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그물의 비유(마 13:47-50) 본문
예수님은 갈릴리 나사셋 사람이셨습니다. 특히 근래에 들어서 예수 연구를 하는 신학자들은 예수님의 갈릴리 출신을 새롭게 보려는 시도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갈릴리의 독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지를 예루살렘보다는 갈릴리에 더 집중하려는 노력을 하기도 합니다. 갈릴리는 당시에 온갖 종류의 사람이 함께 모여사는 곳이었습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도 있었고 어업을 주업으로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상업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관리들도 있었고 외국인들도 상당히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고전적으로 전통을 지키려는 사람들도 그곳에는 있었지만 처음부터 율법을 지킬 수 없는 그런 사람들도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그물 비유는 단순히 바닷가 고기잡는 이야기만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갈릴리의 이러한 지역적이고 인종적이고 종교적인 특징을 감안해서 오늘 그물 비유를 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물 던지는 장면은 갈릴리 바다 근처에 있는 지방에서는 아주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어부들이 그물을 치며 끌어올리는 모습을 예수님은 직접보셨습니다. 그리고 몇번은 예수님도 그물을 친히 던져보셨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그물의 비유에서는 천국은 바다에 치고 각종 고기를 모는 그물과도 같다고 비유했습니다.
오늘 저녁에 그물 비유를 통해서 우리의 신앙생활을 다시한번 점검하는 귀한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첫번째로 이 비유를 통하여 예수님께서 말하시고자 하는 것은 그물은 바다에 던져진다는 것입니다.
바다는 온갖종류의 고기가 함께 어울어져 살아가고 있습니다. 좋은 고기도 있지만 불가사리같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것도 있습니다. 올해는 독성을 지닌 해파리 떼로 인해서 어민들이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합니다. 심지어는 해파리 떼가 그물에 가득차서 그것을 끓어올리는 로프가 끊어지는 바람에 그 로프에 맞아서 어부가 죽는 일까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고기보다도 이물질이 더 많이 잡히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그만큼 바다가 오염된 까닭입니다.
두번째로 이 비유에서 예수님은 무엇을 말씀하고자 하셨겠습니까?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그물을 치고 고기를 몰아서 넣을 때는 선별하지 않는 다는 것을 말씀하시고자 한 것입니다. 처음부터 되고 않되고가 없는 것입니다. 포괄적으로 모두를 포함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저인망 어법을 보면 어떻습니까? 각종 고기가 다 그 그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물이 바닷속에 잠겨서 웨우고 있을 때에는 심판도 구별도 없는 것입니다. 각종고기가 다 들어가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문어단지나 장어 통발이나 게통발과 같이 특정한 고기를 대상으로 하고있지 않는 것이 저인망식 그물몰이 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저인망식 그물몰이에 비유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처음부터 의인만 불러모으는 곳이 아닌 것입니다. 각종의 사람이 모두가 모이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교인들을 좋게 만 보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좋은 고기와 나쁜 고기가 함께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그릇에 담을 때 좋은 고기와 나쁜고기가 구분이 되는 것이지 바다 속 그물 안에 있을 때는 이런 구분이 잘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쁜고기와 같은 교인들 때문에 전도의 문이 막히기도 하고 교회가 커다란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교회라는 그물은 세상이라는 바다물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그물 안에는 온갖 종류의 고기가 함께 여전히 공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선별하는 기관이 아닙니다. 교회는 완전한 기관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지나치게 교회와 성도들을 세상과 분리된 천국과 천국시민처럼 생각해서 좋은 것만을 기대하다가는 실망하기 딱 좋습니다. 그물 안의 물고기와 그물 밖의 물고기가 별반 다를바가 없습니다. 아니 어쩌다가 그물 안에 있는 물고기가 바다물 속에 있는 물고기보다 더 나쁜 고기가 들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교회는 아직 바다속에 담겨져 있는 그물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아직 선별이 되지 않는 상태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자칫 바다속에 있는 그물과 같은 이 세상의 교회에서 선별을 하려고 하면 오히려 그물 안에 있는 고기를 다 놓쳐버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이 그물 비유에서 주님이 말씀하시고자 하신 것은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선별이 있습니다.
어부는 놀이를 하고자 바다에 그물을 던져 놓은 것이 아닙니다. 결정적인 찬스에 그물을 거두어들이는 것입니다. 그 거두어들이는 때와 기한은 어부에게 달려 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은 시작이 있음과 같이 또한 끝이 있습니다.
오늘의 비유가 주는 중요한 교훈은 어부가 그물을 바닷속에 그냥 한없이 놓아두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적당한 시간이 되면 그물을 끌어당겨서 뱃전으로 올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물을 끌어올리는 시간이 점점 더 가까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야 합니다. 여기에 오늘 비유의 주안점이 있습니다. 그물에 비유된 천국은 자꾸 자꾸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잡아 끌어올려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없이 악과 선이 언제까니나 계속해서 어둠과 빛의 공존이 지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최종적으로 종말론적으로 최후의 심판 때가 오는데 그 때는 반드시 좋은 고기 나쁜 고기가 분리되고 나누어지고 구별되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고기는 그릇에 담겨지고 나쁜 고기는 골라내서 버려지는 것입니다.
그물 안에 있다는 사실 때문에 그릇에 담겨질 확율이 확실히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또한 그것이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에 속하여 있다는 사실은 천국에 들어갈 확률을 높여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다 들어간다는 보장이 되지는 않습니다.
마지막 거려내시는 과정이 남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좋은 고기와 같은 성도들이 되셔야 하는 것입니다.
나쁜 고기가 있다고 해서 자신도 나쁜고기와 같은 종류로 남아 있어서는 안됩니다. 본받아서는 안됩니다.
'비유의 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의 비유(마태복음 15:10~11, 16~20) (0) | 2011.02.11 |
---|---|
새것과 옛것을 곳간에서 내 오는 집주인의 비유(마태복음 13:51~52) (0) | 2011.02.02 |
값진 진주를 구하는 장사꾼의 비유(마태복음 13:45~46) (0) | 2011.01.22 |
감추인보화의 비유(마태복음 13:44) (0) | 2011.01.19 |
소경을 인도하는 소경(마태복음 15:13-14) (0) | 2011.0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