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하나님의 뜻은 상식에 있습니다. 본문
하나님의 뜻은 상식에 있습니다. 비상식, 몰상식에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은 씨 뿌리는 비유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씨 뿌리는 비유를 자세히 음미하면서 묵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상식적입니까? 씨뿌리는 비유에 보면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의 결실은 좋은 땅 즉 옥토에 씨를 뿌렸을 때 일어나는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결과를 원하고 기도하는 사람은 마땅히 좋은 땅을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옥토를 조성하는 것이야 말로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입니다.
무명의 그리스도인저작 씨리즈 중에 [무릎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이란 책에 보면 기도를 막는 것들을 열거하고 있는데 1) 의심, 2) 자아, 3) 사랑이 없는 마음, 4) 우리가 할 일을 하지 않는 것, 5) 은밀하게만 기도하는 것, 6) 찬송하지 않는 것 등을 들고 있습니다. 이처럼 기도을 막고 기도를 방해하는 방해물이 거의 대부분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
길가 밭이나 돌짝밭이나 가시떨기밭에다 씨를 뿌려 놓고 "하나님이여! 내가 믿사오니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의 결실을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면 이루어지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길가밭에서 싹이나서 열매를 맺는 것도, 돌짝밭이나 가시떨기밭에서 많은 열매를 맺게 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옥토일 때 그곳에서 100배, 60배, 30배의 결실을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별난데 있지를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자연대로, 순수대로, 순리대로, 상식대로가 먼저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별난 교인되려고 하지를 말고 순수한 교인, 자연스러운 교인, 순리를 따르는 교인, 상식적인 교인이 되려고 하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왜 바리새인중에서나 서기관 중에서 그리고 사두개인들 중에서 제자들을 택하시지 아니하시고 어부나 세리나 이러한 사람을 선택하셨겠습니까? 그것은 자연대로, 본대로 들은 대로 전해줄 자를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자기 지식으로 마음대로 복음에다가 덧붙이고 빼버리는 그러한 사람을 제자로 삼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자기복음을 덧붙여놓는 사람들이 언제나 문제입니다. 이런 자들로는 하나니 나라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복음을 왜곡시키지 아니하고 순수하게 복음을 있는 그대로 전해줄 자를 택하다 보니까 그렇게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사람들을 선택하시게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생활을 별스럽게 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상식수준도 안되면서 기적과 이적과 특별한 은사 이야기에는 사족을 못쓰는 그런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유별난 그런 곳만 좋아라 좇아다니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그런 그리스도인들의 기도했다는 이야기나, 금식했다는 이야기나, 성령체험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굉장한 그리스도인 같습니다. 존경심이 절로 납니다. 그런데 정작 거래를 해보고 교제를 해보면 슬슬 냄세가 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건 아니다 싶어집니다. 상식도 안되는 그리스도인이다 싶어어집니다. 신뢰가 무너지고 오히려 비그리스도인만 못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별난데 있지를 않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야단법석이나 시끌벅적한데 있지 않습니다. 그저 일상에 있고 단지 상식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길가밭에서 혹 30배를 맺거나, 돌짝밭에서 혹 60배를 맺거나, 가시밭에서 혹 100배의 열매를 맺는데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기를 원하거든 먼저 옥토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그러면 혹 100배 혹 60배, 혹 30배의 결실을 맺도록 해주실 것입니다.
나는 전혀 변하지 않으면서 환경만 바꾸어달라고 기도하고 나는 전혀 변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만 바꾸어 달라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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