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거울의 비유(본보기의 비유)(고린도전서 10:1-11) 본문
오늘 저녁에 우리가 함께 나눌 비유의 복음은 "거울의 비유"입니다.
본문 말씀 가운데 "우리의 본보기로 주셨다" 하는 말씀이 두 번이나 있습니다. 이 말씀은 개역성경에서는 "우리의 거울로 주셨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거울로 주셨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아서 우리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영적인 새 이스라엘 백성인 우리에게 거울이며 모형입니다 즉 본보기입니다.
거울의 용도는 사람의 외모를 살피는 미용용이거나 내시경과 같이 의학상으로 쓰여지는 의료용, 멀리 있는 것을 관찰하는 만원경과 세미한 것을 분석하고 연구하는 현미경과 같은 과학적이고 학술적인 용도로 쓰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근래에 들어서는 재난의 현장에 긴급구조용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재난의 현장에서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곳에 내부를 탐지하는 거울로 쓰이기도 합니다.
거울은 이처럼 무엇을 발견하고 알고자 하는데 사용된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도 보면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알아야 한다는 말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의 거울을 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알게 하고자 하여 주신 것입니다.
성경에는 축복을 받은 일도 기록하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일에 대헤서도 기록을 하여주고 있습니다. 긍정적인 일도 거울삼고 본받아야 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잘못된 것, 부정적인 것, 소극적인 것도 거울을 삼고 그렇게 되지 않기를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거울로 주신 것입니다. 성경의 인물, 성경의 사건, 성경의 역사 등은 모두 우리 인생들에게 거울로 주신 것들입니다.
거울은 들여다보고 우리들의 자신을 발견하는데 먼저 사용되어야 합니다.
자칫 거울을 남들여다보는데만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신의 들보를 먼저 들여다보고 그 들보를 빼는데 사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남 흠쳐보는데 거울이 사용되고 남 비방하는데 거울이 먼저 사용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지금은 몰래 카메라시대입니다. 천지사방에 몰래카메라가 설치가 되어서 사람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를 하고 있습니다. 요즈음은 왠만한 거리마다, 건물마다, 자동차마다 CCTV가 설치 되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특히 구약성경 중에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생활 속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기 위하여주신 거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큰 힘 들여서 애굽에서 인도해 내셨고 여러 가지 기적으로 인도해서 광야에까지 왔지만 애굽에서 나온 사람 가운데에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하고 멸망을 받았습니다. 가나안에 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다 멸망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5절에 보면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공경한다고 했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너무도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다 가나안에 못 가고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악을 즐겨행하였습니다(6). 어떤 악을 행하였습니까? 그것은 7-10절에 기록하고 있는 것과 같은 네가지 것들입니다.
첫째는 우상숭배였습니다.
모세가 시네산에 올라가 율법을 받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다리지 못하고 안달이 나서 자신들이 섬길 신을 스스로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송아지 우상이었습니다.
- 송아지 우상을 섬긴일로 인하여 하나님은 그들에게 진노하셨습니다. 그럼으로 그것을 거울 삼아서 "저들과 같이 우상숭배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보이는 것을 원합니다. 가까이 두기를 원하고, 또한 보면서 만족하고 위안을 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을 고안하고 깎고 다듬어 조형물로 만듭니다. 그 중에 어떤 것은 신이라고 부르며 숭배하기도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 외 다른 것을 더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므로 우상을 만드는 일도 있습니다. 사람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식이나 어떤 인물을 하나님 보다 더 귀하게 여기면 사람이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지식이나 재물이나 자연을 하나님 보다 더 귀하게 여기면 그것이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론이나 철학이나 재물이나 기타 이땅의 어떤 것도 우상화 해서는 안됩니다.
둘째로 간음이었습니다.
- 간음하다가 이만삼천명이 죽음을 당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거울 삼아 "간음하지 말라"하신 것입니다.
이 죄는 고린도 사람들이 빠졌던 특별한 죄입니다. 그들은 비너스(정욕을 가진다는 뜻) 신에게 바친 신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천명이 넘는 공창인 여자 사제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부패한 도시에 살며 타락한 생할에 익숙하며 우상 숭배에 유혹을 받는 이들에게 간음에 대한 충고가 얼마나 필요했겠습니까? 이방인이 섬기는 대부분의 신은 음란합니다. 이방신을 숭배하는 과정에서 음행이 행해졌습니다.
셋째는 주를 시험한 것입니다.
-주를 시험하다가 불뱀에게 물려 멸망 당한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이를 거울삼고 "주를 시험치 말라"하신 것입니다.
넷째는 원망한 것이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많이 한 것이 원망의 죄였을 것입니다. 심심치 않게 이스라엘백성들의 손에 돌맹이가 쥐어졌습니다. 그것으로 모세를 치려고 했고 아론을 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원망할 때마다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을 다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를 거울 삼고 "원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11절에 이런 일이 거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우리의 인생과 삶과 신앙생활에 비추어 보아 모범이나 경계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악을 즐겨한 것 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도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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