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눅 8:25) 본문

예수님의 질문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눅 8:25)

유앙겔리온 2018. 1. 10. 11:45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그들이 두려워하고 놀랍게 여겨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가 하더라"

 

  오늘은 예수님의 질문 가운데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하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질문하신 것을 생각해 보면서 이 질문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질문의 배경을 먼저 살펴봅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자고 직접 명령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그 명령에 순종해 예수님을 모시고 항해했습니다. 그런데 광풍이 일어나고 물결이 배에 부딪혀 물이 배에 가득 차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했는데, 주님이 배 안에 계시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또 광풍이 일어나는 시점에 예수님은 편하게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화가 난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예수님은 일어나셔서 "잠잠하라, 고요하라" 명하시니 풍랑이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질문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명에 따라서 배를 띄우고 건너편으로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명령을 수행하고 있는데 시험이 온 것입니다.

  행선할 때 갑작이 일어난 풍랑으로 물이 배에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물이나 바다는 항상 혼돈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행선을 할 때 혼돈의 세상인 물에 빠지면 물이 넘치면 안됩니다. 유혹에 빠지 말고 말씀대로 살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물이나 바다는 언제나 출렁일 수 있는 것이고 배를 흔드어 위대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수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일어나는 곳이 물과 바다입니다.

 

  예수님이 그 배에 동행하고 계셨습니다.
동행하고 계신 주님께서 평안해하시고 깊은 잠에 빠져 있는데 지금 제자들은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는 전혀 풍랑과 폭풍우가 문제가 아니고, 예수님과 함께하기 때문에 그저 예수님처럼 평안 가운데 거해도 괜찮은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옆에 두고서도 눈 앞의 풍랑과 폭풍우가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죽겠나이다'하고 불순종같은 호소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이처럼 예수님과는 전혀 다른 제자들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아는 것을 제자들은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가야 할 길을 아시고 그리고 그 길에 풍랑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풍랑과는 관계없이 가야 할 길을 가게 될 줄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불안해하지 않으셨으며, 염려하지 아니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장래일의 불확실성 때문에 풍랑 앞에서 불안해하고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하고 소리를 지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자들이 실망하고 낙심할 때 주님은 이런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눅 8:25). 풍랑이,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오는 바로 그때 필요한 것이 믿음인데 너희 믿음은 어디 있느냐?고 제자들에게 주님이 질문하신 것입니다.

 

  결과를 알수 없는 일을 만날 때 믿음 있음과 믿음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에 제자들이 별다른 문제가 없을 때, 예측 가능한 삶을 살 때, 평안할 때는 예수님을 잘 믿는 것 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광풍이 일어나 거센 물결이 배를 치고 배에 물이 가득 차게 되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을 때 제자들은 배가 침몰해 죽을까 하여 두려워 떨며,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그 풍랑중에서도 태연히 주무시다 일어나서 바람과 물결을 꾸짖어 잔잔하게 하신 뒤에 놀랍게 바라보는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고 질문을 하셨습니다.
사실 예수님이 타신 배가 뒤집히겠습니까? 모든 염려를 다 주님께 맡기고 태연하고 안심했어야 됨에도 불구하고 믿음이 부족한 제자들은 두려워 떨었던 것입니다.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질문하신 것은 "나와 함께 동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동요하느냐?"하신 질문입니다.
예수님이 옆에 계심에도 불구하고 성난 바람과 물결을 두려워했던 제자들이었습니다. 주님은 환경 앞에서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인생 길과 인생의 배 안에 동행해 주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주님의 돌보심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도 제자들처럼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 얽매여 '믿음 없는 자'처럼 살아갈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눅 8:22~25). 그럴때 마다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질문하고 계심을 깨닫아 믿음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음이 있는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유일하게 꾸짖으셨을 때도 '믿음 없는 모습을 보일 때'였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지금 우리의 상태가 제자들의 그것과 비슷하다면, 혹 언젠가 그런 마음의 상태를 갖게 된다면, 우리는 주님의 꾸짖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향해 "나의 믿음이 어디 있느냐"고 되묻고 꾸짖어야 할 것입니다. "나의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여 어찌하여 네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시 42:5)"라며, 주의 말씀으로 다시 일어서야 할 것입니다.

 

  도종환 씨가 지은 시 중에 "담쟁이"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소개해 드리고 싶어 가져왔습니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여기까지입니다.

  식물인 담쟁이 넝쿨 하나도 이렇게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담을 기어올라 담을 넘는데 우리는 너무 쉽게 죽는 소리부터 하려고 하지 않는가 생각해 보아야할 것입니다.

 

  담쟁이 덩굴보다 못하게
  환난 가운데서 두려워하고 떨고 서 있을 때, 예수님은 우리게 묻습니다.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지금 우리의 문제도 여기에 있습니다.
불확실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그래도 좀 더 나아질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미래가 너무 불확신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그만 잘못되어도 작은 시험 가운데서도 "우리가 죽겠나이다" 소리를 지르는 제자들과 같이 되고 맙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생각할 때,
  주님의 명령을 수행하고 있는 사명적 삶을 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러는 동안에 주님이 언제나 동행하고 계신다는 것을 확신하고 거기에 믿음을 두고 살아갈 때
  행선하는 중에 어떤 광풍이 내리치고 큰 파도가 일어난다 할지라도 두려워하거나 염려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들이 직면한 현실 상황에 마음이 지배되었습니다. 그러자 불안 공포가 그들의 마음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래서 믿음없는 사람들처럼 굴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언제나 주님의 사명 수행, 그리고 사명을 수행하는 동안에는 주님이 동행하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사명을 수행하는 동안에 많은 시험이 있을 수 있음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