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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원과 들포도의 비유(사 5:1-7) 본문

비유의 복음

포도원과 들포도의 비유(사 5:1-7)

유앙겔리온 2017. 4. 7. 21:28

  오늘 저녁에 우리가 함께 나눌 비유의 복음은 구약성경 이사야서 나오는 "포도원과 들포도의 비유"가 되겠습니다.

 

  농부는 기름진 산에 포도원을 만들기 위해 땅을 고르기 시작했습니다.땅을 파고 돌을 골라냈습니다.농부는 그렇게 땅을 고른 다음 거기에 최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그리고 농부는 포도원을 지키기 위해 망대를 만들었습니다.만반의 준비를 한 농부가 이제 할 일이라고는 최상품 포도열매가 맺히는 것을 기다리는 일뿐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포도열매가 맺히기 시작했습니다.그런데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났습니다.뭔가 이상했습니다.그 열매가 아무리 보아도 최상품 포도열매 같지 않았습니다.자라는 모습을 보니 그것은 들포도였습니다.‘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최상품 포도종자에서 어떻게 들포도가 나올 수 있단 말인가?’ 농부는 황당했을 것이고 그 황당함은 배신감으로 이어집니다.더이상 해줄 게 없을 정도로 정성을 다 기울이고 큰 기대를 갖고 있었는데 그것이 모두 수포로 돌아간 것입니다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었으랴"
더할 것이 없을 것 만큼 포도원 주인은 일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먹을 수 없는 들포도를 맺고 말았으니 이 포도원 주인은 분명 헛된 수고를 한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위치가 잘못되어서 그런 것입니까?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라고 했습니다. 기름진 땅 곧 옥토였습니다. 포도원 위치는 가장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처음부터 품종이 잘못되어서 그랬습니까? 아니었습니다.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다"고 하셨습니다. 종자도 좋고 품종도 좋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포도를 맺고 만 것입니다.

 

  자라면서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환경이 나빴을 수도 있습니다. 좋지 않는 영향을 받았을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포도가 잘 익으려면, 일조량이 중요합니다. 
포도가 마지막에 익을 때가 되면, 포도원 전체에 그 포도 향기가 아주 진동합니다.
그때는 일조를 받아야 되는데, 그 햇빛을 며칠 더 받느냐가 아닙니다.
몇 시간 더 받느냐에 따라서 당도가 좌우됩니다.

 

  여기서 예언자는 그 농부가 사람이 아니고 만군의 여호와임을 밝히고, 그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며 포도나무는 유다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농부와 포도원 이야기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 비유였음을 밝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에 더 할 수 없을 만큼 사랑과 정성을 쏟아부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무한 사랑을 받고도 하나님이 기대하지도 않았고 원치도 않았던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포도원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셔야 하겠습니까? 
  그 포도나무들을 뽑아 버리시고 다른 좋은 품종의 포도나무를 심으셔야 할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무화과를 따서 잡수시기 위하여 무화과 가까이 가셔서 처다보시고 그 열매를 찾아 보았으나 열매가 하나도 없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사실 이 무화과 나무는 잎사귀만 무성할 뿐 열매를 맺지 못할 나무였던 것입니다. 원래 무화과나무는 철이 되든 아니되든 항상 열매를 가지고 있습니다. 무화과 나무는 전번에 달렸던 것이 떨어지지 않고 달려 있어서 열매를 따서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무화과 나무는 그런 열매조차 없는 열매맺지 않는 무화과 나무였던 것입니다.

 

   성서학자들은 이 무화과 나무는 이스라엘을 말한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께서는 이스라엘에게서 열매를 구하여 보았으나 그러나 하나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내 교회를 새로이 조직하고 시작하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주님의 새교회가 열매를 맺게 되기를 기대하신 것입니다.

 

  좋은 포도 열매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 하나님을 의뢰하고 사는 생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그 말씀을 생명으로 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공평과 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의와 신과 거룩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 중에도 나오는 것이지만 하나님은 많은 기회를 이스라엘에게 제공하셨습니다. 뽑아버리고 잘라버릴 수 밖에 없는 무화과 나무나 포도나무도 당장 찍어버리거나 뽑아버리지 아니하시고 인내하시며 다시 열매맺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기다리고 인내한 결과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들포도였습니다. 그러니 실망도 클 수 밖에 없습니다. 오래 참고 기다린 결과가 들포도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들포도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악행입니다. "음행과 더러움과 방탕과 우상숭배와 마술과 원수 맺기와 싸움과 시기와 분노와 당파심과 분열과 분파와 질투와 술주정과 연락과 또 그와 비슷한 것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서 성령의 열매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입니다(갈 5:22-23)"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기를 소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들은 수 없이 많은 배반과 하나님의 기대를 떠나 살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또다시 기회를 주셨으며 우리를 용서하시고 살려 주셨습니다.

 

  우리는 선지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한 말은 오늘 교회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말하는 주님의 말씀과 다를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하나님께 영광들릴 수 있는 좋은 열매를 맺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한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하여 가능한 모든 일을 다 하신 것입니다. 

  끝내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주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 하신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의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그를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를 거절하면 구원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본문을 읽다 보면 실망과 분노를 넘어서 우리에게 들려오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있습니다.“내 백성들아,너희들은 최상품 포도나무다.너희들은 들포도가 아니다.너희들은 결코 들포도처럼 살 수 없다.내 백성들아,너희들은 내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받은 존재들이다.나는 너희들에게 온갖 정성을 다 기울였다.나는 너희들이 존귀하게 살기를 진심으로 원한다.제발 최상품 포도로 살아라.내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받은 내 백성들아,이제부터라도 거룩하고 고귀하게 살아라.그래서 심판을 면하도록 하라.내 백성들아!”

분노를 넘어서는 이런 간절한 하나님의 목소리를 오늘 우리는 들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깨어서 힘쓸 일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좋은 열매 맺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더 이상 땅만 버리고 시간만 낭비하는 그런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는 안될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