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눅 8:40-48) 본문
8:40 예수께서 돌아오시매 무리가 환영하니 이는 다 기다렸음이러라
8:41 이에 회당장인 야이로라 하는 사람이 와서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려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니
8:42 이는 자기에게 열두 살 된 외딸이 있어 죽어감이러라 예수께서 가실 때에 무리가 밀려들더라
8:43 이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여자가
8:44 예수의 뒤로 와서 그 옷 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
8:4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하시니 다 아니라 할 때에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무리가 밀려들어 미나이다
8: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 하신대
8:47 여자가 스스로 숨기지 못할 줄 알고 떨며 나아와 엎드리어 그 손 댄 이유와 곧 나은 것을 모든 사람 앞에서 말하니
8:48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
본문 말씀은 열두해를 혈루증으로 앓고 있던 한 여인이 그녀의 귀한 행위로 인해서 주님께로부터 치유받은 사건에 관한 기록입니다.
이 여인의 병은 혈루병이었습니다. 혈루병은 그 당시로서는 불치병이었습니다. 그리고 여자로서는 가장 수치스러운 병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이 질병으로 인하여 자기 남편과 이혼당하고 가족에게 버림을 받았으며 사회에서 추방을 당해야 했고 부랑인 취급을 받아야 했습니다. 추방당하고 이혼당하고 버림받은 이 모든 일은 그녀의 병에 관한 그릇된 견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레위기 15장에 보면 혈루증을 앓고 있는 사람은 위생상의 문제를 고려하여 격리하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규정이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변질되게 되었습니다. 즉 이러한 병이 개인적인 부도덕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는 그릇된 편견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 사이에는 이러한 편견을 모두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병든 것도 억울한데 그것이 부도덕하기 때문에 생긴 병이라는 그릇된 편견까지 받는다면 얼마나 억울한 것이겠습니까?
레위기에서 혈루병을 앓은 사람을 격리하라는 것은 부도덕하기 때문이 아니라 위생상의 문제를 염려해서 그런 조치를 취하라는 것입니다. 병은 무조건 죄 때문에 생긴 것이라는 편견은 없어져야 합니다. 의로운 사람도 병들수 있습니다. 병이 들었으면 위생상의 문제를 인해서 격리될 수 있지만 부당하게 부정한 사람으로 취급되는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않됩니다.
이 여인은 이 병 때문에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돈도 다 허비했고, 효험도 없고, 도리어 더 심해졌음을 막 5:25에서는 좀더 소상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예수께서 거기를 지나가고 계신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님의 뒤로 와서 옷자락을 움켜잡았습니다. 원문상으로 보면 단순히 손을 댄정도가 아니라 그 이상의 행동을 했던 것입니다. 그녀는 그것을 꽉 불들고 늘어졌습니다.
그녀는 어려가지 핑계를 대면서 주님께 다가가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즉 무리들이 옹위하고 있었고, 12년 동안 자신이 해보았던 모든 일은 전혀 소용이 없었습니다. 최후의 방책으로 예수님께 온 것도 허탕을 칠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녀는 유력한 인물도 아니었고 더구나 예수께서는 회당장인 야이로의 딸을 치유하려고 바쁘게 길을 가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어떠한 것도 자신의 길을 가로막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핑계거리를 찾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오자락이라도 붙잡아야 되겠다는 일렴으로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어렵사리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잡는데 성공했습니다.
이 때에 예수님으로부터 질문이 던져졌습니다.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하신 것입니다.
이질문에 나서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말하기를 "선생님, 무리가 밀려들여 미나이다"
무리가 밀려들어 서로 미는 바람에 예수님의 오자락을 누가 스쳤는가 봅니다. 그러니 어서 가시는 길이나 가십시다. 그렇게 한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니다.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가난줄 앎이니라"하시면서 어전히 자기에게 손을 댄자를 찾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이렇게 물으시고 그 사람을 찾으신 것은 자신에게서 누군가 특수한 목적을 가지고서 옷에 손을 대었기 때문에 주님의 능력이 나간 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 질문을 통하여 호기심에 찬 군중들이 밀치는 것과 삶의 문제 때문에 궁지에 몰려 있어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믿음을 지닌 한 영혼이 자신을 붙잡는 것을 구분하셨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주님은 "단순한 군중"과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잡는 사람"을 구분하십니다. "예수님께 몰려들어서 밀리고 미는 것"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옷자락을 확연히 붙잡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심심풀이로 먹기 위해서 땅콩을 찾는 것과 목마르고 주림으로 먹을 것을 찾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사람은 이것을 구별하지 못할지라도 주님은 이것을 구별할 줄 아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이 신앙생활이 바로 떠밀려서 스치는 것이 아니라 목적과 소원을 가지고 예수님을 붙잡는 신앙생활이 되어야 할줄로 믿습니다.
무리가 옹위하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몸을 스치는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구경꾼은 많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예수님의 옷을 만진 사람은 열두해를 혈루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이 여인뿐이었던 것입니다.
이 여인은 모든 조건을 뛰어넘어서 아주 간절하게 주님의 옷자락을 붙들고 늘어졌습니다. 이 여인에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 연약한 여인이 이처럼 강해질 수 있었다는 사실은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바로 이러한 여인의 믿음입니다.
그냥 군중이 아니라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48절을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고 했습니다.
"구경꾼이냐?" "의도적으로 내 옷자락이라도 붙잡는 자냐? 이 질문은 오늘 우리에게도 질문되고 있습니다.
구경꾼이 아닌 목적을 가지고 주님의 옷자락이라도 만진 자를 찾고 계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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