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왜 의심하였느냐?(마 14:22~33) 본문
14:22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14: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14:24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14:25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14:26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지르거늘
14:27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14:28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14: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14: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14: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14:32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14:33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오늘 저녁에 우리가 함께 나눌 말씀은 예수님의 오병이어의 기적 직후에 일어나난 사건에 관한 것입니다.
오병이어로 오천명이 베불리 먹고 남은 부스러기가 12바구니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모든 무리들이 자신들이 거하는 곳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최소 5000명이고 많게는 몇만명이 넘는 인원이 해산을 해야하니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예수님께 더 여쭤보고, 말씀을 듣고, 자기 사정도 아뢰고, 병도 나음받고자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맛본 상태에서 얼마나 흥분이 되었겠습니까?
좋은 영화 한편만봐도, 좋은 뮤지컬이나 오패라 한편을 보아도 사뭇 기분이 들뜨고 흥분이 쉬 가라앉지 않는 것인데
가난한 시절에 물고기 두마리와 보리 떡 다섯개로 장정만을 헤아렸을 때에 5000을 먹이고도 남은 부스러기가 12바구니였으니 말입니다. 생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기가 무리들을 보내는 동안에 제자들을 재촉하사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셨습니다.
상식적으로는 제자들이 뒷정리를 하고 예수님이 앞서 배를 타고 건너가시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인데도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역할을 바꾸셔서 자신이 뒷정리를 하시겠다고 하시고서는 제자들을 먼저 떠나게 하셨습니다.
이 부분은 우리가 새로운 눈으로 새롭게 보아야 할 부분입니다.
원래 중요인사, 높은 사람을 먼저 배에 태워 안전을 확보하고, 막내들, 제일 지위가 낮은 사람이 뒷정리 및 무리를 해산시키는 허드레 일들을 하는데 오늘 말씀에는 예수님이 오히려 급하게 제자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그 뒷정리를 도맡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귀한분이라고, 중요한 사람이라고 보디가드를 대동하며 손하나 가딱하지 않고 영광받는 자리에만 서는 그런 분이 아니셨습니다.오히려 손수 뒷정리까지 하시는 섬기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런 일은 오늘이야 더러 볼 수 있는 일이지만 옛날 정서에서는 쉽지 않는 일이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떻든 예수님은 당시의 리더쉽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주님은 무리를 다 보내신 후에 따로 산에 오라가셔서 거기 혼자 기도하며 계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지시대로 제자들은 예수님을 오병이어의 기적에 머무르게 하시고 제자들은 배를 타고 거너편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탄 배가 바다를 가르고 있었을때 바람이 거스리므로 고난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가는 도중에 아무 일이 없었다고 하면 언급할 이유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탄 배가 바람을 만났고, 어부 출신 제자들이 옛 경험을 살려서 풍랑을 피하고자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예수님이 물위를 걸어 오셨습니다. 제자들이 고난 당하고, 파도와 바람과 피터지게 싸우며.... 왜 하필 이럴때 예수님은 안계신거야 하며 두려움과 공포에 있을때 예수님이 물위를 걸어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 때 물위로 걸어오시는 주님을 보았으나, 그분이 주님인지 미처 알아보지 못한 제자들의 공포와 두려움은 실로 큰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치 저승사자를 본 것처럼, 그들은 예수님을 향하여 "유령이다"하고 여기저기서 소리를 질러댄 것입니다.
이런 제자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하고 안심시키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이 때 베드로가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합니다.
"주님, 만일 주님이시면 나를 명하여 물 위로 걸어서 주님께로 오라 하소서"한 것입니다. 주님이 베드로의 요청대로 "오라"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님께로 한걸음 한걸음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예수님께로 가는 중에 바람을 보고 무서워함으로예수님을 향하던 시선을 놓쳐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베드로의 몸이 바닷물 속으로 빠져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파도가 아니라 바람을 보고 무서워하는 마음이 베드로를 바다물 속으로 빠져들어가게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곧 손을 내밀어 베드로를 붙잡고는 "믿음이 적인 사람아, 왜 의심하였느냐?라고 꾸짖으시며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쳤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았던 모든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께 절하며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질문하신 "왜 의심하였느냐?"하신 질문에서
믿음이 적음과 믿음이 없음을 표현할 때 예수님은 "의심"이란 말을 사용하히고 계신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의심하는 것이 바로 믿음이 적은 것이며 믿음이 없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의심은 신앙생활의 적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물에 빠진 베드로에게 "왜 의심하였느냐?"라고 말씀하셨듯이 동일한 질문이 우리에게 주어질 수 있습니다.
과연 그때 주님은 저는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로 나아가면서 의심이 생기는 순간 우리는 믿음이 적은 사람 혹은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성경에서 물과 바다는 항상 세상과 그 세상의 혼돈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혼돈의 세상인 물 위를 걸어갈 때에 우리는 주님을 바라보고 걸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이 사람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바람과 같은 세상것들을 바라보고 오라하신 주님을 의심했을 때 바닷물 속으로 빠져들어간 것처럼 우리도 세상 살아가면서 주님대신 나를 바라보고 환경을 바라보고, 문제만을 바라볼 때, 의심에 빠지게 되고 믿음을 잃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음을 잃고 의심에 빠질 때, 우리들도 함께 그 세상속으로 빠져들어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이 질문을 통해서 믿음 생활은 물에 빠지지 않고 물위를 걷는 것이며, 세상이라는 바다 위헤서 당당하게 물 위를 걷는 것이 신앙인의 실존이 되어야 하는 것임을 말씀하시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인생을 걸어가는 사람으로써 큰 믿음을 가지고 의심하지 아니하므로 세상에, 죄악에, 유혹에 빠지지 말고 살라는 강한 주문이 이 말씀과 사건속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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