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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나무와 백향목의 비유(왕하 14:8~14) 본문

비유의 복음

가시나무와 백향목의 비유(왕하 14:8~14)

유앙겔리온 2017. 4. 7. 21:25

왕하 14:8-14

 

  오늘 저녁에 우리가 함께 나눌 비유의 복음은 "가시나무와 백향목의 비유"가 되겠습니다. 이 비유의 배경은 유다왕 아마샤가 염곡, 즉 소금골짜기란 곳에서 에돔사람 일만명을 죽이고 셀라를 쳐서 취하는 대 전승을 이루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유다왕 아마샤가 교만해졌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왕 요아스에게 사자를 보내서 "오라 우리가 서로 대면하자"한 것입니다. 여기서 대면 하자는 말은 그냥 만나보자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전쟁을 시작할 때의 선전포고인 것입니다. 우리 한번 겨루워 보자 한 것입니다.
 
  사실 당시의 에돔은 아주 작은 나라였고 연약하기 짝이 없었고, 힘도 없으며, 훈련도 잘못된 병사들이 나라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야마사가 그정도의 정별과 전쟁에서 이긴 것을 자랑할 것이 못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마샤는 에돔을 물리쳤다고 하여, 마치 온 인류가 두려워하고 있는 양, 그것을 자랑하하였고, 다른 나라도 거침없이 정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에돔에 비한다면 이스라엘은 당시에는 국력이 가장 강할 때였습니다. 그런데도 교만해진 유다왕 아마샤는 세상에 또 다시 정복할 나라가 없는가 하고 두로 살피다가 이스라엘 왕에게 싸움을 건 것입니다.

 

  이와같은 선전포고를 받은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유다왕 아마샤의 교만을 꼬집는 비유가 바로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가시나무와 백향목'의 비유인 것입니다.

 

  "레바론 가시나무가 레바론 백향목에게 보내어 이르기를 네 딸을 내 아들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라 하였더니 레바론 들짐승들이 지나가다가 그 가시나무를 짓밟았으니라. 네가 에돔을 쳐서 파하였으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니 스스로 영광을 삼아 궁에나 거하라 어찌하여 화를 자취하여 너와 유다가 함께 망하고자 하느냐"라고 경고해준 것입니다.

 

  가시나무와 백향목은 서로 견줄수 없는 현격한 차이를 가지고 있는 나무입니다. 나무에도 수준이 있습니다. 역시 질이 좋은 나무는 좋은 나무의 값을 하고 질이 낮은 좋치 않는 나무는 무엇을 만들어놓아도 별로 가치가 없습니다.

  가시나무는 나무 중에 별 쓸모가 없는 나무입니다. 기껏해야 식물이 자라는 것을 방해하고 사람들의 손발에 상처나 주는 그런 나무였습니다. 그러나 백향목은 가장 귀중한 목재를 생산해주는 좋은 나무였습니다. 이 백향목은 성전을 건축하는데 사용되었고, 왕궁과 각종 귀중한 건축물에 사용이 되었으며 진귀한 보석을 담는 함을 만드는데 사용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비유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가시나무가 백향목과 동등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다는 비유인 것입니다. 결국 가시나무는 들짐승들에게 짓밟히리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왕인 요아스는 유다왕인 아마샤에게 이 비유를 통해서 작은 승리에 취하여 기고만장해서 더 큰 전쟁을 벌리려고 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해준 것입니다.

 

  이그런데 이런 비유를 듣고도 유다왕 아마샤는 자신의 교만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결국은 유다와 이스라엘이 벧세메스에서 대면하여 전쟁을 하게 되었고 이 전쟁으로 말미암아서 유다는 참패를 면치 못하게 되었고 유다의 성벽들은 파괴를 면치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교만의 죄를 말한 것인데 성서에는 이 교만에 대한 경계의 말씀이 참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우선 지식에 있어서 교만을 부립니다. 지금은 지식이 놀랄만한 속도로 발전을 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인간의 지식이 발전해 나갈수록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잠언 1:7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하였습니다. 지식이 발전해 갈수록 지식의 근본이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소홀리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재물이 풍성해져 잘 살게 되면 마음이 교만해져서 자기가 잘나 부자가 된 줄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 중에 이런 자들이 생겨날 것에 대비하여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이 먹을 것이 풍부하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재산이 많아질 때 마음이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시오. 여러분은 여러분의 능력으로 부유해졌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꼐서 재물을 얻을 힘을 주지 않았다면 여러분은 결코 부자가 될 수 없었음을 기억하십시오. 따라서 언제나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께 교만하면 하나님이 다른 민족처럼 여러분도 멸망시킬 것입니다."(신 8:11-20, 겔 26:12)

 

  사람들은 작은 직분을 가지고도 교만에 빠집니다. 

  하루는 군인들이 진지를 고치느라고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중에 커다란 나무 둥치가 나와 일을 진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군인들이 그 나무를 옮기느라고 애를 쓰고 있을 때 평복을 입은 장교 한 사람이 말을 말을 타고 지나가다가 그들이 일하고 있을 것을 보았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군인들이 나무 둥치를 옮기지 못하는데 그 공사의 지휘관인듯한 사람은 도와 줄 생각은 하지 않고 팔짱만 낀 채 그들만 채촉을 하고 있었습니다. 보다못한 장교가 지휘관에게 물었습니다.
  "왜 같이 거들지 않습니까?" 지휘관은 거만한 태도로 대답했습니다.
"여보시오 나는 중사요"
" 아 그렇습니까 중사님."
그 장교는 그렇게 말하고는 말에서 내려 군인들과 함께 나무 둥치를 옮기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 동안 지휘관인 중사는 일을 재촉하기만했습니다.
일을 다 마친 후에 장교는 중사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중사님 힘든 공사를 지휘하느라 애쓰십니다. 언제든지 이런 어려운 일을 할 때에 손이 모자라면 사령관에게 부탁하십시오. 그러면 제가 와서 또 도와 드리겠습니다."

  그때서야 이분이 사령관인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사람은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작은 직분을 가지고 있을 때 그것을 겸손하게 봉사하고 수고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사용하여야 할 것입니다.

 

  아마샤가 패망한 것은 교만한 생각으로 눈이 어두어져서 자신의 약함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가 주목해서 성경을 보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왕인 요아스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행한 자라고 했습니다. 왕하 13:1011절을 보면 "유다의 왕 요아스의 제삼십칠 년에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십육 년간 다스리며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그 가운데 행하였더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유다왕 아마샤는 반대로 "정직한 일을 행한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왕하 14:3에 보면 "아마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그의 조상 다윗과는 같지 아니하였으며 그의 아버지 요아스가 행한 대로 다 행하였어도"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호와 보기시기에 악한 요아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한 아마샤를 이기고 승리했습니다. 왜 그런가?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아마샤의 운명을 통해서, 하나님 자신이 교만한 자를 물리친다는 사실을 보여 주려 하심이라는 것입니다.

 

  정직하고도 교만하면 결국 멸망에 이르게 된다는 염연한 사실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