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그리스도의 편지의 비유(고린도후서 3:1-6) 본문

비유의 복음

그리스도의 편지의 비유(고린도후서 3:1-6)

유앙겔리온 2016. 10. 25. 12:07

  오늘 저녁에 우리가 함께 나눌 비유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비유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를 주로 믿고 구원받은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의 신분을 일컬어 "너희는 예수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진짜 편지가 아니라 편지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비유입니다.
 
  편지라는 것은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나 또는 가까이 있는 사람일찌라도 직접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종이에 글자를 써서 전달하는 것이 편지입니다. 말로는 잘 할 수 없고 표현하기 어색하고 어려운 것도 편지로는 가능하기도 합니다. 


  오늘날에는 전화나 컴퓨터 통신으로나 다른 여러 통신수단을 통하여 소식을 전달하고 지식을 전달하고 생각을 전달할 수가 있었으나 사도 바울 당시에는 편지가 보편적인 통신전달 수단이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비유를 사용하여 성서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의 신분을 이렇게 설명하고 비유로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편지는 다른 통신 수단에 비해 오래 간직할 수 있고 반복해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우리의 신약성서도 대부분은 서신들입니다. 그래서 신약성서에 들어올 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말로 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직접 남기신 글은 한절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서신으로 글을 남기신 것이 있다고 하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만은 예수님은 직접 쓴 것으로는 한 줄이나 한 행도 남기신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복음서들은 모두가 구전으로 전해진 예수님의 말씀을 사람들이 기록을 하여준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너희는 예수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편지는 종이나 먹으로나 잉크로 쓴 편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우리 양심과 우리의 정신과 우리의 영혼과 우리의 육신에 신비하게 써주신 편지인 것입니다.

 

  역사 드라마에 보면 그런 내용이 나옵니다. "어서 오게 이 사람아!", "기체후 일향만강하셨습니까?", "그건 그렇고 대감께서 보내신 서찰 내놓게!" "서찰이라니요 제가 서찰입니다요", "그래 대감께서 뭐라고 하시더냐? 그러면 "잠깐 귀를!" 하면서 뭔가 속닥거립니다. 옛날 역적모의를 할 때면 믿을 수 있는 하인을 보내 직접 전달하지 증거를 남기는 편지 따위를 쓰지 않았습니다. 이럴 때 하인은 주인이 보낸 편지, 즉 메신저가 됩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편지"라 하였을 때 그 핵심은 내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멧세지가 나타날 때 그렇습니다. 누군가 내 존재와 내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멧세지를 읽었을 때 나는 그리스도의 편지가 됩니다. 우리의 인격과 삶이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메신저라 그 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세상으로 향하여 써 보내는  편지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사람들이 읽어야 할 그리스도의 편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확실하고 깨끗하게 쓰여진 복음의 편지요 그리스도의 편지요 하나님의 편지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르게 전달되고 바르게 읽히고 바르게 알게 해야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에 대한 세상의 많은 오해와 편견과 잘못된 인식들은 바로 우리 그리스도의 편지들이 바르게 전달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만약에 경우 편지를 받아 보았는 데 인쇄가 잘못되어서 흐리거나 끄렇지 않으면 전달하는 과정에서 빗물에 의해서 글씨가 엉망이 되어버렸다거나 또는 개나 짐승이 물어 찢어버려서 회손이 심한 편지를 받아보았다고면 어떻게 그 뜻을 다 헤아려 알 수가 있겠습니까? 이런 일은 없어서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편지로서 점과 흠과 티가 없이, 전혀 훼손되지 않은 상태로 온전히 전달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즈음, 통신에 있어서 문제가 야기되는 것이 또 있습니다. 그것은 가짜 편지입니다. 
스펨문자. 보이스피싱 이런 것들 때문에 골멀리를 앓고 있습니다.
  영적통신인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진짜 편지라고 하면 적그리스도, 이단, 사이비들은 가짜 편지요. 스펨문자요. 보이스피싱인 것입니다. 주의하고 또 주의하셔야 할 것입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버스여행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한 관광회사에 4 명의 운전기사가 있었습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회사지만 4 명의 운전기사는 모두 과테말라 사람입니다. 그들은 동료들의 깊은 사랑을 받으며 땀흘리며 성실하게 일하고 있습니다. 저맨이란 사람이 맨 처음에 입사했었습니다. 작은 체구의 그에게 뭔가를 기대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특히 시커멓고 짧게 깎은 머리가 주는 강한 인상은 인사 담당자를 무척 망설이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근무 태도는 매우 좋았고 비록 한국어는 못했지만 언제나 상냥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 후 회사는 운전기사가 필요할 때마다 과테말라 사람인 그를 찾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성실한 친구 로베르토와 조지, 에드거가 차례로 입사하게 된 것입니다. 한 사람의 성실성이 세 친구들을 일터로 이끌었고 그들은 너무도 일을 잘하여 좋은 인상을 주어서 나아가 과테말라의 사람들은 참으로 국민성이 좋은 사람이다는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나 하나로 끝나지 않습니다. 나로 인해 내가 속한 교회를 평가 받게도 하고 한 나라의 국민성으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 하나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편지는 일괄적인 내용을 모두에게 똑같이 알려주는 그런 편지도 있지만 대부분 각각 다른 사연을 담고 있습니다.

 

  고전 12:4~11 말씀을 보면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육신의 심비에 써주신 그리스도의 편지인데 우리의 얼굴 우리의 마음 우리의 생활에 분명하고 확실하게 새기고 써서 멀리서도 읽을 수 있게 해야 하겠고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하박국서 2:2 말씀에 보면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하게 새기되 달려 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한광교회 성도님들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비언어적인 언어가 되시고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지역사회에서나 어디를 가서든지 “예수님의 움직이는 광고판”, “하나님의 걸어 다니는 광고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