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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현의 살림신학

인간과 자연환경과의 모순과 갈등

유앙겔리온 2013. 2. 7. 19:24

    3번째 밀레니엄(The Third Millenium)에 진입한 이 세계는 새 시대를 맞은 세계이며, 우주여행의 세계이며, 과학과 기술공학상으로 미증유의 성과를 달성한 세계이지만 동시에 모든 피조물들이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세계이며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을 진정으로 학수고대하고 있는 세계인 것이다.

 

  첫 아담으로부터 먹고 싶다고 먹고 버리고 싶다고 버리고 싸우고 싶다고 싸운 자행자지의 결과는 어떤 것인가? 그것은 인류에게 심각한 적이 되어 제 몸을 상하게 하는 것이 되고 말았다. 아담과 하와가 욕구충족 때문에 범죄하여 타락한 직후 땅이 어떻게 되었던가? 가시와 엉겅퀴를 내며 인간의 수고와 땀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것은 그때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것은 오늘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오고 오는 시대에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구원 얻지 못한 인간이 살고 있는 자연 환경은 탄식하는 지경에 있게 된다.

이 시대에 인류에게 남겨진 중대한 문제들 중의 하나가 환경문제다. 지구의 호흡은 날마다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으며 더욱 가변적이 되어가고 있으며 예측불허의 얼굴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이러다간 인류 전체가 이 지구에서 더 이상 살 수 없는 날이 오고야 말 것이라는 묵시적인 두려운 예감이 인류를 떨게 하고 있다. 미 코넬대 데이비드 피멘텔 교수는 과학전문지 바이오사이언스(Bioscience)’에 개재한 보고서에서 인류는 스스로를 죽이고 있다고 단언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각 대학 연구자료 등을 바탕으로 환경파괴와 인간의 사망원인과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매년 지구상에서 사망하는 사람들의 40%가 인구 증가에 따른 각종 공해 및 환경파괴 때문인 것으로 밝혀냈다. 이러한 결과는 앞으로 인류에게 더욱 심각한 문제로 다가올 것이 분명한 것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유럽의 선진국가들은 국가적인 사업으로 인간 게놈 프로젝트(HGP) 오래 전에 기획하여 인간의 유전자 지도를 만드는 작업을 진행시켜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것을 완성하였으며 더욱 완전하고 더 정밀한 유전자 지도를 만들기 위해서 힘쓰고 있다. 인간 유전자 지도는 암과 에이즈를 비롯하여 지금까지 불치의 병으로 여겼던 질병은 말할 것도 없으며 인간이 두려워하는 질병을 유발하는 유전자의 정체를 파악하게 되고 이것을 질병예방과 치료 그리고 이식수술 등에 적용하여 인류는 획기적인 생명 연장의 혜택을 받게 될 날도 멀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도 생태계가 파괴된다면 그리고 유한한 자연의 자원을 독차지하겠다고 욕심을 부리는 일이 계속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구를 지배하고 이용하고 정복하는 것은 인간이지만 따지고 보면 인간도 다른 여러 종()들과 더불어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거대한 생태계의 한 일원이다. 현재까지 지구상에 존재가 알려진 생물은 140만종인데 이 많은 종이 서로 조화를 이뤄야 자연 환경이 제대로 유지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생태계를 절반씩 구성하고 있는 동식물의 멸종위기에 대한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그런데 이 경고들은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自然災害)나 외부로부터의 돌발적인 변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구에 의한 인재(人災)에서 비롯된 것이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욕망에 대한 근원적이며 신학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기독교에서 완전 타자 하나님과 피조세계를 분리한 것이 희랍의 이원론과 맞물리면서 자연과 인간 세계를 극단적인 대립의 관계로 몰아갔는데 이러한 대립의 사고가 결과적으로는 자연의 파괴현상을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자연세계의 일부분이다. 인간이 자연세계와 평화상태를 유지하지 못하는 것은 곧 인간의 자만과 독단과 독영의 결과이다. 이것은 결국 자멸과 파멸을 불러오게 될 것이다. 인간이 경험하는 대상과 사실들은 그때그때 주변세계 및 환경과의 관계와 연결 속에서 이해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나누지 않고 통합시키며 전체성 속에서 인지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특히 기독교와 교회는 유대적이고 헬라적이며 노스틱적인 영향과 그 동안 서구철학의 영향으로 왜곡된 이원론적이고 대결 구도적인 성서해석을 버리고 성서의 본래의 메시지를 바로 찾아내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무한대한 욕망을 자연재화를 수단으로 만족시키려고 하기 때문에 자연은 고갈되고 모든 피조물들은 몸살을 앓게 되며 엘리뇨현상과 라니냐현상으로 대변되는 자연재앙을 겪고 있으며 앞으로 다가올 미래 상황은 더욱 심각한 수준에 이르게 될 것이다. 더 이상 자연은 주인 없는 재화가 아닌 것이다. 먼저 차지하고 정복하는 자가 자연의 재화의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더 이상 인간은 착취자나 파괴자로서 자연을 대해서는 안 된다. 우리들은 이제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자기중심의 단기적 욕구 충족만을 생각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활동을 장기적 결과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오늘날 직면하고 있는 환경의 위기적 상태는 복구할 수 없는 최악의 상태가 되고 말 것이며 자멸을 초래할 위험을 안고 있다. 여기에 인류가 수 백 만년을 거쳐서 쌓아 온 노력과 업적들이 흔적도 없이 파괴되어버릴 위기가 있는 것이다. J. 몰트만은 창조 안에 계신 하나님에서 이 인간 사회의 근본적인 방향이 철저히 변화되지 않을 경우, 그리고 다른 생물들과 자연과의 관계에 있어서 새로운 삶의 실천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이 위기는 하나의 총체적인 재난으로 끝날 것이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 총체적인 재난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생각하고 그 날을 앉아서 기다려야 하는 것이 인간의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기독교라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떠난 기독교인 것이다.

 

  19975월 미국의 생태학자와 환경론자들은 지구 생태계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해 보았는데 결과는 연간 33조달러, 우리 돈으로 3경원에 이르는 경이적인 수치이다. 이산화탄소와 산소와의 균형을 맞추고 자외선을 막을 오존을 생산하는 등 인류생존에 필수적인 생태계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하기가 어렵다. 이 생태계가 파괴된다는 것은 인류의 생존에 직결되는 문제인 것이다.

 

  현대인은 심각한 생태학적 위기 속에서 살고 있다. 인간의 유일한 삶의 공간인 지구의 자연환경이 훼손되어 인간 생존의 필수 조건인 공기땅이 오염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지구의 사막화로 물이 부족한 나라가 35개 나라에 이른다고 하며 이미 우리나라도 그 가운데 포함되어 있음을 알고 있는 바다. 생명의 생성과 순환이 이루어져야 할 이 지구가 그 기능을 상실할 위기에 처해 있으며 자정능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한번 잃은 생물의 다양성을 복구하려면 5백년에서 길게는 1천만년이 걸린다고 한다. 근래에 들어 유전자 조작으로 인한 형질변경 생물의 출현이 토종생물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연구결과도 빈번하게 나오고 있다. 수백만 년을 흘러온 동식물의 진화의 시계가 인간의 손끝에서 갑자기 빠르게 혹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갈 위험을 인류 스스로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21세기 문 앞에서 생각해야 하는 역사의 종국은 핵의 대 파괴에 의해 초래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핵에 의한 전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핵폭발에 의한 대량 살상뿐 아니라 핵 방사능에 의한 지구의 오염과 격변은 회복 불가능의 환경파괴를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이로 말미암은 결과는 모든 생물의 생존은 불가능하며 지구촌은 원초적 불모상태보다 더한 흉한 모습으로 전락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보유국의 수효는 자꾸 늘어만 가고 있으며 핵무기 제조 수단을 입수하기 위해 부심하는 이슬람국가와 동아시아 국가들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이처럼 환경 문제는 오늘의 문제뿐만 아니라 미래 사회의 최대 걸림돌과 난제가 될 것이 분명하다. 인류는 이러한 전멸(全滅)과 자멸(自滅)의 위기로부터 구원을 받아야 한다.

 

  과거에는 우리가 정치 경제 사회 군사적인 의미의 인류 평화와 구원을 외치고 추구해왔지만 이제는 더 이상 자연환경을 배제한 인류 평화와 구원은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는 자연 즉 환경과의 평화를 주장해야 할 때가 되었고 환경과 함께 하는 구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단지 인간의 마음과 윤리만이 아니라 사람이 함께 사는 사회 전반에 이르는 구조, 더 나아가 온 자연과 우주에까지 미치는 그리스도의 구원을 고대하는 것이다. 인간 역사와 마찬가지로 자연과 우주는 구원의 영역이 되어야 한다. 로마서 819절에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했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은 서로 사랑의 새 계명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이제는 주체와 객체를 구분하고 나누는 분석적 사고(分析的 思考)의 틀을 벗어나서 서로 교통하며 통합하는 사고를 따라서 함께 생존하는 관계(關係)의 원리(原理), 상생(相生)의 원리(原理)를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