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눅 9:18~23) 본문

예수님의 질문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눅 9:18~23)

유앙겔리온 2018. 1. 24. 12:07

9:18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물어 이르시되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9:19 대답하여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라, 더러는 옛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 살아났다 하나이다
9:2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니
9:21 경고하사 이 말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명하시고
9:22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9: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었는데, 그 때 예수님께서 그 따르는 제자들에게 질문 하나를 던지셨습니다.
"무리가 나를 누구라 하더냐?"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이, 세상이 나를 누구라 하더냐?"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자기와 함께 한 제자들에게 그 당시에 여론의 추이를 물의셨던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뭐라고들 하더냐?

 

  너희가 들은 것을 내게 전달하라는 말씀입니다. 들은 것을 들은 그대로 전달하는 것은 그렇게 어럽지 않습니다. 들은 것을 그대로 이야기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들은 것을 전달하는 것은 부담도 되지 않습니다. 그것을 책임질 필요도 없고, 도덕적인 판단이나 옳고 그름의 판단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너도 나도 들은 것들에 대해서 시글뻑적하게 대답을 했습니다.
"대답하여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라, 더러는 옛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 살아났다 하나니이다"라고 전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아마도 대표적인 몇가지 답변만 기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 주님께서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다 아실텐데 제자들에게 이것을 질문하셨겠습니까?

  그것은 제자들의 생각을 묻기 위한 사전 정비작업이었던 것입니다. 지금 자기와 함께 하고 있는 제자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인가를 알고 싶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자신을 선생으로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제자들이 세상사람들보다는 차원이 높은 생각을 하기를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무리가 나를 누구라 하더냐?하는 질문은 바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는 질문을 위한 전초작업이었던 샘인 것입니다.

  "남의 말이 아니고 너희 생각에는 어떻하느냐?이제 너희 스스로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본문에서는 베드로가 "하나님의 그리스도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태목음에서 여기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말을 더해놓았습니다.

 

  무리들은 별 뜻없이 들었거나 자신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그저 옮기면서 여론이란 것이 형성되고 소문이란 것이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정확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더 큽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라고 하면 무리들의 이같은 질 낮은 예수님에 관한 지식보다는 그보다 더 탁월하고 높은 예수님에 관한 지식을 갖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리들, 세상사람들이 예수님에 관하여 말하는 그것에 휘둘리지 말라 갈팡질팡하지 말라. 자기 생각, 자기 고백, 자기 믿음으로 살기를 바라시시는 마음이 이 질문속에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니 이 대답에 대해서는 깊은 생각이 필요했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야 했고 책임이 따랐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시끌뻑적하게 제빨리 여론은 전달해 주던 제자들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더냐?" 하는 질문 앞에서는 대부분은 침묵했습니다.
베드로 만이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 구원을 위해서 기름부은 구원자 즉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처음 무리들, 세상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하는 질문은 베드로를 통해서 정확한 답변을 이끌어내기 위해 정교하게 계획된 주님의 질문이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에 대한 답을 찾을 때 다른사람이나 다른 정보에 많이 의존합니다. 특히 오늘날엔 정보의 바다인 인터넷 덕분에 검색기능을 이용해서 검색하거나 물어보면 그럴싸한 답들이 즐비하게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요즘은 자신이 진지하게 고민하고 묵상하고 발품을 팔아서 답을 찾는 노력은 쓰잘데없는 시간낭비쁨으로 생각되고 쉽게 남이 찾아놓은 답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정답으로 삼아버리기 일 수 있습니다.

 

  그러데 말입니다. 남들이 이야기하는 답은 비슷한 답일 수는 있어도 정답은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 그것이 자신의 인생문제이고 신앙문제일 때는 말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더냐 물으시고 이어서 그렇다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으십니다. 무리들의 대답은 비슷해 보이지만 정답이 아닙니다. 그래서 너희가 생각하는 답을 찾으라고 하신 것이었고 베드로는 그 답을 찾았고 예수님은 그게 정답인 것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각자 나름대로 생각하며 살 것입니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사느냐는 참고사항일뿐, 정작 중요한 것은 내가 예수님을 누구로 생각하며 사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각은 없고 남들이 주입해주는 것에 몰입하여 신앙이란 것을 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남이 이야기하는 답은 참고만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지금 내 생각을 묻고 계십니다. 자기 주관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더욱이 별도움이 되지도 못할 어리석고 미련스러운 사람들의 말에 흔들리고 영향을 받는다면 그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내가 찾은 답이 필요하고 그것이 답인줄 확신하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이 바로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을 살아가는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님이 원하신 것도 내가 찾아낸 예수님, 내가 만나고 믿고 고백하는 예수님을 굳게 붙잡고 흔들리지 않고 믿음을 지키고 살아가는 것인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