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참새 다섯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눅 12:1~7) 본문

예수님의 질문

참새 다섯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눅 12:1~7)

유앙겔리온 2018. 1. 26. 19:31

12:1 그 동안에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
12:2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12:3 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지붕 위에서 전파되리라
12:4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12:5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12:6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12:7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

 

  오늘 저녁에는 예수의 질문 중에 "참새 다섯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하신 질문을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 수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1절 말씀을 한번 보세요. " 그 동안에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만큼 되었더니"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먹고 살기도 힘든 때에 자신에게 말씀을 들으러 모인 무리들을 보시고 측은히 여기셨으며 귀중히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로하고 용기와 소망을 주고자 하셨습니다.

 

  여기 모여 있는 이 수 많은 무리들은 예수님 앞에 잠시 모여 말씀을 듣고 있지만 두려운 문제들이 한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이에 주님께서는 참으로 두려워 할 것을 두려워함으로 불필요한 두려움과 또한 두려워해야 할 가치가 없는 것들에게 두려움으로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권고하신 것입니다.

  4절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하셨습니다.
 
  이렇게 가르치시고 권면하신 후에 참새 이야기를 불쑥 거내셨습니다. 
  참새 다섯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하시면서 "그것도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하셨습니다. 

 

  한 앗사리온은 당시 화폐기준으로 1/16 데라이온입니다. 당시 한 데라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습니다. 그리고 통상 노동자의 하루 임금을 5만원이라고 한다면 한 앗사리온은 약 3000원 정도가 됩니다. 그렇다면 참새 다서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니 그 참새 다섯마리의 값은 약 6000원 정도 된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과 비슷한 말씀이 마 10장에 기록되었는데 마 10:29절에는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두 앗사리온에 다섯마리의 참새를 살수 있다"(6절)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에서 보는 것처럼 한 앗사리온으로는 두마리 참새를 살수 있지만 두 앗사리온에는 한 마리를 더 추가해 주어서 네마리가 아닌 다섯마리를 준다는것입니다.
 
  여기에서 볼 때 참새는 아주 값싼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보잘것 없이 값싼 것일지라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그 중 하나라도 결코 땅에 떨어질 수 없다는 취지의 말씀인 것입니다. 여기 이 다섯번째 참새는 덤으로 주신 것으로서 돈으로 계산되지 않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하나라도 기억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이처럼 덤으로 끼어주는 무가치한 존재인 그 참새 한 마리까지도 하나님은 잊지 아니하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이시라고 하면, 사랑하는 자녀인 제자들은 얼마나 깊은 사랑과 관심을 가지시고 돌보시겠느냐?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 모여 주님의 말씀을 듣는 무리들 또한 하나님께서 얼마나 귀히 여기시고 돌보시지 않으시겠느냐 하는 질문입니다.

  덤으로 담아준 다섯번째 참새와 같이 우리도 그렇게 느껴질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덤과 같은 다섯번째 참새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냥 땅에 떨어지도록 허락하지 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참새 한마리까지도 돌보시는 하나님이심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또 누가복음 12장7절에서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머리털을 센다고 할 때 그 세다는 말은 그냥 "counting"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자기 머리털을 세는 것도 결코 쉽지 않습니다. 자기 머리털을 셀려고 하는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 머리카락이 몇가닥인지 별로 관심도 없습니다.
  하루에도 수 십개씩 빠지고 또 하루에도 수십개씩 새로 나는 그 머리카락 한두개쯤에 누가 얼마나 깊은 관심을 가지겠습니까?

 

  그런데 여기서 '세다'는 뜻은 'Numbering'해서 'Labelling"을 했다는 뜻입니다. 즉 그 머리털 하나 하나에 번호를 매겨서 이름을 붙였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무한히 위대하실 뿐만 아니라 무한히 세심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자상하시고 세심하시며 은혜로우십니다.

 

  참새처럼 값싼 것들도 하나님께서 관심하실진대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일까 보냐? 작은 머리털까지도 관심하실진대 다른 것들은 어떠하겠는가?하는 질문인 것입니다.
우리는 덤으로 팔린 참새보다 더 귀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믿자마자 환경 가운데서 그분의 뜻을 알기를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오늘 당하고 있는 일과 사람과 환경 중에서 우연한 것이 없고 주님의 척량을 거치지 않은 일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내야 합니다. 두려운 문제들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두려움에 겁먹지 말아야 합니다. 두려움을 이겨내야 합니다. 두 앗사리온에 한마리를 더 덤으로 주어서 다섯마리의 참새가 팔려가는 것이 현실 시장이지만 그 참 새 한 마리도 그냥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머리카락 하나 하나를 넘버링해서 해아려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하고 두려움을 이기며 살아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