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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운동

소가 웃을 일들을 하지 맙시다

유앙겔리온 2009. 1. 14. 16:01

 

  2009년은 기축년, 소띠의 해입니다. 지금의 소는 한우냐? 수입소냐?를 구분 지으며 단순히 먹거리로써만 의미를 가집니다. 지난 해에 문제가 되었던 광우병 파동 역시 소가 먹거리로 안전하냐? 않느냐?의 문제가 관점이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소는 어떤 다른 동물보다도 우리나라 농경생활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우리 민족 문화를 만들어왔고 민족 정서에 영향을 끼쳐 왔습니다. 경제와 식문화뿐 아니라 노래 그림, 문확, 놀이의 소재소로 곧장 등장하고 있는 것이 소입니다. 소는 단순한 가축의 의미를 뛰어넘어 마치 한 식구처럼 생각돼 왔습니다. 오히려 사람은 굶어도 소는 굶기지 않았을 만큼 우리의 가게에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존재로 여겼습니다.  

 

  소는 개나 고양이나 원숭이 같은 동물에 비해 덩치가 크고 움직임도 느리고 어떤 자극에 대해 반응하는 것도 더딘 편입니다. 그래서 '쇠귀에 경읽기'며 '황소고집'이라는 말이 사용되는가 하면 '소 뒷걸음치다 쥐 잡는다'는 식으로 부정적인 속담도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한국문화에서 차지하는 소는 부정적인 것보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훨씬 많은 동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소는 우직하고 성실합니다. 온순하며 끈질기고 힘이 세나 사납지 않고 순종적이며 충직한 동물입니다. 하품 밖에 버릴 것이 없다'는 말처럼 소는 정말 버릴 것이 없습니다. 뿔, 기름, 피, 가죽, 고기, 뼈, 내장 등 그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이 실재생활의 중요 재료로 사용되어왔습니다. 이러한 소의 속성은 한국인의 정서 속에 녹아들어 여러 가지 관념과 풍속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소가 말이 없어도 열두 가지 덕이 있다"고 했습니다. 소의 우직함과 근면함을 들어 인간에게 성실함을 일깨워 주는 속담과 격언들이 참 많습니다. 그것을 다 언급할 필요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소가 이런 존재였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집안 전체의 화(禍)을 막는 데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이사한 뒤에 문에 소뼈나 소 고삐를 매달아 두는 풍습은 나쁜 귀신이 접근하는 것을 막는 의미였고 소꿈은 집안의 재력이나 집안의 길흉화복과 관련돼 있었습니다. '꿈에 황소가 자기 집으로 들어오면 부자가 된다'거나 '소가 문밖으로 나가면 재물을 잃는다'는 꿈해석은 이 같은 조상들의 생각을 잘 드러낸다고 할 것입니다.

  

  성경 안에서도 소는 여러 가지 상징과 의미로 등장합니다. 암 4:1, 렘 46:20에서는 살진 암소는 부유한 백성이나 국가를 상징했고, 창 41:27절에서는 굶주린 암소는 흉년을 의미했습니다. 레 22:26과 민 23:1에 송아지는 희생의 제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하면 우상의 상징이 된 금송아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가 하나님의 산에 올라갔을 때 아론을 부추겨서 소로 하나님을 형상화했는데 이는 애굽의 우상 아피스(Apis)를 본 딴 것으로(출32:4) 이스라엘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고 끈질기게 나타는 고질병과도 같았습니다(왕상12:28, 대하13:8).

 

  성서시대에는 귀한 손님이 올 경우와 같은 특별한 때에는 자신이 키우던 짐승들 가운데 가장 살진 송아지를 잡아서 손님을 대접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 중에 백미와 같은 탕자의 비유에서도 방탕한 아들이 돌아오길 끝없이 기다리던 탕자의 아버지는 그 아들이 회개하고 돌아온 날 "잃어다 찾았고 죽었다 살아온" 그를 위해 살진 송아지를 잡았습니다(눅15:23).

 

  특히 사무엘상의 기록(16, 17장)에 의하면 소가 특별한 용도로 쓰여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불레셋이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전쟁 노획물로 언약궤를 빼앗아가서 보관했는데 그 보관한 곳에 재앙이 임하자 불레셋방백들의 회의에서 새 수레를 만들어 젖 나는 두 소에게 끌게 해 이것이 벧세메스로 가면 하나님으로부터 온 재앙이고 그렇지 않으면 우연이라고 하자고 결정했습니다. 푸른 풀이 유혹했으나 법궤를 멘 소는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습니다. 어미를 부르는 애절한 송아지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묵묵히 벧세메스로 갔습니다. 불레셋 방백들의 계획과 의도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벧세메스로 가는 암소는 다른 것에 끌리지 않고 착하디 착하게 자기의 길을 끝까지 걸어갔습니다. 울면서도 갔고 좌우 치우치지 아니하고 갔고, 뒤를 돌아보지 않고 갔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부수어진 수레위에 올려져 죽임을 당하여 제물이 되었습니다.   

 

  벧세메스로 가는 암소만도 못한 우리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소가 웃을 그런 인생, 그런 삶을 우리가 살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소도 하지 않는 일을 우리 인생들이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2009년 기축년은 어느 때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한 해가 될 것으로들 모두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의 덕성으로 우리가 살아간다면 반드시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도약하는 한 해가 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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