예수님의 물음에 대답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 하였나이다."(27절)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리하면 살리라 하셨습니다. 
율법교사가 자신의 정당함을 드러내려고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10,29) 하고 묻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이웃사랑"이라는 말을 귀가 닳도록 듣고 삽니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 그런데 이웃을 사랑하려면 먼저 누가 내 이웃인지 알아야 합니다. 이웃은 누구인가?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내 이웃인가? 나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똑같은 방식으로 사랑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선한 사라리아인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

 

   첫번째는 강도만난 사람입니다.
이사람은 유대인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원치 않은 강도를 만났습니다. 행복해야 할 여행중에 강도를 만난 것입니다. 가진 것을 다 빼앗겼고 심지어는 입고 있던 옷까지 벗겨졌고 거의 죽을 만큼 두들겨 맞고 길거리에 버려졌습니다.
이 사람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는 불행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둘째, 강도가 나옵니다. 이 세상에는 강도와 같은 인생살이를 하고 사는 이들이 있습니다.
없었으면 참 좋을 인생들입니다.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입니다.
스스로 수고한 것을 먹지 않고 남이 수고한 것을 빼앗고 탈취하여 살아가는 것을 업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세번째는 제사장과 레위인이 나옵니다.
강도만난 사람을 피하여 간 사람들입니다.
자비없음과 책임회피를 보여주는 사람들입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에게는 자비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높은 책임감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두사람은 자비를 배풀어야 할 기회에 자비를 배풀지 아니했고 책임감을 보여야 할 때 피해서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네번째는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강도 만난 사람을 끝까지 돌아보아준 사람입니다.
사마리아사람에게는 그런 자비와 책임감을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사마리아사람은 나쁜 사람으로 여겨지는 사람입니다. 그러하기에 사람같이 여기지도 아니했고 강도를 만나는 것처럼 사마리아사람을 만나는 것을 피했던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대치도 않았던 사마리아사람이 강도 만난 사람을 위해서 자기의 일정을 변경시켜가면서까지 돌보아주었고 끝까지 책임져주는 일을 마다하지 않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강도만난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소위 이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3종류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시고서는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고 질문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껏 자기 중심적인 입장에서 이웃을 생각해 왔습니다. 누가 나의 이웃인가? 누가 나의 이웃이 되어줄 것인가?
내 중심에서 이웃이고 아니고만을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내게 조금이라도 손해를 끼칠만 하면 내 이웃이 아니라고 생각해왔던 것이 사실일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 누구인가?를 생각하게 하시려고 이 질문을 하셨던 것입니다.
강도만난 사람은 돌보아주어야 할 사람입니다. 강도 만난 사람은 도움을 주어야 할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사람들 중에 누가 이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겠느냐?" 율법교사가 대답을 했습니다. "자비를 베푼자입니다."

 

  사랑 실천은 누가 내 이웃인지를 정하고 난 다음에 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은 대상을 가리지 않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든 아니든, 나와 가까운 사람이든 아니든, 동족인이든 외국인이든,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이든 아니든, 부유한 사람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모두의 이웃이 되어주는 것이 참 사랑입니다. 나의 이웃이 누구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의 이웃이 되어주었느냐가 중요한 것이지요. 하나님의 창조 이래 모두가 다 형제요 이웃인 것을 이웃과 이웃이 아닌 사람을 가르는 것은 사랑과는 거리가 먼 태도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율법교사에게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처럼 그런 이웃이 되어주라구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 입장에서 가 아니라 사랑을 받아야 할 사람의 입장에서 이웃을 생각하고 그리고 그렇게 이웃사랑을 사랑하는 삶을 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